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멍굴 포레스트    2025.10월호

멧돼지의 습격


진남현 청년농부





내가 사는 산골은 기실 멧돼지의 땅이었다. 그들의 놀이터이자 먹이활동의 공간이었고, 새끼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교육장이었다. 10년 전 스물일곱, 청년의 패기로 초막을 지었을 때, 돼지들은 날 신기해했다. 밤이면 초막의 뒤에서 멧돼지의 숨소리가 들렸고, 바로 옆 남새밭을 놀이터삼아 망치기도 했다. 초보농군은 그들의 땅을 경작했고, 멧돼지들은 애써 가꾼 논밭을 헤집었지만 서로를 호기심어린 애정으로 봐주며 넘어갔다. 시간이 흘렀다. 초막을 짓고 살던 나에게도 멧돼지들처럼 가족이 생기고, 지켜야할 자식이 생겼다. 집 앞에는 담장을 쳤고, 논밭은 차츰 울타리를 치며, 호기심은 경계심으로 바뀌어갔다. 


멧돼지들은 벼가 익어가는 여름날 논에 들어가 흙 목욕하는 것을 좋아했다. 여름이 되면 몸에 달라붙은 벌레들을 흙으로 씻어내고 물로 더위를 식혔는데,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논이다. 거기에 깨끗이 씻고 나면 논에서 익어가는 벼를 마음껏 훑어 먹을 수 있으니, 도랑치고 가재잡고 멧돼지들에게 천국이었을 것이다. 처음 이 돼지들은 논에서 노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매년 힘써지은 벼가 20% 정도 엉망으로 변했지만, 그들의 땅에 침입한 것은 나였기에 주인에게 내는 새경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산골에 들어와 몇 년이 지나자 농사가 제법 틀을 갖췄다. 밭에도 먹을 만한 작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논에서만 놀던 돼지들은 슬슬 먹음직한 작물이 있는 밭으로 기웃거렸다. 밭 가상까지 와서 코로 살짝 건드리고 도망가기도 하고, 슬쩍 집 앞에 와서 내가 잠들었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리곤 하루 날을 잡아 밭에 가꿔진 작물을 모조리 먹어버리곤 떠났다. 약탈이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있는 무자비함이었다. 그들의 땅을 침입한 약간의 미안함이 적개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밭에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그들과 나의 경계 앞에 돼지들은 당황했다. 얇은 그물망이었지만 낯선 냄새와 모양에 그들은 침입을 멈추고 달아났다. 이후 매년 경작지가 늘었다. 그때마다 밭에는 항상 울타리를 쳤다. 멧돼지들은 울타리 앞에서 몇 번 입질을 해보곤 돌아갔다. 나는 산에 있는 밤과 도토리를 줍지 않았고, 돼지들은 밭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래도 매년 논에는 돼지들의 목욕탕이 개설되었다. 서로 모든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상대의 전부를 빼앗지는 않는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자, 평화의 균형은 깨져갔다. 내가 산골에서 처음 경작을 시작하던 면적은 300평 정도였다. 식구가 늘고 살림이 불자 경작지는 점점 불어났다. 7년쯤 흐르자 면적이 10배 넘게 불어났다. 거기에 아무도 없던 산골에는 우리 집 말고도 농막이 2채나 더 들어왔고, 우리 농장 아래 벼를 키우던 수천 평의 논은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와 울타리가 쳐졌다. 결국 멧돼지들이 이 산골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 그때부터 친환경 농사를 짓는 나의 농토가 그들에게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접경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그물망을 힘으로 밀고 들어와 밭을 유린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그 방법을 전승하며 방법을 정교하게 다듬어가기에 이르렀다. 


생강농사는 4년 농사이다. 생강은 한 번 짓고 나면 땅이 힘을 다해 3년은 힘을 보충하는 작물을 돌려지으며, 땅의 힘을 모아야 한다. 그 힘을 3년 모아 다시 생강을 심는다. 겨울부터 가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생강 한 뿌리를 캐기 위해 농군은 11번 풀을 매고, 물이 넘치면 고랑을 파고, 부족하면 냇물을 길어와 물을 준다. 물론 다른 작물도 그렇지만, 생강은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야 겨우 몇백 그람의 한 뿌리를 얻는다. 


멧돼지는 생강부터 노렸다. 매년 돼지들의 침공은 생강을 짓는 땅을 건드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제는 방법이 고도화되어 한두 번의 저지래로 끝나지 않는다. 그 방법을 간략하게 쓰면 다음과 같다. 우선 봄에는 아기 멧돼지를 데려와 살살 울타리 밖을 건드려 놓는다. 미리 침을 발라놓는 의식 같은 것이다. 그리곤 여름이 되어 새끼들이 힘이 충분해지면 땅에 물이 많아지는 시기를 골라 생강밭으로 들어온다. 제일 먼저 배수로를 막고, 물을 가둬 생강 밭에 물이 들어오면 밭을 뒤집기 시작한다. 생강은 먹지 않고, 밑에 있는 벌레와 지렁이를 먹으며 밭을 평평해질 때까지 뒤집고 또 뒤집는다. 


그렇게 며칠 동안 생강을 초토화 시키곤 물러간다. 그런데 올해는 돼지들이 정말 유난스러웠다. 생강밭 100평을 다 뒤집어 놓고는 옆에 있는 들깨 밭으로 들어갔다. 우리 동네에서는 멧돼지는 들깨의 향이 싫어 들어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들깨를 밭 가상에 빙 둘러 심는 사람도 있었고, 산에선 들깨를 심는 것이 무난하다고들 했다. 나도 들깨밭을 200평정도 생강을 둘러 심었다. 그런데 돼지들이 들깨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같은 방법으로 땅을 뒤집어 들깨를 흙 속에 처박았다. 


그래도 어찌하랴. 흙 속에서 살아남은 들깨와 생강을 건진다. 멧돼지는 분노를 넘어선 슬픔과 무념의 경지까지 나를 인도한다. 살아있는 스승의 가르침이다. 정리하며 이 정도면 내년에는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겠다 싶다. 거둬들이는 것은 보잘것없는데 한없이 투자해야 할 것만 많다. 이래서 농사로 먹고산다는 것이 어렵다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