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5.12월호

한전이 짜놓은 한판, 용인 반도체국가산단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용인 반도체국가산단 조감도


일 년 넘게 ‘용인’을 입에 달고 살 줄 몰랐다. 작년 7월, 완주군 신정읍-신계룡 345kV 송전탑 사업 관련 주민들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 후 일 년 반 가까이 송전탑 문제에 매달렸다. 도의회와 국회를 오가며 여러 차례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대선 시기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민주당과 정책협약도 맺었다. 도내에 9개 시군 대책위와 6개 시군 의회와 도의회에 송전탑특위가 구성되었고, 12월 전국대책위 출범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송전탑 폭주의 시작과 끝에는 ‘용인’과 ‘반도체’가 있었다.


지난 10월 1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1차 국가기간전력망확충위원회는 총연장 3,855km, 70개 노선, 29개 변전소에 이르는 99개 국가기간전력망 사업을 일괄 지정했다. 대부분이 서남해 해상풍력과 태양광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공급하는 계획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윤석열 내란 정권의 졸속 작품이다. 2023년 3월 전기도 물도 없는 용인에 원전 10기 분량의 10GW 전기가 필요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덜컥 내놓은 것이다. 당시 SK 하이닉스는 용인시 원삼면에 반도체 일반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필요한 전기와 물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별도의 국가산업단지를 발표한 것이다.


대책은 더욱 어처구니없었다. LNG 발전소 6기를 지어 3GW의 전기를 조달하고, 비수도권 지역에서 초고압 송전선으로 7GW의 전력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전북과 충남, 전남, 강원 전역에 거미줄 같은 345kV 초고압 송전탑을 깔고 변전소를 동시에 건설해야 하는 계획이다. 한전 내부에서도 불가능한 계획이라며 반대 여론이 높았다고 한다. 이런 부실한 계획이 불과 한 달여 만에 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포함되고 최소한의 타당성 검증 장치인 예비타당성조사도 건너뛰었다. 급기야 국가가 내란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2024년 12월 26일, 용인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이재명 대통령이 아무런 재검토 없이 이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경기는 우리나라 전력 수요의 45%를 차지한다. 장거리 송전을 하다 보니 초고압 송전선과 변전소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한전은 2038년까지 송변전 설비에 총 72조 8천억 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수도권은 부담 없이 전력을 소비만 하면 된다. 수도권이 혜택만 누리고 환경적·사회적 부담은 비수도권이 떠안는 극심한 불평등 구조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수도권 전력밀도가 더 높아져 대규모 정전 사고 위험도 커진다. 


주민들이 만든 ‘송전탑 가고 기업 오라’는 송전탑 싸움의 대표 구호이다. 질 좋은 전기를 싼값에 쓸 수 있으면 자연스레 기업도 내려온다는 뜻이다. 전기가 흔한 지역에는 전기료를 저렴하게 책정하는 ‘전기요금 차등제’를 시작하는 것, 이를 위해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 국가기간 전력망 공론화는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송전선로 밀집도가 가장 높은 전북의 피해가 크다. 전남에서 생산된 에너지도 전북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송출될 수 없다. 도내 전역에 345kV 송전선 4개 노선 627km, 21개 사업이 추진 중이다. 송전선로의 터미널인 신정읍변전소, 신임실개폐소, 신고창변전소, 신장수변전소 건설이 따라붙는다.


전북을 포함한 호남권은 태양광과 풍력, 조력, 수소 등 재생에너지 기반이 잘 구축된 지역이다. 용담댐 등 물도 여유가 있다. 국가전략상 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필요하다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 지역으로 입지를 재선정해야 한다. 그것이 수도권 일극 집중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전력 수요를 분산시켜 중앙집중형 전력시스템이 낳고 있는 비경제성, 비효율성, 불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다. 또한 지역 RE100 산단 조성의 전제이기도 하다. 전북이 더는 낙후 지역이 아니라, 나라의 산업구조를 바꾸는 에너지 전환을 선도할 수 있게 된다. 


한전은 속전속결로 입지선정위원회를 밀어붙이고 있다. 충분한 주민 참여 없이 운영되고 있고 설명회는 형식에 불과하다. 자료 비공개와 비민주적 의사결정이 반복되고 있다. 광양~신장수 구간은 회의록 위조 논란까지 발생했다. 지자체에 km당 20억 원의 특별지원금과 마을별 보상을 앞세우면서 주민 갈등과 생활권 파괴가 현실로 다가왔다. 


‘입선위, 결론은 버킹검’이다. 요즘 말로는 ‘답정너’와 비슷하다. 모든 것은 한전이 짜 놓은 판대로 흘러간다는 뜻을 기자회견 피켓에 담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전면 재검토와 분산형 에너지 체계 전환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년 내내 갈등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