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5.7월호

지구와 함께, 시민과 함께, 생태민주사회로

전북환경운동연합 30주년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20대 초반에 자주 흥얼거리던 노랫말이다. 시간이 더디게 흐르던 그 시절, 서른은 멀고도 막연하게 두려운 나이였다. 30년 전 환경운동의 첫발을 내디뎠던 이들은 오늘의 세상을 어떻게 꿈꾸었을까?


서른 살 청년, 지구의 벗 전북환경운동연합. 지난 12일, 전주 남부시장 옛 원예공판장 옥상에서 내란 사태로 미뤘던 3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10년 동안 크고 작은 행사에 내걸렸던 낡은 걸개 '회원이 희망입니다'와 새로 제작한 걸개가 나란히 걸렸다. 디자인은 달라도 구호는 같았다. 계단에는 20명의 회원 사진과 소개가 담긴 포스터가 붙었다. 씨앗을 받는 농부 이은순 회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기록한 정주하 회원, 농촌 난개발에 맞서는 옹동환경연대 엄성자 회원, 한일 청소년 환경교육을 잇는 후지무라 나오야 회원 등이다. 이들을 인터뷰하고 전북환경운동연합 30년사 중 '희망의 이유'에 담았다. 글은 회원들이 직접 나눠 썼다. 


20년 이상 후원한 회원 52명에게는 작은 감사패를 준비했다. 늘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온 분들이다. 이날만큼은 이들을 정중히 앞으로 모셨다. 지역 곳곳에서 진주처럼 지역을 빛내 온 이들에게 "그분들이 지나간 길에는 초록의 잎이 무성해졌다”는 문구를 상패에 담아 전했다.


섬진강 적성댐 건설을 함께 막아낸 김용택 시인은 축시를 들고 왔다. 판화가이자 농부인 이철수 전 환경운동연합 대표가 보내준 판화는 책에 수록하고 부채에 새겨 나눴다. 지리산의 마음을 담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윤주옥 전 대표, 농촌과 농민의 편에서 활동하는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하승수 변호사도 연대의 글을 전해왔다. 행사장 테이블 위 작은 화병과 꽃다발은 비닐 하나 없이 자연 소재로 구성됐다. 지역 최초의 플로리스트로 불리는 유영 회원의 작품이다. 문화예술인 회원들이 꾸민 공연은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익산 장점마을, 옹동면 석산 피해 주민 등 환경 약자의 권리를 지켜 온 민변 전북지부, 전주천 생태 복원에 힘쓴 김익수 박사, 문화에 환경을 담아 온 지역 문화예술 월간지 『문화저널』에는 감사패가 수여됐다. 『문화저널』은 '전주천 수달'처럼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이다. 꼭 지켜야 하는 천연기념물이면서 멸종위기에 내몰린 처지라고나 할까.


30도에 육박하던 한낮의 옥상에 보름달이 천변 강바람을 실어 왔다. 발달장애인 사회적기업이 마련한 저녁 밥상을 차려내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환경운동은 1980년대 초반 반공해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시커먼 공장 매연과 거품 띠로 악취 나던 도시 하천이 '잘살아보세'의 상징이던 시절, 일본의 대표적 공해병 '이따이이따이병(아프다아프다 병)'과 유사한 온산병 사태가 발생했다. 1991년에는 페놀 유출로 낙동강 수돗물이 오염되고, 같은 해 군산 동양화학 TDI 공장에서 맹독성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3년 4월, 서울 공해추방운동연합과 7개 지역 환경단체가 모여 전국 단위의 환경운동연합을 창립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1994년, 인권변호사 전봉호와 전교조 해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12번째 지역 조직으로 참여했다.


당시 전북환경운동연합의 탄생은 단비 같았다. 지방정부가 막 부활하고, 환경 규제 법안이 느슨했던 틈을 노린 개발업자들이 활개 치던 시기였다. 다가공원 초고층 아파트 건설이 첫 싸움이었다. 투쟁 끝에 층수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덕유산 국립공원 내 스키장과 리조트 건설에도 맞섰다. 사업 전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구상나무 군락 보존과 도로 축소 등 일부 성과는 얻어냈다. 이후에도 갯벌 파괴, 핵폐기물 반입, 하천 오염, 골프장 건설 등 다양한 환경 이슈가 터져 나왔다. '반대의 운동'은 점차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으로 발전해 갔다. 


크고 작은 성과도 있었다. 진안 마이산 케이블카,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사업을 멈추게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 및 조력발전소 공약은 34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전주 생태동물원의 생명존중 공간 전환, 삼천동 맹꽁이 놀이터 조성, 아중리 두꺼비 구출 작전, 쓰레기 없는 축제 등도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2009년, 회원 수 1,000명을 돌파했고 현재는 1,500명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회원 고령화, 인구 감소 등 위기 속에서도 100% 회원 재정을 이루었다. 외부 기금이나 프로젝트에 의존하지 않고도 환경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지나고 보니, 환경운동은 자연과 생명을 지키는 장기적인 변화의 실천이었다. 전주천 버드나무 벌목 사례처럼, 시장이나 군수가 바뀌면 좋은 정책도 얼마든지 퇴행할 수 있다. 작은 성과들이 쌓이고, 시민참여를 기반으로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생태민주사회로 전환이 가능하다. 환경단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긴 호흡으로 지켜봐 주시고, 격려와 응원, 무엇보다 회원으로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