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5.3월호

나무와 숲을 혐오하는 삽질, 이제 그만하라

덕진공원 벌목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월, 봄을 맞는 나무들은 온 힘을 다해 땅속 깊이 있는 뿌리에서 물을 끌어 올린다. 그 물로 잎눈을 부풀려 새순을 틔운다. 청진기를 줄기에 갖다 대면 ‘쐐액쐐액’ 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1년 중 물의 압력이 가장 높을 때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고로쇠 단풍나무 수액은 입춘 지나 우수 즈음부터 뽑기 시작한다. 숲이 울창한 지자체들은 3월 첫 주, 나무줄기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링거 줄로 수액을 모아 판매하는 고로쇠 축제를 연다. 살아 있는 나무에 빨대를 꽂는 것, 나무라고 아프지 않겠는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린다. 누군가에는 생계이고, 풍부한 영양소가 가득한 음료이니 마실 수는 있겠으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은 가져야 할 것이다. 


전주 덕진공원에도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득하다. 느티나무와 중국단풍나무가 우거져 그늘이 넓고 야외 의자가 많아서 쉬어가는 장소로 인기가 많았던 취향정(醉香亭) 앞. 크고 작은 행사도 대부분 여기서 열린다. 야트막한 우리 산의 모습으로 언덕을 만들고 소나무밭을 조성한 곳이다. 그런데 전주시가 울창한 나무와 소나무 언덕이 연못의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200여 그루를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잘라냈다. 언덕 위 소나무밭이 파헤쳐졌고, 뿌리 분을 떠서 이식 준비를 마친 나무, 곳곳에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보였다. 나무를 없앤 자리에는 32억 원을 들여 각종 행사 등을 위한 원형 광장과 잔디마당, 놀이마당 등을 만든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 우범기 전주시장은 28년까지 덕진공원에 550억 투입해서 나무를 제거한 ‘열린 광장’ 조성과 함께 시설 정비, 야간경관 조성 등 22개 사업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또 많은 나무가 사라질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덕진공원은 전주의 대표적인 명소였다. 고려시대 전후에 조성된 덕진연못에 단옷날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소나무 숲에서 흐드러지게 핀 연꽃을 보면서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는 휴식 공간이었다. 최근에는 오송지 생태습지와 건지산 편백숲과 둘레길, 조경단과 연계해 많은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이다. 새로 만든 공원에는 없는 역사성이 덕진공원 곳곳에 담겨 있다. 신석정, 이철균, 신근 시인 등 전북 문인들을 추모하는 시비가 있다. 이 고장 출신 법조인 3인상, 동학농민군 전봉준 장군상과 손화중, 김개남 장군 추모비도 있다. 


덕진공원은 도시공원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5월 덕진연못 주변을 공원으로 지정하고 산책로를 만들고 연꽃을 추가로 심어 경관을 관리했다. 1960년대 도시 근린공원으로 정비되었으며, 1975년 한국조경공사가 덕진연못, 전주동물원, 어린이 회관 등을 3권역으로 나눠 ‘덕진공원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8년 4월 전주시 시민공원으로 지정했다. 1980년 덕진연못을 가로지르는 명물, 현수교 다리인 ‘연화교’가 놓이고, 연꽃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소풍도 가고, 수영도 하고, 연인과 오리배도 타고, 산책을 즐기다가 아름드리나무 그늘에서 연못을 보며 쉴 수 있는 곳, 멀리 나가지 않아도 자연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급격한 도시화로 공원과 녹지는 중요성이 더 커졌다. 더는 선택적이고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기능을 모두 갖춘 도시의 중요한 자원이다. 공원과의 접근성, 거리가 삶의 질의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도시에 살지만, 숲을 가까이 두려는 시민들이 늘었다. ‘숲세권’이란 말도 등장했다. 기후 위기 시대, 탄소흡수원이자 작은 생물의 서식처 기능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2013년 전주시는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본격 재정비를 시작했다. 인공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덕진공원 전통 정원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미래상은 “함께하는 천년 문화의 삶터 덕진 정원”이었다. 연화정 한옥 도서관, 돌다리 연화교, 연지정과 연지교, 사각 육각 팔각의 정자들, 소나무 숲과 잔디 주차장, 야호 숲 놀이터 등이 기본계획 아래 추진한 사업이다. 옛 현수교나 연화정 철거, 과도한 시설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시민 공청회 등의 소통과 협의를 거쳐 원만하게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 계획 어디에도, 호수를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한 조망권 확보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없다. 소나무 언덕을 헐어내고 평지를 만들어 잔디광장을 조성하겠다는 발상은 단순하기가 그지없다. 공원의 생태적·경관적 기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개발 사업일 뿐이다. 단순한 유원지로 변질시키려는 잘못된 사업이다. 야트막한 우리의 산자락, 마을 입구 숲을 돌아오는 마을에 들어선 느낌의 곡선, 오밀조밀하고 다양한 공간 배치를 없애고 획일화된 잔디 공원을 만드는 것은, 1975년 덕진공원 마스터플랜보다 품격도 내용도 떨어진다. 도시공원위원회의 심의나 자문을 거쳤는지 의문이 든다.


조망, 뷰(View)는 보는 위치와 관점에 따라 다르다.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 잔디광장의 선호도도 지역과 주 이용층의 선호에 따라 갈린다. 전주 에코시티 세병공원 같은 곳은 가족 단위가 돗자리를 깔고 반려동물과 이용할 수 있는 광장을 선호한다. 원래 인공 호수였고, 대규모 주택단지 근린공원이라는 특성을 공원계획에 반영한 것이다. 울창한 숲속 느낌이 나는 산책길을 중심으로 만든 공원에는 야외 의자가 인기가 있다. 날씨나 준비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다. 조망이 좋은 곳의 의자는 언제나 인기다. 뙤약볕이 내리쬐거나 비가 내려 축축한 곳은, 이용이 불편하다는 점에서 나무를 베고 잔디광장을 만들겠다면 시민들에게 한번 물어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세상에 살고 있다. 경쟁을 넘어 전쟁, 차별을 넘어 혐오의 세상이다. 다른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 세상이 있다. 나무들은 뿌리의 진균류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자원을 공유하고, 대립과 공존의 균형을 유지하는 나무끼리의 연결망 네트워크를 가동한다. 최근 우드와이드웹 소식통에 의하면 “나무와 숲을 혐오하는 우범기 전주시장의 무분별한 삽질에 주의하라는 경계경보가 내렸다”라면서 “해충을 쫓아내거나 포식자를 끌어들이는 화학물질을 방출할 준비를 갖추기로 했다”고 전해왔다. 나무들의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벌목꾼의 발등을 찍는 것은 도끼이고 그 자루는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