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멍굴 포레스트    2025.4월호

좋은 마음만 고르고 골라 밭을 일군다


진남헌 청년농부





밤나무가 많아 율곡이라 불리는 골짜기들이 있었다. 산골에는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것이라 같은 땅에서도 소출이 적다. 그렇기에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열심히 땅을 갈았지만 배부른 날이 적었다. 80년대까지도 마을 사람들은 평야가 너른 옆 마을들로 품을 팔며 생계를 이었다고 했다. 군부독재가 종언을 고하던 무렵, 산골의 빈곤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율곡의 젊은이들은 고민했다. 그들은 농촌을 일으킬 뿌리가 되자며, 스스로를 ‘뿌리회’라고 불렀다. 전국의 부유한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마을을 살릴 방도를 찾았다. 버스를 빌려 다른 지역을 다녀온 날이면 밤을 새워 토론하던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뿌리회의 답은 소였다.


소가 개보다 싸던 시절이었다. 20명 남짓한 청년들은 서로 쌈짓돈을 모아 다섯 마리의 소를 샀다. 한우공동체의 출발이었다. 청년들은 정성으로 소를 길렀다. 소는 새끼를 낳고, 새끼는 자라 어미가 되었다. 하지만 소를 팔아도 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침 율곡리의 교회에는 한 젊은 목사가 내려왔다. 목사는 영농법인을 만들어 소를 직접 팔자고 했다. 그렇게 목사와 마을의 젊은이들은 전라북도 1호 영농조합법인을 만든다. 식당은 대박이 났다. 고기는 저렴했고, 신선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고산미소라는 소고기 집의 시작이 청년들의 쌈짓돈으로 만든 소 다섯 마리였다.


여기까지였다면 가난한 마을 청년들의 대박 식당 창업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건강하게 키운 소와 생태계가 순환하기를 바랐다. 축사를 가진 사람만 돈을 벌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도움을 받고, 땅이 살기를 원했다. ‘소똥으로 퇴비를 만들어 마을의 땅을 살리자.’ 청년들은 마을에 대규모 친환경 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논에서 친환경 벼를 생산하고, 그 벼에서 나온 왕겨나 볏짚 같은 부산물과 소똥을 섞어 퇴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퇴비를 다시 마을의 논으로 돌려놓았다. 유기농으로 생산된 쌀과 건강하게 자란 소는 순환하며, 땅을 살리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때부터 우리 마을은 입구부터 유기농과 무농약 팻말로 넘실거리는 골짜기로 변해갔다. 


처음 이 마을로 이사해 제일 낯설었던 풍경이었다. 몇 십 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 입구에는 거대한 친환경 벼 도정시설이, 마을의 뒤편에는 퇴비공장이 있었다. 그 뒤로 마을에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며 이 거대한 서사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갔다. 퇴비공장에서 밭에 낼 거름을 사올 때면 괜스레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퇴비를 사러 갈 때면 마을 어른들이 가꾸는 수많은 축사들과 유기농으로 키우는 너른 논, 밭을 지난다. 수십 년 전 마을의 청년들이 사왔다는 소 다섯 마리가 지금의 이 거대한 순환의 시작이었음을 볼 때마다 믿기지 않는다. 그 순환에 기대 살면서 그들의 지혜와 선한 마음에 다시금 탄복한다. 


4월 말에 땅으로 나갈 생강 밭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다. 눈이 많은 해에는 봄 가뭄이 덜하다고 하는데, 마른 땅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산불소식을 들으니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어가나 보다. 이럴 때에는 좋은 퇴비를 넉넉하게 땅에 내는 것이 중요하다. 거름에 들어간 왕겨와 유기물들이 물을 지키는 작은 웅덩이 역할을 한다. 땅에 물이 있어야 양분이 녹아 생명의 밥이 되고, 작물들은 그 생명들의 밥을 나눠먹으며 자라난다. 그래서 무엇보다 질 좋은 퇴비를 땅에 뿌리는 것이 유기농업의 첫 걸음이요. 땅을 살리는 것이다. 생강과 그 전통농사법은 완주, 전주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이다. 이곳의 땅이 생강농사에 가장 잘 맞아 조선 팔도의 생강은 전주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으니, 천 년간 생강을 재배했다는 게 아주 빈말은 아닐게다. 그 중에서도 생강농사에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토종 종강을 구하는 것이다. 다행히 생강보존회와 함께 우리 밭에도 지역에서 대대로 이어온 생강을 찾아 종강으로 사용한다. 좋은 종강을 이어가는 어른들의 노력이 있어 나 같은 신출내기도 이 귀한 농사에 동참할 수 있으니, 참으로 행운이다. 


식물에도 지능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향해 뿌리를 움직이고, 스트레스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지능이 있으니, 당연히 마음도 있다. 슬픔으로 자란 생명은 슬픔을, 사랑으로 자란 생명은 사랑을 품는다. 그 마음이 전해져 똑같이 달콤하고 고소한 농산물을 먹어도 좋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키운 먹거리는 먹는 사람의 입뿐 아니라 속도 편하게 해준다. 그래서 한 가지 작물을 키워낼 때에는 종자하나 퇴비하나 신중을 기해 골라야 한다. 땅에 그 수많은 마음들이 담겨 작물에 고스란히 들어나기 때문이다. 좋은 거름, 좋은 종자, 그리고 그것들을 농사꾼의 정성으로 땅에 잘 연결할 때, 풍년이 온다. 올해도 많은 이들의 좋은 마음만 고르고 골라 밭을 일군다. 4월 말이면 이제 본격적으로 땅에 작물들이 심겨질 것이다. 농사는 심기 전이 반이라 했다. 선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풍년을 기원하며, 오늘도 빈 밭을 일구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