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멍굴 포레스트    2025.5월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진남헌 청년농부




식물에게 익어간다는 말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맨 처음 흙을 만나 싹을 틔운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몸을 키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익힌다. 식물에게는 왕성하던 청춘의 패기가 몸을 키우는 때라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이제 늙고 있음을 나타낸다. 초록을 넘어 푸르기까지 했던 잎사귀들은 노쇠하여 누래지고, 알곡을 향해 기운을 몰아준 줄기와 뿌리는 점차 말라간다. 그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던 흙에는 죽어가는 뿌리들 사이로 빈 공간이 드러난다. 


자연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생명이 만든 빈 땅에는 새로운 싹들이 자리를 잡는다. 몇 달, 아니면 몇 십 년을 흙 속에서 기다리던 수많은 식물의 씨앗들은 빈 땅이 어디 있냐며 모두 한 자리씩 터를 잡는다. 배추가 잎사귀 푸르게 번성하던 때에는 보이지도 않던 잡초들이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니,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밀과 보리가 익어가는 밭도 사정은 매한가지이다. 밀과 보리는 특히 다른 풀들과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왕성하게 자라던 봄에는 흙에 그 누구도 터를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열매를 맺을 즈음이 되면 뿌리 쪽에선 벌써 새로운 싹이 드문드문 올라온다. 


 한쪽에선 농사꾼과 일 년을 같이할 생명이 새 삶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겨우내 서늘한 뒷방에서 머물던 쌀은 이맘때가 되면 쭉정이를 고르고, 촉을 틔워 모판에 앉힌다. 곧 보리와 밀을 베어낸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벼들은 무럭무럭 몸을 키우고 있다. 그 생명을 돕기 위해 농부는 살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새순이 움트던 나무들의 가지를 자르고, 자라나던 보리를 뽑아 올려 생강 밭에 덮어주고, 땅에서 올라오는 풀의 싹들을 도륙한다. 


농번기란 기실 정갈한 논밭을 위한 숙청의 기간이다. 산천에 찾아온 온기가 만물을 소생하면, 온갖 이름도 모를 풀들이 흙의 빈틈을 비집고 올라온다. 오뉴월이 되면 땅은 더 이상 빈틈을 찾을 수 없다. 그 터줏대감들 사이에 이른 봄부터 키운 모종들을 심어야 한다. 우리를 먹여 살릴 작물이 땅에 자리를 잡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이미 자리 잡은 생명들을 베고, 뽑고, 필요하다면 흙을 뒤집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잔혹한 풀과의 전투가 한차례 끝나면, 땅은 다시 언 땅이 녹고, 풀들이 자리 잡지 않아 고슬 거렸던 3월 초의 땅으로 돌아간다. 그런 뒤에 귀하신 몸들이 오와 열을 맞춰 밭으로 들어간다. 잘 정리된 밭을 보면, 폭정이 극에 달았음을 실감한다. 작물이 들어간 뒤에도 살육은 멈추지 않는다. 풀들은 온기와 물을 만나 흙이 손톱만큼만 보여도 촉을 틔운다. 이때는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그 어떤 농군이라도 잔혹하기가 이방원 못지않다. 그 피바람이 잦아들면 선택된 생명들은 번성할 지니, 초록빛 생명들의 생애도 인간의 삶이나 매양 다르지 않다.


생사의 전선에도 손님이 찾아온다. 올해는 유난히도 봄비가 알맞게 때맞춰 내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땅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작물도 농사꾼도 주말을 보냈다. 귀한 손님이 오시면 농부는 그제야 학정을 멈추고 흙 묻은 낫과 호미를 씻어 잠시 문 앞에 내려놓는다. 환한 대낮에 장화를 신지 않았던 것이 얼마만인가. 간만에 발도 자유를 만끽한다. 우선 따뜻한 물에 몸을 깨끗이 씻는다. 밖에서 더운 기운을 한껏 받은 몸에 온수샤워까지 마치면 오장육부까지 열이 오른다. 상기된 몸을 이끌고 냉동실의 얼음을 꺼낸다. 우리 집에서 가장 길고 큰 유리잔을 꺼내 얼음을 채우고, 물을 가득 채운다. 잔과 얼음이 만들어내는 청아한 소리와 함께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다. 열 오른 몸속에 들어가는 냉기의 향연, 음양의 조화가 곧 이것이요. 극락의 불국토가 바로 이곳일 것이다. 


저녁이 되자 어린이집에서 고된 사회생활을 마친 자식들이 부인과 함께 돌아온다. 동틀 녘에 나가 해질녘에 들어오니, 통 얼굴 마주할 시간이 없다. 이런 날은 모처럼 찾아온 어린이 날이랄까.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니 마음속에 의심의 싹이 올라온다. 누구를 위해 이다지도 바쁘게 살아가는가. 처자식을 위한다면서 같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많이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된 노동으로 골병드는 몸을 보라. 지금 당장 멈추고 현재의 행복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에 찾아온 의심의 싹은 지친 몸에 오한이 드는 속도로 빠르게 정신을 지배한다. 드디어 폭정을 끝낼 때가 온 것인가. 논리적으로도 완벽한 휴식의 명분이다.


지난 열 번의 농번기를 통해 느낀 것이 있다. 농사꾼은 절대 철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형태는 절대 현학을 허용하지 않는다. 달콤한 휴식 속에 찾아오는 의심의 싹을 잠깐이라도 방치하면, 농번기는 지나간다. 모처럼 땅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을 보내주지 아니하고 오랫동안 내 방에 묵어가게 하면 여름이 왔을 때 반드시 후회한다. ‘그 때 풀을 한 번 잡아줘야 했다.’ ‘그 날 비 오기 전에 저것을 심어야 했다.’ 현학에 속으면 온갖 번뇌가 삼복더위와 함께 찾아올 것이다. 농군에게 베짱이의 길은 폐농의 선봉이요, 후회의 앞잡이이다. 진짜 나와 가족을 위한다면, 분연히 일어나 장화를 신고 낫을 들어라. 의심하지 말지어다. 불행의 싹을 발본하고, 고행 뒤에 올 번영의 땅을 위해 나아가자. 이제 비는 그쳤다. 오늘도 나는 우리를 위해 피바람이 부는 전선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