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5.11월호

명사십리에서 사륜 차량이 질주한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의 보고’ 전북 고창.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와 농악, 세계자연유산 고창갯벌, 생물권보전지역 고창군, 세계지질공원 병바위와 선운산, 세계기록유산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중 무장 포고문 등 유네스코 타이틀이 일곱 개나 된다. 그중 제일은 도요물떼새와 갈매기들이 제소리를 내며 바삐 먹이를 찾아 날고 드는 찰진 고창갯벌이다. 


22일 고인돌과 갯벌을 주제로 열린 고창세계유산축전이 막을 내렸다. 말 그대로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진 고창의 볼거리는 풍성했고, 갯벌과 들에서 난 먹거리, 놀거리가 넘치는 축제였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대형 사륜구동 차량 150여 대가 고창갯벌 인근 명사십리에서 캠핑과 모래갯벌을 달리는‘오버랜딩(Overlanding)’ 행사가 열렸다. 고창군이 동호 명사십리 해양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예산 5천만 원을 지원하고, 군산 해양수산청 협의, 어촌계 협조 등 행정 협의를 대행하고, 오프로드 차량 동호회인 ‘조선 추노꾼 Wild-k’가 주최했다. 


당일 아침에서야 전화 제보를 받고 부랴부랴 군에 따지고 항의해서 사업계획서를 받았다. 고창군은 명사십리 동호해수욕장~구시포 해안 구간은 행정구역상 세계유산 지정 구역 밖이라 보호구역이 아닌데 왜 그러냐, 수산해양청과 협의했고 어촌계 동의도 얻어 체험 행사도 하고, 일시점사용허가 등 절차도 다 거쳤다고 밝혔다. 


동호에서 구시포 구간 명사십리(明沙十里)는 서해안에선 보기 드문 8.5km 직선형 해안이다. 고창갯벌과 불과 5km 떨어진 곳으로 지질·생태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한 공간이다. 모래 특성과 갯벌 특성을 가진 복합 해안으로 모래 혹은 조개껍질 등이 쌓여 만들어진 초승달 모양의 갯등 ‘쉐니어(Chenier)’와 함께 중요한 학술 가치가 있다. 기름진 갯벌이 밀물과 썰물에 따라 많게는 6km에서 좁게는 400m의 폭을 가진다. 아름다운 백사장이 썰물 때면 너른 들판처럼 이어진다. 해안을 따라 형성된 습지 및 해안사구 지형이 발달했으며 다양한 사구식물이 분포한다. 


세계에서 2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뿔제비갈매기를 볼 수 있으며, 먼 길을 여행하는 도요물떼새들의 중간 기착지(휴게소)이다. 검은머리물떼새, 노랑부리백로, 알락꼬리마도요 등 멸종위기 생물 18종을 포함한 물새 90종, 약 41만 마리가 갯벌과 습지에 기대어 산다. 서해 고유종인 범게의 최대 서식지이며, 붉은발말똥게, 대추귀고둥, 흰발농게 등의 멸종위기 생물 3종을 포함해 대형 저서생물 255종이 서식한다. 천연기념물인 황새 80여 마리가 겨울을 난다. 갈매기의 주요 월동지이기도 하다. 만조가 되면 물 끝 선에 늘어선 갈매기 떼가 장관이다. 멀리 대죽도 너머 노을은 정말 장관이다. 갯벌과 경관 훼손 우려가 큰 부창대교 건설 계획도 노을대교로 이름을 바꿨다. 변산 모항에서 곰소, 줄포, 흥덕을 돌아서, 아산, 심원, 동호, 구시포에 이르는 구불구불 해안도로는 얼마나 정겨운가.


명사십리는 그 자체로도 보존 가치가 매우 높아서 자연유산으로 확대해야 하는 곳이다. 유네스코 관리지침은 유산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인접 지역의 외부 위협을 방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창군은 갯벌이 가진 생태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멸종위기 철새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겠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대형 사륜구동 차량이 대거 모여 차량 캠프를 하고, 모래사장에 조성한 바위를 쌓아 올리고, 통나무를 깔고, 웅덩이를 만들어 오프로드 코스를 조성하고, 해안가를 달렸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프로드 차량 동호회가 자연의 모험을 즐기는 곳으로 적당하지 않다. 4륜 차량만 30년 운전해 온 내가 보기에 행사용 이벤트에 불과하다. 이 정도 코스라면 공터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해진 자동차 캠핑장도 갯벌과 바다, 자연을 즐기기에 충분한데 굳이 명사십리 해안에서 보여주기 행사를 연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차량의 무게로 갯벌이 다져지면서 다양한 갯벌 생물과 해안사구 식물 서식지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 울퉁불퉁한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이 질주하면 모래 유실도 일어날 수 있다. 행사를 마친 현장을 확인한 결과 절대 훼손하지 않겠다던 사구가 물웅덩이로 파헤쳐져 있었다. 갈매기 떼도 명사십리를 떠나 동호해수욕장에 몰려 있었다. 


고창군은 람사르습지 지정 이후 새우 양식장 등 훼손된 갯벌을 복원하고, 람사르 갯벌센터 운영, 갯벌 체험 등 보존을 중심으로 생태 관광 등 지속 가능한 이용에 힘써왔다. 그런데 최근 고창갯벌 배후, 지역민의 한과 땀이 서린 삼양사 염전 부지에 골프장과 리조트 건설사업을 추진 중이다. 보호구역 밖인 명사십리는 해양레저와 힐링 관광지 개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환경연합의 지적과 우려에 환경 훼손 우려는 과도한 해석이라며 해양생태계 보호 지침을 철저히 준비했고, 이번 행사는 그 사전 단계이자 시범적 절차라고 해명했다. 백번 양보해도 대형 지프 차량이 수륙양용도 아닌데, 이게 해양레저와 무슨 상관인가. 혈세 5천만 원에 고창군의 행정 지원이면 명사십리 놀멍, 물멍, 갯멍 행사도 충분하고. 이 돈을 일 잘하는 고창 람사르 갯벌센터에 지원했다면 더 많은 참여와 효과를 낼 수 있는 멋진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것이다. 


고창갯벌과 명사십리 해안가의 생태와 경관, 수산자원으로 어민 소득 확대, 휴양과 체험 중심의 체류형 관광객 유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을이 가기 전에 선운사 계곡 단풍을 보고 붉은 칠면초군락이 있는 좌치 나루를 거쳐, 하전과 만돌 갯벌 방파제 길과 초승달 같은 쉐니어 갯벌을 지나 방풍림 소나무 숲을 끼고 동호해수욕장에서 구시포 명사십리 해당화 길을 자전거로 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