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6.5월호

백로와 인간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서
국내 서식지 위기와 공존의 가능성 ①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대전·청주·전북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10명이 4월 18일부터 23일까지 '백로와 인간 공존의 길을 잇다'를 주제로 베트남 메콩강을 방문했다.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는 백로의 생애를 따라가며, 이번 호에서는 국내 서식지 위기와 공존의 가능성을, 다음 호에서는 국경을 넘는 국제적 보전 연대의 현장을 담는다. 


"저것들이 오면 봄이 오고, 가면 찬바람이 분당게." 20년 전 임실읍 성가리 마을 주민이 했던 말이다. 그때부터 궁금했다. 백로는 어디서 오고 가는가. 왜가리와 백로의 도착은 봄 농사의 때를 가늠하게 했다. 2월이면 왜가리가 먼저 도착해 둥지를 수리하고, 뒤이어 백로와 해오라기가 합류한다. 예전 같으면 써래질하는 황소 뒤를 따르거나 등에 올라탔을 황로 떼. 요즘엔 논을 고르는 트랙터의 뒤를 따르면서 땅속 수서곤충 잡아먹느라 분주하다. 


사람들은 백로를 두루미, 학, 황새라 부르기도 한다. 백로들이 알면 기겁할 일이다. 실제로는 왜가리, 중대백로, 쇠백로, 해오라기, 황로 등 크게 다섯 종이 각자의 생태로 살아간다. 하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들이 우리 곁에 산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주변의 물과 땅이 온갖 생명을 키워낼 만큼 건강하다는 증거다. 이름 정도는 불러주면 좋겠다.


예부터 백로가 사는 마을은 농사가 잘 되고 수확이 좋아 '부자 마을'이라 불렸다. 논과 밭에 물 대기 좋은 곳 가까이, 배산임수의 마을 숲에 둥지를 튼다. 백로의 배설물은 강산성이라 직접 닿는 나무나 식생에는 해가 되지만, 분해 과정을 거쳐 토양으로 퍼져 나갈 때는 영양 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임실 성가리 주민들이 백로를 풍요의 손님으로 아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임실군도 이 도래지를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다만 20여 년 전 5종 304둥지에서 2018년 2종 259둥지로 종수가 줄었다. 다양성은 이미 줄어들고 있다.


백로는 각기 주소가 있다. 이사도 간다. 전주시 백로는 덕진연못 뒤 건지산과 효천지구 삼천 변에 번식지가 있다. 건지산 번식지에는 왜가리, 중대백로, 쇠백로, 해오라기, 황로 등 다섯 종, 1,000여 마리가 산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백로 서식지가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에 두 차례 나무를 심었다. 숲이 유지되는 만큼 둥지 수는 조금 늘었다. 송천동(松川洞)이라는 지명처럼 소나무 숲이 있고, 전주천과 만경강과 덕진연못과 오송제가 가까이 있어 백로 서식지 천연기념물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삼천동 효천지구 서식지는 택지개발 사업의 영향으로 종과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지역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개체수가 늘어나던 서식지였다. 쇠백로, 중대백로, 왜가리, 황로, 해오라기 등 5종, 400마리가 모여 살았다. 


대전과 청주의 백로는 벌목이라는 이름의 생태 테러를 당했다. 도시개발사업으로 서식지가 도심 주거지와 가까워지면서 주민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소음과 악취, 분변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빗발쳤다. 지자체는 둥지를 트는 나무를 잘라 번식지를 없애는 방법을 해결책이라고 내놨다.


2025년 대전 선화초등학교에서 믿기지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학교 건물 신축 공사를 위해 백로의 번식기에 벌목을 강행한 것이다. 날지 못하는 어린 새끼 115마리가 둥지째 땅에 떨어졌다. 그중 30여 마리가 현장에서 죽었다. 문제는 벌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쫓겨난 백로들이 궁동, 남선공원, 내동을 전전했다. 군산에서는 대규모 번식지이던 제지공장 숲이 부지 개발로 사라지면서 조촌동 일대 숲으로 몰려가 문제를 일으켰다. 


함께 사는 길도 우리 안에 있다. 전주 효천지구 개발사업이 작은 공존의 모델이다.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번식지 일부를 원형보전하고 주거지 사이에 '백로공원'이라는 완충지대를 조성하고 소나무 등 침엽수를 심었다. 택지사업을 시작한 2017년 봄, 예상대로 이전의 다양성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꾸준하게 서식지로 기능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약 100쌍의 왜가리가 안정적으로 번식하고 있었다. 


공존의 실마리는 해외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24년 세 단체가 함께 살펴본 일본 홋카이도에서는 백로 번식지를 문제가 아닌 관리 대상으로 접근한다. 인공 둥지를 설치해 민원이 적은 지역으로 번식지를 유도하고,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니터링에 참여하며, 기업이 백로 비행 경로를 고려해 건물 높이를 조정하기도 한다. 공존을 위한 비용과 노력을 사회가 함께 감당하는 구조다.


백로는 국경을 넘는다. 이른 봄 한국에서 태어난 백로가 베트남 습지에서 겨울을 난다. 한국에서 번식지를 잃은 새들이 월동지에서도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 대전, 청주, 전북의 환경단체들이 베트남 현지로 날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들을 지키려면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 베트남 현지 연구자, 국립공원 관리자와의 만남은 그 첫걸음이었다. 세 단체는 향후 일본, 베트남 등 관련 기관과 MOU를 체결하고 공동 조사와 데이터 공유를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