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삼성전자는 새만금 투자 계획을 철회하며 "향후 새로운 투자 계획이 있다면 새만금에 우선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당시 전북도민에게 뼈아픈 실망을 안겼던 이 한마디가, 1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산업의 거대한 전환을 이끌 핵심 열쇠가 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전력과 용수 문제라는 근본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삼성과 SK가 입주할 이 산단에 필요한 전력은 무려 16GW에 달한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전력 수요의 약 16.5%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원자력발전소 16기 분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문제는 이 막대한 전력을 공급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자체 공급 가능한 양은 고작 4.5GW에 불과하다. 나머지 11.5GW는 타 지역에서 수백 킬로미터의 초고압 송전망을 깔아 끌어와야만 한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로 인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용인 산단 가동에 필요한 물은 하루 최대 167만 톤에 달한다. 이는 수도권 주민 500만 명이 사용하는 양과 맞먹는다. 정부는 강원도에 수입천 댐을 건설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이는 또 다른 지역 갈등과 환경 파괴를 불러올 뿐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비수도권에서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내는 에너지 식민지 구조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제 지역 주민들은 더 이상 송전탑 건설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삶터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려는 정당한 주권 행사다. 용인 산단은 계획 단계부터 이미 좌초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에너지 지산지소' 원칙은 이 갈등의 근본적 해법이다. 전기가 생산되는 곳에서 직접 소비하게 하는 체계는 송전 손실을 줄이고 사회적 갈등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수도권 중심의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의 전환은 바로 이 에너지 구조의 민주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삼성전자가 직면한 더 큰 위협은 글로벌시장의 'RE100' 요구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국제적 캠페인으로, 최근 산업단지 조성과 기업 유치의 주요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 국경세와 RE100 이행은 이제 반도체 수출의 생존 조건이 되었다.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많은 수입 제품에 탄소 부과금을 매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하며, 미국도 청정에너지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있다.
전력이 부족한 용인에서 LNG 발전에 의존해 공장을 가동한다면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고객사들이 이미 공급망 전체의 RE100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석연료 기반의 생산은 치명적 약점이 될 것이다.
반면 전북 새만금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준비된 대안이다.
첫째, 풍부한 재생에너지 공급 능력이다. 현재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상태양광을 제외하더라도, 새만금은 2030년까지 5GW의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여기에 추가로 5GW를 착공하여 2035년까지 총 10GW를 달성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은 용인 산단이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생산 시설로 즉시 전환할 수 있는 '최적화된 유휴 부지'가 풍부하다. 무엇보다 소금기가 있는 간척 농지의 특성을 활용하면, 복잡한 법 개정 절차 없이도 약 4GW 규모의 영농형 태양광 설치가 가능하다. 이는 송전망 갈등으로 10년 이상 소요될 용인과 달리, 정부의 결단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행에 옮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대안임을 의미한다.
둘째, 안정적인 용수 공급 여건이다. 금강 상류 용담호의 1급수 생공용수가 하루 60만 톤에서 최대 80만 톤까지 여유가 있다. 물 부족으로 고민하는 용인과는 차원이 다른 환경이다. 추가적인 댐 건설이나 환경 파괴 없이도 안정적인 산업용수 공급이 가능하다.
셋째, 사회적 갈등 없는 입지 조건이다. 새만금은 간척지로 조성된 국가 프로젝트 부지다. 송전탑 갈등으로 10년 이상 걸릴 전력망 구축을 최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다. 지역 주민들도 산업 유치를 적극 환영하고 있어 사회적 수용성이 매우 높다.
넷째, RE100 달성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다. 재생에너지 기반 생산으로 탄소 국경세 부담을 피하고, 글로벌 고객사의 요구를 충족하며, ESG 경영의 모범 사례를 만들 수 있다. ESG 사업으로 갯벌 복원에 기여한다면 기업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비용 절감을 넘어 삼성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기업이 지방으로 갈 수밖에 없는 압도적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력 인프라 구축, 세제 혜택, 규제 완화, 교통망 개선 등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예고했다.
"I' ll be back" 아놀드 슈왈츠제너거 주연 영화 터미네이터의 명대사다. 삼성전자는 10년 전 약속했던 "I'll be back"을 지켜야 할 때다. 전력과 물 리스크가 없는 곳, 재생에너지가 풍부해 글로벌시장에서 당당히 승부할 수 있는 곳, 바로 전북 새만금이 삼성 반도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할 대안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의 성벽을 허물고 대한민국 전역이 골고루 잘사는 세상을 향한 방향 전환은 우리 시대가 선택해야 할 단 하나의 답이다. 삼성의 결단과 정부의 추진력, 그리고 지역사회의 준비와 협력이 만날 때 '전북 반도체 시대'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