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가 이삭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벼의 이삭이 피어난다는 말은 곧 쌀알이 달릴 꽃대가 올라오는 것을 말한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가 아직 무더위의 건재함을 알려주지만,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곧 가을이 올 것임을 암시한다. 우리가 먹는 쌀은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이맘때 이삭을 내밀고 꽃을 피운다. 쌀은 품종이 수백 가지이다. 벼의 이삭도 품종따라 다 다른 모양으로 각자의 때에 맞춰 피어난다. 우리 집에서는 ‘보리벼’라고 하는 품종의 토종벼를 농사짓는다.
처음 보리벼라는 품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보랏빛 수염 때문이었다. 옛날 벼들은 벼 이삭의 끝에 까락이라고 하는 수염이 달린다. 이 까락은 산짐승으로부터 이삭을 보호하고, 새벽녘 수분을 모아 벼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보리벼의 까락은 처음 이삭이 피어나면서 보라색으로 색을 올린다. 벼들이 보랏빛 까락을 올리고 넘실거리는 풍경은 참 곱다. 첫 해엔 그 풍경을 보기위해 보리벼 농사를 시작했다. 거둬서 맛을 보니 단단하고 쫄깃한 것이 제법 맛났다. 그 맛과 풍경을 보기위해 그 다음해부터 본격적으로 ‘보리벼’ 농사를 시작했다.
보리벼 농사는 고운 풍경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이상하게 포기가 벌어지지 않았고, 알곡이 맺히는 이삭의 개수가 적었다. 더운 여름날 피어나는 이삭에는 벌레들이 기승을 부렸고, 벌레를 이겨낸 이삭들은 키가 크게 자라나 가을이 되면 쓰러져 버렸다. 기계가 들어가지 못해 낫을 들고 들어가 벼를 베어냈다. 힘들여 베어낸 쌀을 털면 너무 지나치게 알이 잘아서 무슨 좁쌀을 보는 것 같았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다 우여곡절 끝에 거둬들인 보리벼는 생산량이 너무나 적었다. 자연농으로 좋은 쌀을 먹자는 일념으로 몸을 갈아넣었지만 허망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딸을 바라보았다. 기쁨보다 불안이 많아진 시기도 이때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보니 발달장애가 있었다. 이때쯤부터 보리벼는 단순히 보랏빛 까락을 지닌 고운 쌀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듯하다. 왜냐하면 딸아이의 이름이 ‘진보리’였기 때문이다. 평소였다면 이 종자는 벌써 다른 품종으로 대체하였을 것이다.
이름이 보리라는 이유로 보리벼를 계속해서 심고 거뒀다. 그러면서 매년 한 가지씩 농사방법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해에는 씨를 부어 모를 키우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달리해 이 땅에 맞는 방법을 찾고, 시기를 바꿔가며 심고 거둬보며 제일 나은 때를 찾았다. 지금 그 때를 돌아보면, 아마도 보리벼를 지으며 보리를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보리벼’는 벼의 일종인데 왜 보리를 붙였을까 의아했다. 찾아보니 보리와 비슷한 맛이 나서 그렇게 불리운다 말하는 사람도 있고, 보리처럼 까락이 있어 이름 지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쌀을 수 년 동안 농사짓고 먹어보면 보리랑 비슷한 맛이나 식감이 있는지는 아무래도 모르겠다. 작년에는 이 이름이 붙은 무언가 숨겨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가을에 보리를 농사짓고 뒷그루로 재배하는 이모작 벼라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벼는 추워져야 알곡에 맛이 든다. 그런데 유독 빨리 익는 보리벼는 남들 심을 때 심으면 너무 더운 날 이삭이 피어나 벌레들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 해충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남들보다 더 늦게 벼를 심어야한다.
토종작물들의 이름을 보다보면 그 작물의 생김새나 맛, 농사짓던 지역을 따서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간혹 농사짓는 방법과 관련된 이름이 있다. 보리를 거둔 들에 심는 벼라는 의미로 ‘보리벼’라고 지었을 수 있지 싶었다. 작년 가을 보리를 심고 올해 봄, 보리를 거둬들인 자리에 벼를 심었다. 보리, 벼 이모작이다. 대조군으로 보리 농사를 짓지않고, 바로 보리벼를 심은 논도 한 다랑이 남겨두었다. 이삭이 피어나는 요즘 논을 둘러보니, 보리를 심었던 논에 심은 보리벼가 포기가 늘어나고, 키도 작아지는 것이 보인다. 일단 지금까지는 성공이다. 키가 작고 줄기가 두꺼우니 올해는 벼가 좀 덜 쓰러지고, 알도 커지려나 기대가 커진다. 더위가 물러가고 이삭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벌레도 덜 꼬일 것이다. 아쉬운점이 없겠냐만 올해는 그래도 작년보다 나아지려나 싶은 초가을의 문턱이다.
보리벼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지낸 지 올해로 4년이 흘렀다. 아직 미숙한 나의 농사 실력은 언제나 나아지려나. 다른 집 논에는 벼가 어찌나 빼곡하고 푸르게 자라있던지 볼 때마다 부럽고, 부끄럽다. 그러나 조금 작고 볼품이 없어도 기다리면 벼는 반드시 익는다. 조급하여 서두르면 일 년 농사를 그르치는 것이니, 이제 농군의 일은 자주 들여다보되 안달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새벽 시간 들에 나갈 때 한 번, 저녁에 돌아 올 때 또 한 번 논을 돌아본다. 풀이 올라오면 베어내고, 찬물이 지나는 논에 물길을 손보고, 논둑에 뚫리는 두더지 구멍을 막아 물을 지킨다. 정성을 다하다 보면 반드시 가을은 오니, 힘을 내보자. 무더운 오늘도 보리벼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