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멍굴 포레스트    2025.3월호

'고군분투상'을 받았다


진남헌 청년농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상이라는 것을 처음 받아보았다. 농사꾼들의 모임은 1~2월 겨울 농한기에 집중된다. 매년 겨울농한기에는 토종씨드림이라는 단체의 총회에 간다. 토종씨드림은 토종종자를 찾아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모인 귀한 단체다. 그곳에서 오래된 농부들의 경험과 토종씨앗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즐거움과 활력이 솟아난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고추씨앗을 부어 씨앗이 발아되기 전 총회가 열렸다. 이제 몇 주 뒤 얼었던 대지의 빗장이 열리면 너무 많이 쉬어 몸이 달아오른 농부들이 밭으로 쏟아져 들어갈 것이다. 이 총회는 아직 쉬고 있는 농부들의 마지막 잔치다. 천안에서 열린 잔치에 도착하니, 올해 시상식에 새로운 상이 추가 되었는데, 수상자 명단에 있으니 대기하라고 하였다. 두려웠다. 무릇 상이란 상농들과 공훈이 많은 원로들이 받는 것인데, 나의 밑천은 그러할 만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어찌 고사해야 하나.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상의 이름은 ‘고군분투상’이라 했다. 듣자마자 느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고군분투라면 내가 받는 것이 맞다. 


처음 완주로 내려와 농사에 기웃대며 다른 일로 생계를 잇던 시절, 토종씨드림을 만났다. 씨앗을 이어가는 농부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무엇보다 토종종자로 농사지으면 종자를 사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하나 둘 씩 종자를 받아 나에게 맞는 종자를 찾아갔다. 어떤 종자는 3알을 심어 3알을 거뒀고, 또 어떤 것은 3알을 심어 3포대를 얻었다. 시행착오의 시간은 길었다. 그 뒤로도 5~6년은 흘러서야 농사를 지어 생활비라도 보태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고생한 날에는 뼈가 쑤시기 시작한다. 아직 젊다면 젊은 서른다섯이다. 앞으로 농사를 30년은 더 지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삭신이 버틸 것인가. 일을 줄이면 해결될 일이나 농사로 벌어먹어야 하니 농토는 줄이지를 못한다. 50평 텃밭으로 시작한 농사가 지금은 5,000평 전답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처자식 건사에 허덕인다. 묘안은 없는가. 나름 노동시간을 줄여보려 분투 중이다. 작은 농기계들도 도입하고, 삽으로 배수로 파는 일도 멈추려 굴삭기 면허도 땄다. 마을 분들은 어찌하나 살펴보니, 다들 작은 일자리를 하나씩 가지고, 농사일을 줄여 나간다. 나도 작은 일자리를 가져볼까 싶다가도 그렇게 돈은 다른 곳에서 벌고 농사짓기 시작하면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근처에서 농사짓는 형님 식구들이 찾아왔다. 형은 배나무 농사를 지으며 밭에서 나온 채소들을 활용해 식당을 운영한다. 올해는 눈도 많이 오고 날도 추워 겨울에 쉬는 날이 많았다. 덕분에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좋은 계절이다. 농사 이야기에 밤이 깊어간다. 날씨는 어땠는지, 작황은 어떤지, 내년에는 무엇을 심을지,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이다. 그러던 중 형은 말했다. 길게 보아야 한다. 당장 내년을 생각하는 것도 중하지만, 길게 보고 점차로 농사일을 상황에 맞게 조정해가야 한다. 일부에라도 천천히 나무를 심어나가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나무는 해를 거듭할수록 나무가 스스로 농사짓는다. 땅 속 뿌리는 점차로 뻗어 풀들을 다스리고, 하늘을 향해 커지는 줄기와 가지는 그늘을 드리우고, 겨울이 오면 낙엽으로 흙을 덮어 양분을 지킨다. 참으로 묘수가 아닐 수 없었다.


내 땅을 사던 해, 사과나무를 심어보겠다며 수십 그루를 사다 땅에 심어놓고, 버려진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충분한 고민 없이 열망만으로 짓는 농사는 흉년의 앞잡이요, 폐농의 지름길이다. 나무는 땅에 맞는 나무를 고르는 것과 심기 전에 흙을 가꾸는 것이 반이다. 이 땅에 맞는 나무를 심으면 애쓰지 않아도 순풍에 돛단 듯 자라난다. 결국 선조들에게 답이 있었다. 이 주변 마을은 모두 감나무를 너나없이 몇 그루씩은 기른다.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감나무는 큰 고목으로 자라니, 가을이면 수확의 기쁨을 선물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아온 시간은 어쩌면 청춘이라 가능했을지 모른다. 어려운 길로 돌아가지 말자. 사람들이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요즘은 어른들 감나무 농사짓는 일을 오고가며 유심히 묻는다. 


땅을 잘 준비하고, 감나무의 생리를 충분히 익혀 봄이 오면 감나무를 심을 것이다. 모든 땅을 과원으로 바꾸는 것은 가당하지 않으니, 조금씩 심고 가꿔 봐야 한다. 몇 년이 흘러 그것이 나와 잘 맞으면, 그때 또 일부의 땅에 감나무를 심고 가꾸면 된다. 길은 보이는데,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포기는 없다. 농사는 땅을 지키고 버티는 자의 것이라 하지 않던가. 고군분투 뒤에 올 안빈낙도를 기다리며, 오늘도 한 발씩 농사꾼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