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제2의 도시 호치민시 서쪽에 위치한 '짬침(Tràm Chim) 국립공원'은 이번 여정의 첫 목적지였다. 도로 사정은 좋지 않았지만 붉고 노랗고 하얀 원색의 꽃들이 환하게 피어있고, 앞으로는 도로, 뒤로는 인공 수로가 있는 길다란 집. 거미줄처럼 얽힌 메콩강의 수로를 따라 마을과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와일드버드 호텔(Wild- bird Hotel), ‘야생의 새 호텔’이라는 이름처럼 로비와 식당에 귀한 사진과 쌍안경, 조듀도감이 준비되어 있었다. 벽면 가득히 이 일대의 다양한 새들이 고유한 생태 특성을 잘 그려냈다. 뒷문으로 나가면 짬나무숲 속 사면이 트인 식당이 있고, 짬침 국립공원 수로로 나가는 나루터가 있다. 푸른 하늘과 짬나무 사이 물길, 새들의 울음, 영상미가 아름다운 베트남 배경 영화 ‘인도차이나’나 ‘그린파파야향기’의 한 장면 같았다. 이틀이 꿈만 같았다.
습지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또 다른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현지어로 '짬(Tràm)'은 메콩강 하구 수로와 습지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짬나무를 뜻하고, '침(Chim)'은 새를 의미한다. 이름 그 자체로 '새가 사는 습지의 나무숲'이다. 메콩강의 축복이라는 광활한 범람원 습지대의 총면적은 7,313헥타르(약 2,200만 평)에 달한다. 199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에는 베트남에서 네 번째, 세계적으로는 2,000번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국제적인 보호구역이다.
만경강 어디쯤에서 만난 녀석들인가. 긴 다리로 장감장감 걷는 중대백로와 쇠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가마우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렇게 좋은 환경을 두고 왜 멀리 한국까지 날아와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나 싶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흰날개해오라기, 멸종위기종인 홍대머리황새(Painted Stork), 부리가 가위처럼 교차하는 아시아황새부리새(Asian Openbill), 검은머리흰따오기, 물꿩과 물에서 뱀처럼 헤엄치는 뱀가마우지 무리가 물 위와 하늘을 동시에 생동감 있게 채우고 있었다. 장다리물떼새, 물꿩, 물닭, 킹피셔(호반새), 자카나, 칼새도 만났다. 연예인급 그린비터(벌잡이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물새 25목 49과, 총 231종의 조류가 확인된 짬침은 베트남 전체 조류 종의 4분의 1이 밀집한 서식지다. 특히 전체의 88%가 물이 줄어드는 건기에 집중된다. 백로들은 이곳에서 건기를 보내고 우기가 시작되기 전 대부분 북쪽으로 떠난다. 우리를 안내한 베트남 생명과학연구소 뷔 박사도 세부적인 이동 경로를 완벽히 알지는 못했다. 일부는 텃새로 남고 대부분은 북상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북쪽 어디쯤으로 가서 우기를 나거나, 아예 봄이 되는 한국으로 날아가 번식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즘 돌아오는 백로로 나뉘는 것 같다. 이곳이 더 좋아보이는데 어떤 이유로 한국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추앙하는 자칭 새박사 후배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망대에 오르니 탁 트인 시야에 물소와 검은머리흰따오기 무리가 들어왔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따오기류를 여기서 보다니 가슴이 뛰었다. 우리나라에서 멸종 직전까지 몰렸던 따오기. 중국에서 따오기 한 쌍을 들여와 경남 우포늪에서 복원 사업을 했다. 지금은 야생 방사 단계까지 이어져 우포늪 주변에 100여 마리가 살고 있다.
짬침 국립공원에서 강 하구로 내려가면 껀저 맹그로브 생물권보전지역이다. 메콩 삼각주는 세계적인 새우 수출 거점이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맹그로브 숲과 습지가 대규모 새우 양식장으로 개발되면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곳곳에서 새로운 양식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새우 양식은 초기에는 높은 수익을 가져오지만, 항생제·사료·배설물 등이 축적되면서 오염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몇 년 쓰다가 버리고 다른 곳을 개간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자연적인 범람·배수 체계가 교란되면서 습지 조류의 먹이터가 줄어들었다.
껀저로 가는 길에 들린 '동굴사(Cave Pagoda)'는 인간과 새의 공존의 장소였다. 우리로 치면 일주문이 긴 터널 같아 이름 붙여진 절, 베트남 전쟁 때 폭격으로부터 많은 주민의 목숨을 구한 곳이다. 대웅전 옆 나무들에 100여 마리 이상의 백로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절 곳곳에 배설물이 하얗게 내려앉았고 냄새도 심했다. 하지만 사찰은 새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백로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개체 수가 불어나면서 대규모 번식지가 되었다. 백로를 따라 한국에서 왔다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보면서도 따뜻하게 맞아준 주지 스님은 "앞으로 현재의 번식지를 지키는 것을 넘어, 백로들이 더 넓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서식지 확대 구역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명을 품는 인간의 품격은 이런 것이다.
지금, 우리 마을 숲 백로 번식지에서는 백로가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느라 분주히 먹이를 물어 나르느라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가을이 깊어지면 다시 국경을 넘어 베트남의 습지로 향할 것이다. 백로의 비행경로는 생태적 연결선이다. 백로에게 국경은 없다. 그 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나라 간에도 연대가 필요하다. 생명을 밀어내는 벌목이 아니라 공존의 길을 찾고 국제적인 연구와 데이터를 분석해 번식지와 서식지를 함께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이번 여정이 그 출발점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