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멍굴 포레스트    2025.5월호

땅이 농부를 고른다


진남헌 청년농부




마을 안에 있는 재실에 새 거처를 마련한지도 6개월이 넘어간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며 작은 사회생활이 시작되자, 아무래도 산 하나 넘어 산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일이다. 그래도 별 수가 없으면 산골에 살아야하는 것이나 다행인지 마을 안 빈집에서 사람을 구해 들어가게 되었다. 새로 들어간 집은 재실이라고 불리는 문중의 종택이다. 재실에 사는 것은 일반 집에 세를 사는 것과는 거주조건이 약간 다르다. 집에 살며 벌초나 제사 같은 이런저런 문중의 일에 힘을 보태는 것이 주요한 조건이다. 옛날엔 재실에 사는 재공지기가 직접 벌초도 하고, 제사상도 차리고 했다는데 지금은 비용을 들여 전문가들이 일을 봐준다. 세월이 변하긴 했다. 재공지기의 또 다른 조건은 마을 안에 있는 문중의 토지를 경작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세경으로 문중은 제사를 지낸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다 보니, 아무래도 비좁은 산골의 집과 농토가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집도 해결하고, 문중에 딸린 전답을 경작할 수 있게 되니 이래저래 일이 풀리나 하였다.


제사 비용을 대는 문중의 전답은 마을 한 가운데 있었다. 오며 가며 보이는 오래 묵은 땅. 6년 전이던가. 그때 재공으로 살던 할아버지가 지었던 고추농사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밭이다. 고추 말목은 덤불들과 엉겨 자리에 반쯤 누워있고, 여기저기 뜯어진 비닐이 썩지도 않고 땅에 붙어있다. 참으로 을씨년스러웠다. 다음에 오는 사람은 저 많은 걸 어찌 치우나. 오며 가며 남 일처럼 이야기하던 밭일이 내 일이었구나. 역시 사람은 입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땅은 농군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으니 자리를 나섰다. 다행히 문중에서 굴삭기를 이틀 얻어주었다. 그 덕에 엉겨 붙은 비닐과 수년째 자란 나무들을 수월하게 처리했다. 남은 비닐들을 줍고 말목을 치우고, 땅에 배수로를 잡으며 하나씩 묵은 일을 잡아갔다. 일은 고되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자리에 일곱 마지기도 넘는 땅을 경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땅에 들어갈 모종을 준비하고 땅을 다시 밭으로 만들고, 할 일이 많았다. 


대충 밭의 모습이 갖추어 지고, 땅을 한 번 갈아 흙살을 드러낼 차례이다. 그런데 이쯤 하니 이 밭이 어떤 곳인지 슬슬 감이 온다. 밭은 나에게도 오가기 편한 곳이지만 우리 마을사람 모두에게도 그렇다. 재공의 땅은 모두의 귀갓길과 출근길에 위치해있으니 농군의 일거수일투족이 구경거리이다. “올해부터 짓기로 했구먼.”에서 시작해 “그 일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모든 말이 밭을 가는 하루에 오간다. 일주일 동안 만나는 마을사람을 하루나절에 만나고, 모든 사람이 농사에 관해 한 마디씩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 땅은 빌린 토지이다. 이 땅의 풀이 작물보다 키가 커지는 순간, 마을 모든 사람들에게 올해 들어온 재공은 풀을 키우는 농사를 아주 기가 막히게 한다고 말이 돌 것이다. 농사꾼에게 밭은 곧 나의 됨됨이요. 평판이라 보면 된다. 더구나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밭이라면 그것은 농군의 얼굴쯤 되는 것이다. 재공의 밭은 막중한 부담과 결연한 의지를 동시에 일으켰다. 


의지를 불태우며 밭을 갈았다. 이제 승부는 막이 올랐고, 풀과의 전쟁이 선포되었다. 그러던 차에 문중에서 전화가 왔다. “땅을 팔게 되었습니다. 올해 농사가 어렵겠습니다.” 허탈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이 빈자의 처신법이다. ‘네 알겠습니다.’ 한마디로 그간의 노력을 갈음했다. 지금 있는 땅을 더 정갈하게 경작하라는 의미인가보다. 차라리 세평에 오르내리지 않는다니 좋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며 돌아선다. 그래도 씁쓸함이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일로 얻은 시름은 일로 달래는 것이 옳다. 산 속에 있는 다른 밭들로 걸음을 돌린다. 감자밭에 풀을 매고, 생강을 심고, 고추밭에 거름내고, 할 일은 많다. 마침 내일 비가 온다고 하니 생강을 심어야겠다. 겨우내 보관된 생강을 꺼내 튼실한 놈들만 고르고 골라 종강을 삼는다. 씨 생강을 하나하나 쪼개며 마음의 부담을 나누고, 땅에 종강을 심는 김에 원망도 같이 묻어버린다. 


잘 준비된 땅에 생강을 심고 나니 꽤 많은 양이 남는다. 한 1kg는 되는 것 같은데 어쩐담. 마침 배추밭 옆에서 농사짓는 할머니가 씨생강을 찾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나의 농사스승이다. 항상 어떤 작물을 심는지 자세히 물어보시곤 때가 오면 작업지침을 내려주신다. 이때는 심는 것 이때는 거두는 것, 지금은 추비를 내는 때, 풀을 잡을 때, 농사의 모든 일은 때가 있어 시기를 놓치면 일이 고되고 거둘 것이 없다. 항상 지침의 말미에는 덕담을 하시는데 ‘농사가 잘되어서 돈 많이 벌어야지.’ 하는 그 한마디가 참 좋다. 누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것이 느껴질 때 올라오는 뜨겁고 울컥한 것이 있다. 읍내 나가는 길에 할머니에게 들른다. 남은 씨생강을 드리고 돌아섰다. 어른들은 항상 공짜로 받는 것이 없다. 읍내에 나갔다 돌아오니 현관에 고구마 한 봉지가 올려져있다. 아내에게 물으니 할머니가 왔다가셨다고 했다. 고구마를 내어주시며 문중 땅을 할머니 아들이 사셨다고, 우리가 다 짓기엔 땅이 너무 많으니 갈아놓은 땅은 직접 지으라 하시고 가셨다했다. 어리둥절하다. 삼일 만에 땅을 잃었다 다시 얻었다. 


기실 밭을 정리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할머니는 보고 계셨다. 아마도 문중에서 땅을 내놓으니 집 앞에 땅을 외지사람이 사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거에 사들이셨나보다. 땅이 농사꾼을 고른다더니, 올해는 내가 그 땅을 지을 차례가 맞나 보다. 시골에서 한 해 한 해 살아갈수록 마음의 빚이 쌓인다. 아무래도 올해 밭농사가 잘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