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영혼의 무게는 얼마인가.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 유치 논란을 지켜보며 영화 <21그램>이 떠올랐다. 숀 펜이 주연한 이 영화는 인간이 숨을 거두는 순간 몸에서 빠져나가는 무게, 이른바 영혼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영혼이란 결국 한 인간의 존엄과 삶, 그를 둘러싼 세계 전체를 뜻한다.
10년 전 이미 결론이 난 카지노 유치 카드를 다시 꺼낸 이원택 전북도지사. 영혼의 무게를 '21그램'이라는 숫자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내국인 카지노의 본질은 한 인간의 삶에서 영혼을 앗아가 껍데기만 남기는 사행성 도박장일 뿐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오가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의 삶 그 자체다.
비판이 거세지자 이 지사는 "공식 검토가 아닌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의 원론적 구상이었다"며 발을 뺐다. 이 해명에서 느껴지는 것은 도정 수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아니라, 영혼 없는 가벼움이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드가 증명하듯, 카지노가 들어선 지역에 남는 것은 경제 효과가 아니라 도박 중독, 가계 파탄, 고리대금업, 범죄율 증가와 공동체 붕괴다. 카지노 인근 전당포와 대부업 간판이 즐비한 정선의 풍경은 개발 신화가 아니라 폐허의 다른 이름이다. 무너진 주민의 삶을 치유하는 데 드는 복지·치안·치유 비용은 카지노가 가져다줄 세수 효과를 웃돌 것이다.
추진론자들은 세계적인 복합리조트 유치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카지노는 부속시설일 뿐이라고 말한다. 부지 면적만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전체 매출로 보면 부지의 5%도 안 되는 카지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포장지만 복합리조트일 뿐, 알맹이는 국민을 상대로 판을 벌이는 내국인 도박장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덫에 걸리는 이들이 우리 이웃, 서민이라는 점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강원랜드 이용객 70% 이상이 월 소득 200만~400만 원의 서민이다. 부자들은 규제가 많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내 카지노를 찾지 않는다. 해외나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에이전트(고객 전문모집인)를 통해 도박을 즐긴다. 부자는 돈을 잃어도 회복할 여력이 있지만, 서민은 헤어날 길이 없다. 카지노의 덫에 걸리는 것은 고단한 삶에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서민들이다.
이 지사가 불쑥 카지노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새만금 반도체 팹 등 200조 원 투자 유치'라는 무리한 공약의 허점을 자극적인 특혜 카드로 메우려는 조바심이 깔려 있다. 추진 측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를 예로 들며 장밋빛 그림을 그리지만, 이는 현실을 왜곡한 환상이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금융 도시이자 세계적 교통 요충지다. 입지 여건과 배후 인구가 전혀 다른 새만금에 카지노를 짓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억지 논리다. 글로벌 카지노 자본인 샌즈사조차 MICE 인프라를 갖춘 서울과 부산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설령 새만금에 내국인 카지노가 허용된다 해도 다른 지자체가 형평성을 내세워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도미노 현상이 뒤따를 것이다. 기대했던 '독점적 희소성'은 사라지고 도박의 폐해만 남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실제로 2016년 김관영 당시 국회의원이 앞장섰던 카지노 허용 특별법 개정 시도 뒤에는 미국 카지노 자본과 김앤장 법무법인, 박근혜 정부 실세가 있었다. 이들의 최종 목적은 내국인 카지노의 빗장을 여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행법상 내국인 카지노는 「폐광지역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강원랜드 외에는 불가능하다. 법 개정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음에도 도민 의견 수렴이나 관할 지자체와의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인사인 나경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은 선거 기간 카지노 건을 깊이 논의했다고 밝혔다. 도지사 선거에서 '내란 청산'이 핵심 쟁점이었음에도, 윤석열 정부 인사와 손잡고 도민의 삶을 위협할 도박장을 논의했다는 사실은 도민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다.
새만금 카지노 발언이 특히 뼈아픈 이유는, 34년째 이어진 새만금의 희망 고문을 끝내려는 이재명 정부의 새만금 미래 전략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새만금 개발 완료 목표를 2050년에서 2035년으로 앞당기고, 공공 주도의 재생에너지 기반 AI 신산업과 RE100 산단 조성, 조력발전을 통한 상시 해수 유통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35년 새만금 개발사에 기회의 물이 들어오고 있다. 현대차 9조 원 투자 산단과 RE100 기반 첨단기업 유치로 신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상시 해수 유통으로 연안 갯벌을 복원해 어업 소득을 늘리고 마리나 등 수상 레저와 생태관광의 길을 여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이 새만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카지노나 골프장이 아니다. RE100 달성에 필요한 재생에너지와 물을 항구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이원택 지사는 지금이라도 카지노 카드를 완전히 접고, 새만금이 34년 만에 얻은 이 기회에 집중해야 한다. 34년을 기다려온 땅에 다시 필요한 것은 도박판이 아니라, 도민의 삶을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산업과 갯벌 생태복원이다. 21그램의 영혼을 지키는 일은 결국 이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