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계엄 이후 충경로 객사 거리에서 매주 탄핵 촉구 집회가 열렸다. 12월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이 있던 날에는 1만 5천여 명에 이르는 시민이 관통로를 가득 메웠다. 이 얼마 만인가. 한때 관통로는 젊음의 거리였다. 백화점, 나이트클럽, 레스토랑, 극장, 커피숍, 당구장, 호프집... 도시의 즐길 거리는 다 관통로에 있었다.
1982년 개통한 도로명 충경로. 남북축으로 놓인 팔달로만으로 도시의 성장을 담을 수 없어 풍년제과와 민중서관 앞으로 동서축 관통 도로가 놓였다. 3저 호황에 따른 고도성장과 맞물리면서 이 일대가 중심 상업 공간으로 변했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화려하고 활기 넘치던 거리는 서신동, 서부신시가지, 혁신도시, 에코시티 등 신도심이 조성되고, 도청과 경찰청 등 공공기관이 이전하면서 쓸쓸하고 한산한 거리로 전락했다. 부동산 임대 문의가 붙은 빈 가게가 한 건물에 한 칸씩은 보일 정도다. 문을 연 가게도 주인이 바뀌기 일쑤다. 통계에 의하면 2022년 충경로와 인근 동문거리와 웨딩거리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26%대에 이르렀다. 전국 평균 공실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그 후 3년, 더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동네 사람인 내 눈에 보이기는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같았다.
전주시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원도심 공동화를 줄여보고자 1999년 고사동 객사 일대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했다. 이후 특화 거리인 영화의 거리, 청소년 거리, 걷고 싶은 거리를 지정하고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미는 사업도 추진했다. 그나마 객리단길이 젊은이의 거리, 사람이 모이는 거리로 다시 뜬 것도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승수 전 시장은 관통로를 원도심 재생의 상징이자, 보행자 중심 도시로의 전환을 꿈꾸는 대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자동차보다는 사람, 콘크리트보다는 생태, 직선보다는 곡선을 지향하는 전주역 앞 첫 마중길 프로젝트의 뒤를 잇는 사업이었다.
시는 설계 전에 관통로 객사 구간 차도를 막고 벼룩시장, 거리 공연, 쉼터, 거리 카페 등 거리를 광장처럼 만드는 실험을 먼저 했다. 2017년에서 2019년 가을까지 여러 차례 진행하며 인근 상인과 주민을 설득했다. 2021년 2월 충경로 일원을 '보행 환경개선 지구'로 지정하고, 22년부터 184억 원을 투입해 충경로를 보행자 중심 거리로 탈바꿈시켰다. 공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시공사의 법정관리로 공사 중단과 재개, 하자로 인한 재시공을 반복하면서 인근 상가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충경로는 걷기 좋은 거리로 탈바꿈했다. 차로를 줄이고 인도를 넓혀 보행 공간을 확보했으며, 보도와 차도의 높이차를 없애 광장형 도로로 재정비했다. 콘크리트 블록 포장으로 도로 위 복사열을 줄였다. 또한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50㎞에서 40㎞로 낮추고, 디자인 가로등을 설치했다.
하지만 우범기 전주시장은 보행자 안전과 상권 활성화는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차 없는 사람의 거리 축제는 열리지 않았다. 그나마 12월 3일 불법 계엄 이후 탄핵 정국에서 전주 시민의 광장으로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설마설마했던 일이 벌어졌다. 시가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한 관통로 인도 위에 포켓 주차장을 만들고 있었다. 객사 구간 26면, 동부시장 구간 10면 등 총 36면을 계획하고 있다. CCTV 관제 시설비로만 무려 5억 3천만 원의 혈세가 들어갔다.
인도 위의 포켓 주차장은 차량 이용을 권장하고 사고 위험을 높인다. 보행자 중심의 거리 조성 사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로변에 정원을 만드는 도시 숲 조성 사업에도 맞지 않는다. 대중교통 중심으로 도로 체계를 바꾸겠다는 전주형 BRT 사업과도 충돌한다. 상가 활성화를 강조하지만, 주차장 공유나 주차권 지원 등 다른 대안에 비해 어떤 효과가 있는지 검토도 없다. 있던 주차장도 없애야 할 보행자 특화 거리에 새로 주차장을 만든다니, 도대체 이 사업을 왜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보행자 안전사고와 차량간 충돌 사고 위험을 키운다. 시 공모자료에 의하면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17년 28건, ‘18년 32건, ‘19년 42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행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누구나 안전하게 걷고, 머물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도심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건 전주 시민과 합의한 가치이다. 그러나 우범기 시장은 그 공간에 다시 자동차를 불러들이려 한다. 그것도 시민이 안전하게 걷고, 광장으로 이용하는 인도 위에 말이다. 몇 면 안 되는 주차장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문제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다. 방향이다. 도시 공간의 주인이 사람인가, 자동차인가. 이 질문에 대한 우범기 시장의 대답이 지금 ‘주차장’이라는 점이 문제다.
보행 환경 개선은 인도를 넓히고 도로를 정비하는 것 이상이다. 도시의 경쟁력이다. 도시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핵심 전략이다. 사람 중심 도시가 경제도 살린다. 서울시 도시연구원에 의하면 보행자 중심 거리 정비 후 유동 인구 35% 증가, 인근 점포 매출 평균이 13% 증가한 사례가 있다. 전주 한옥마을도 보행 중심 설계로 지역 브랜드나 특산물 소비 유도에 성공한 사례 아닌가.
상권 활성화는 결국 사람이 모이는 거리에서 시작된다. 그 공간을 자동차에 내주는 순간, 도시는 활기를 잃고 지속가능성도 줄어든다. 단기적인 편의보다 장기적 매력과 유입을 끌어내는 공간 전략이 필요하다. 충경로 이면 도로에는 사설 주차장과 종교시설 주차장이 다수 존재한다. 일부 시간을 제외하고는 주차 여유 공간이 충분하다. 주차 할인권 제도 도입, 사회 협약을 통한 공유 주차장 운영 등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은 얼마든지 있다.
서울시 성동구 나눔 주차장 사업도 참고할 만하다. 공영주차장 조성에는 큰돈이 들어간다. 땅값에 차이가 있기는 하나 최근 지은 지하 주차장은 1면당 1억 2천만 원, 지상은 1억여 원에 이른다. 그래서 비어 있는 주차 공간을 나누자는 것이다. 구청은 부설주차장 10면 이상 개방 시 방범 시설 및 환경개선 비용으로 최대 2,200만 원을 지원한다. 상가 활성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차가 모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필요한 건 주차 공간 확대가 아니라 공간 공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