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6.1월호

전주시 ‘종이팩 전용 수거함’이 증명한 것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사진(전주시 공식 블로그)


12월 18일, 전북환경운동연합은 '2025 전북환경인상' 정책 부문 수상자로 (유)사람과환경의 강재원 대표를 선정했다. 전주시 1호 사회적기업을 이끌며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환경보호를 결합해 온 강 대표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종이팩 자원순환'의 해법을 현장에서 증명해 냈다.


최고급 천연 펄프로 만들어진 종이팩은 휴지, 건축자재, 재생 플라스틱 원료로 재활용 가치가 높은 자원이다. 시민들도 이를 알고 있다. 정성껏 씻고 말려서 내놓는다. 그런데 종이팩의 재활용률은 13.7%, 멸균팩은 2%에 불과하다. 막상 아파트 재활용 선별장에 가보면 따로 모으는 곳이 없다. 현행 환경부 지침상 종이팩은 여전히 '종이류'에 묶여 있어, 수거 현장에서 일반 폐지와 섞여 버려진다. 여기에 멸균팩에 붙은 '재활용 어려움' 표시는 시민들에게 "이건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강 대표와 전주시, 환경단체, 멸균팩협회는 2023년 11월 '종이팩 자원순환 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강 대표는 전체 공동주택의 32.7%에 달하는 169개 아파트 단지(약 9만 6천 세대)에 830개의 전용 수거함을 운영하며 이를 직접 수거해 재활용업체에 인계하는 전문적인 '전담 회수 시스템'을 가동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월평균 약 12톤의 종이팩이 깨끗한 상태로 회수된 것이다. 이는 전용 수거함과 안정적인 수거 주체, 그리고 행정적 뒷받침만 있다면 귀중한 자원의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재활용률이 낮은 것은 시민의식이 낮아서가 아니라 수거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었다.


강 대표의 수상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강화 움직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지거나 완화됐던 일회용품 사용 규제의 고삐를 다시 죄기 시작했다. 매장 내 플라스틱 일회용 컵의 무상 제공이 금지되어 유상 판매가 원칙이 되고, 종이컵 사용 역시 대형 매장을 시작으로 단계적 금지가 재개된다. 플라스틱 빨대 또한 고객의 요청이 있을 때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강화된다. 환경부는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환경부의 '공동주택 투명 페트병 별도 배출 의무화' 정책의 실질적 토대도 2019년 성남환경운동연합이 성남시, 롯데케미칼과 함께 시작한 시범사업이었다. 수거함 설치를 시작으로 관리사무소를 통한 주민 홍보, 대면 교육을 결합했고, 6개월간 모은 20,870kg의 페트병은 재활용 과정을 거쳐 멋진 가방 등 실제 제품으로 재탄생했다. 시민의 실천, 지자체의 의지, 기업의 수요가 삼박자를 이룰 때 자원순환의 선순환이 완성된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이제 종이팩이 페트병의 뒤를 이어야 한다. 국내 페트병 소비량은 연간 56억 개로, 500ml 생수병으로 환산하면 지구 14바퀴를 돌 만큼 많은 양이라고 한다. 연간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도 44kg이나 된다. 이렇다 보니 종이 팩이 페트병 대체재로 각광받고 있다. 생산·폐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도 페트병에 비해 1/3 정도 낮출 수 있다. 환경단체연합은 생수가 필요한 행사에 자연드림의 ‘기픈물’을 내놓는다. 물을 종이 멸균팩에 담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사용도 줄일 수 있고, 미세플라스틱도 발생하지 않는다.


전주시의 성과는 페트병 사례처럼 전국 확산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32.7%에 머물러 있는 공동주택 수거함 보급률을 100%로 끌어올리고, 단독주택 지역은 동사무소 등을 활용한 종이팩 교환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배출 현장 포스터, 주민자치위원회·통장 회의를 통한 반복 교육, SNS 캠페인 등 다층적이고 지속적인 홍보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멸균팩도 재활용 가능한 자원임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 경기도 시흥시는 전국 최초로 '종이팩 분리배출 활성화 조례'를 제정했다. 전주시도 종이팩을 의무 재활용 자원으로 명문화하고, 수거 체계를 공공 서비스로 안정화하는 조례를 마련해야 한다. 정책의 지속성과 추진력은 법적 근거에서 나온다. 페트병이 그랬듯, 제도가 시민의 실천을 뒷받침할 때 비로소 자원순환은 일상이 된다. 작은 우유팩 하나를 씻어 말리는 시민의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도록, 그 정성이 다시 우리 사회의 귀한 자원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