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멍굴 포레스트    2025.7월호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진남현 청년농부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 되면 들녘은 거둬야 할 것들로 넘쳐난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보리와 밀이 익어가며 들판에 황금물결을 만든다. 마늘과 감자도 푸르렀던 잎사귀를 노랗게 띄우며 땅 속 뿌리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무공해 농사짓는다고 풀이나 키운다며 나무라는 경우가 많지만, 풀 속에서도 작물은 자라나고 알곡은 차오른다. 때가 되면 조금 덜 먹을지는 몰라도 못 먹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무공해 농사나 일반 농사나 거둔 것을 제때 팔지 못하면 힘들게 키워도 소용이 없다. 못 팔고 밭에 남겨져 도로 땅으로 돌아가는 거름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농군들에게 잘 짓는 것만큼 다 파는 것도 참 중요하다. 결국 팔아야 먹고 사니 말이다.


완주에 내려오고 처음 지은 작물은 완두콩이었다. 약을 치지 않은 농사를 지으니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리라 생각했다. 완두콩을 거둬 도시에 있는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겠다며 바리바리 배낭에 완두콩을 넣고 올라갔다. 그때 선물 받은 사람들 대부분의 얼굴에서 신기함과 처치 곤란의 난처한 표정을 보았다. 당연히 주문이나 폭발적인 관심 같은 것은 없었다. 그날 무궁화 기차를 타고 돌아오던 5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그 뒤로도 몇 해 동안은 무엇이 잘못된지도 몰랐다. 생산한 농산물이 냉담한 반응과 함께 돌아올 때면 왜 이 좋은 것을 몰라보나 화가 났다.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하며 수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 둘 농산물을 사가는 사람들이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은 취미고, 사먹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무공해 농산물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작물과 맛이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이 원해야 팔린다. 


올해 봄에는 배추를 심었다. 지난 가을 사람들이 너멍굴에서 생산되던 토종배추를 정말 좋아했다. 찬물이 나는 땅과 해가 빨리 지는 땅에서 자라난 배추는 연하고 달았다. 그 덕분에 작년에는 배추를 팔아 겨울을 났다. 영농교범을 찾아보니 봄에도 배추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가진 땅에 잘 맞는 작물을 지어보자. 봄에 심은 배추는 예상대로 잘 자라났다. 그래도 혹시나 남들이 원하는 상품이 되지 못할까 쉽사리 예약은 받지 못했다. 5월쯤 되자 역시나 일이 터졌다. 혹시 하는 마음에 두 가지 품종의 배추를 심었는데, 그중 한 품종이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오다가다 마주친 어른들은 저마다 꼬꾸라진 배추에 말을 얹었다. ‘저게 왜 저러지? 정말 좋았는데 갑자기 가버리네.’ 다행히 나머지 배추가 속이 차며 본격적인 더위가 다가왔다. 


절반의 배추가 버려져 볼품없는 밭을 옆집 할머니가 한참을 바라보셨다. 그리곤 나를 불러 말했다. ‘남은 것을 늦기 전에 팔아야 한다.’ 그래 망했다 생각하고 바라만 본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고쳐 잡고 여기저기 판매글을 올리며 절반의 배추를 소개했다. 다행히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6월은 더위가 몰려오기 시작하는 시기다. 봄에 뿌린 잎채소들은 억세 지고, 여름에 나오는 제철채소들이 아직 좌판을 벌이기 전인 이맘때는 의외로 제철채소가 귀하다. 봄배추를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 틈새에 얻어걸려 더위를 살아남은 절반의 귀한 배추들은 고마운 사람들의 식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대박은 치지 못했지만 손해는 면했다. 절반의 성공도 성공이니, 올해 봄배추 농사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잘 지어, 잘 팔았다. 


농군의 여름은 이제 시작이다. 거둬서 잘 팔았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 배추와 마늘, 감자와 보리, 밀이 나온 빈 땅에 콩과 들깨, 벼를 심어야 한다. 6월부터 장마가 지날 때까지 농사꾼들에게 그야말로 쉴 틈 없는 일의 폭격이 떨어진다. 뿌린 씨앗을 거두고, 새 씨앗을 뿌리는 철이다. 누구 하나 손 놀리는 이가 없는 이 계절에는 마을 어른들이 서로 길에서 마주치면 ‘일 좀 그만하자’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요상한 덕담이다. 누구도 놀 생각이 없지만, 서로 휴식을 권장한다. 마치 무더위와 함께 찾아올 농한기에 후회하지 않기 위한 농군들의 주문처럼 들린다. ‘조금만 더하면 쉴 수 있다. 힘내자.’ 서로에게 던지는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