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마당포럼ㅣ첫 번째   2025.6월호

자생력과 자율성 키워야 문화가 산다
새 정부, 지역문화의 미래를 열어라 




지역의 화두가 되는 문화이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는 <2025 비평의 숲>. 올해의 첫 포럼에서 주목한 키워드는 ‘문화정책’이다. ‘새 정부, 지역문화의 미래를 열어라’를 주제로 6월 대선을 앞둔 시기, 새로운 정부에 요구되는 문화예술 정책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혼란한 사회를 지나며 예산 삭감 등의 문제로 위기에 닥친 문화예술계. 문화정책 전반과 더불어 전북 지역에 요구되는 문화정책은 무엇일까. 


이날 포럼에는 문화정책 전문가를 비롯,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하는 문화재단,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등 각 분야에서 바라본 다양한 목소리가 담겼다. 이들의 제시하는 의견은 모두 다르지만, 현 문화정책이 안고 있는 과제에 대해서는 함께 공감했다. 시민이 중심이 되는 민간의 영역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시각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논의가 오갔다. 



주제 | 새 정부, 지역문화의 미래를 열어라

일시 | 2025년 5월 23일(금) 오후 2시

장소 | 전주 공간봄





발제


‘실효성 있는 ‘문화헌장’ 다시 쓰기

염신규




2000년대 초중반 많은 문화제도와 정책이 쏟아졌던 시기가 있었죠. 그런데 이 정책들이 어떤 추상적인 명분이나 제도를 넘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했는가를 보면 어떨까요. 20년 동안, 일종의 성과 시스템 안에서 내용적인 성장보다는 눈에 보이는 ‘숫자’의 성장만 계속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떤 문화정책이 있어도 시민들은 그것이 자기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전혀 체감하지 못하거나 추상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지금이 문화예술 정책에 있어 이러한 원론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 이 정책을 펼치는가에 대해 문화정책이 다시 고민되어야 하는 거죠.


여기서 저는 ‘문화헌장’을 키워드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문화헌장은 2006년 5월, 문화관광부 산하의 문화헌장제정위원회에서 만들어 발표했지만 지금은 전문을 구하기도 어렵고, 어디에서도 기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대 정부는 사실 문화헌장을 한 번도 폐기하거나 무효화시킨 적이 없습니다. 있다고 하기도, 없다고 하기도 모호한 상황인 것이죠. 그런데 헌장은 사실 헌법의 전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화헌장은 국가의 문화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지향과 철학을 기술해 놓은 것입니다. 문화헌장을 근간으로 문화정책의 기본 틀을 만들고자 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았죠.


저는 새 정부에게 문화헌장 다시쓰기, 새로 쓰기를 요구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문장을 다시 쓰자는 의미보다는 실효성 있는 사회정책으로써 문화정책을 다시 쓰자는 것이죠. 짧은 시간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시민들과 충분한 합의를 거치고 다양한 입장을 담아 문화헌장을 다시 쓰는 시도를 하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습니다. 


지역문화의 패러다임 바꿔야할 때

지난 정부가 2023년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했었죠. 2000년대 이후 ‘지역’이란 단어로 대체되어왔던 ‘지방’이란 표현을 다시 사용한 건 이례적입니다. 지역을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자원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지나치게 관광이나 콘텐츠가 강조되고, 지역 안에서의 삶의 다양성은 지워지는 방향으로 지역문화정책들이 진행이 되어왔습니다. 실제 많은 지역에서 별로 의미가 없는 사업들을 계속하고, 심지어 그걸 수행하는 주체들조차도 이걸 왜 해야 되는지 모르고 합니다. 지역 문화의 패러다임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인 현실이죠.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분권모델을 넘어서는 신분권모델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중앙-광역-기초 공공 지원기관의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고, 문화예술 생태계의 핵심주체로서 민간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자율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녹여낼 수 있는 어떠한 틀이 만들어져야겠죠. 결론적으로 앞으로의 지역문화정책은 각각 정책의 단위에서 형평성, 개방성, 참여자의 자발성과 주도성 등이 원활하게 작동되는 문화 거버넌스 구조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구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의 변화보다 체질 개선 먼저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과제들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지역문화 현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아픈 환자에게는 약보다 죽이 먼저인 것처럼, 지역문화정책의 기본적인 토양을 만들기 위해 당장 시급한 몇 가지 과제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지역문예진흥기금 조성의 실질적 방안 마련 및 제도화’입니다. 둘째는 ‘지역문화 관련 표준지표 개발 및 활용방안 마련’, 마지막으로 ‘지역문화정책 가이드 마련 및 평가체계 개선’입니다. 이것들은 지역문화를 수단이나 기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들이 역동하고 있는 유기체로 바라보는 것을 대전제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토론


문화력 있는 시민을 의사결정 주체로

문윤걸




문화정책에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이제 문화정책은 문화향유 기회 확대와 같은 전통적인 과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시대적 과제와 관련하여 지역문화가 해야 할 새로운 역할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해요. 문화는 취향의 즐김이나 여가시간의 향유와 같은 좁은 개념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모든 국가정책이나 산업, 환경 등이 문화와 연결되어 있죠. 사회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시민의 역할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문화예술계 전문가만큼 경험이 많은 시민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 활동력을 대등한 관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결정 방법의 전환과 함께 문화 영역에서의 새로운 협업모델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의사결정은 관료나 전문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제는 역할을 바꿔서 시민이 최종 의사결정자가 되고, 전문가들은 협력자와 파트너로 포지셔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진 시민들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도록 참여 통로를 넓혀야 하죠. 그런데 제가 완주문화도시 사업에서 시도해봤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아직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어요. 지역문화정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민들이 의사결정 경험을 자주 갖게 하는 과정을 확장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해왔던 ‘일하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선할 필요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민들의 상상력이나 창조성이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 지금처럼 공모시기, 사업범위 등을 제한한 공모사업 방식에서 모든 게 열린 공모사업방식으로 전환한다든지, 지역문화재단이 민간 문화단체들과 국가 공모사업 등에서 경쟁하는 방식에서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이를 성과로 인정해 준다든지. 또 청년, 시니어, 장애인, 여성 등 사업주체를 한정하는 방식에서 청년과 시니어 등 주체들이 융합하여 사업을 추진하도록 견인한다든지요. 국가 문화정책도 지역이 어떻게 스스로를 혁신해 가는가를 최우선적으로 지원해 지금의 낡은 문화정책 시스템을 혁신해가는 지역문화생태계가 적극적으로 창출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어요.





문화재단, 기존의 틀 해체하고 재정립해야 할 때

송은정




문화재단 역시 행정으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먼저 새 정부에 반영되었으면 하는 부분은, 당연직 이사장에 대한문제입니다. 현재 몇 곳을 제외한 전국의 문화재단들은 지자체장이 이사장으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실제 문화 현장에서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민간 전문가가 재단을 끌어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재단의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 매년 지자체로부터 출연 받는 예산 외에 지역문화진흥기금의 실질적 모금과 제도화, 지방문화세 신설이나 지방교육세를 지방교육문화세로 개정해 재정 다양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행정으로부터 문화재단이 관리·감독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 전문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거버넌스로서 지원과 협력의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관리·감독의 구조를 책임운영제로 전환해야만 재단의 자율성과 책임감이 높아지고 재단이 민간의 우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늘 해온 이야기지만,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지원 체계에도 전폭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재단의 전문인력들이 지역 문화 생태계를 위해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해야 하지만, 정작 수많은 정산 서류를 검토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쓰이고 있어요. 이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방식입니다. 정산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증명하는 전환이 고민되어야 해요. 지원사업의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해 공개모집을 하고 예술의 완성도를 심사하는, 즉 줄을 세워 지원하는 방식에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Women Make Music’ 프로그램처럼 특정그룹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사례들을 들여다보며 공정성 등의 의미를 해체하고 다시 재정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지역의 시간과 사람에 답이 있다

이대건




저는 지금 지역출판모임에서의 역할과 동네 책방의 대표로서 제안하고 싶은 여러 정책들을 고민하고 있는데요. 두 가지 역할에서 정리하다보니 결국은 두 지점이 만나게 되더라고요. 책방은 어쨌든 지역 안에서 독자와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고, 지역 출판은 문화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놓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지역 출판과 책방들이 과연 서로 교류하고 있는가, 서로의 존재를 알고는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현실입니다. 지역의 독서문화 생태계 역시 생산자와 그것을 유통하는 공간, 독자 사이를 매개하는 연결고리가 필요하지만, 정작 ‘이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우리 지역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지역에는 그 지역의 ‘시간’이 있습니다.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채취가 있고 삶이 있는데 문화 지원사업이나 정책들은 그 삶을 보지 않아요. 정해진 항목에 맞지 않으면 쉽게 재단해버리는 경향이 있죠. 과거 문화예술의 전반적인 흐름 안에서 민간이 관과 나란히 놓여 비슷한 역할을 하고, 그보다도 더 확장된 역할들을 해왔던 시기가 분명 있었거든요. 그것들은 단지 행정이나 지표가 아닌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것들이었어요. 중요한 과제는 ‘문화 집강’과 같았던 과거의 이러한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역 안에 있는 것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잘 들여다보고 관과 중간지원조직, 민간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술가에게 도전할 기회와 실패할 권리를

이왕수




사실 저는 판소리를 전공했는데요. 어느 순간 이걸로는 먹고 살 수 없겠다는 생각에 기획자로 전향을 하고, 좀 더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출가가 됐습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그냥 이 생태계에서 잡초처럼 버티다보니 역량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도 갈증이 있었는지, 몇 년 전 용인대학교 대학원의 거리공연예술학과를 가게 됐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예술을 왜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작품 하나하나의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공연 하나로 인해 나의 오늘과 내일이 바뀔 수도 있다는 지점을 발견하고, 에너지와 생명력을 얻었죠. 그 과정에서 전주에는 앞으로 어떤 축제가 만들어져야할까 고민하게 되었고, 그렇게 전주예술난장이라는 거리축제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느낀 점은 지역에 기획자들이 성장하고 자리 잡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들이 마련되고, 그들 스스로가 예술을 왜 하는지 근본을 아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성과주의가 아니라 예술가들의 자율성을 향해야 이러한 일들도 가능하겠죠. 기존에 정해놓은 틀을 벗어난다면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것들도 훨씬 더 많아질 겁니다. 한 교수님의 말이 떠오르는데요. ‘예술가에게 과감하게 도전할 기회를 주고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주라’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던지고 싶은 말은 이 한마디인 것 같습니다. 







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 

연구소에서는 문화정책 연구와 비평을 하고 있으며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로 문화정책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 발을 들이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왔다.


문윤걸 예원예술대학교 교수  

음악칼럼니스트로 문화예술 활동을 시작,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지역의 크고 작은 문화행사 기획과 연출 분야에서 활동했다.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예원예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문화비평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송은정 완주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국장

완주문화재단의 문화예술사업국 총괄 및 대외교류·협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오랜 시간 지역예술시장 활성화를 위한 여러 사업을 기획해오며 주민과 예술인, 정책과 삶 사이의 구조를 엮는 조직으로서 문화재단의 역할을 고민해오고 있다.  


이대건 책마을해리 대표  

20년 넘게 서울의 출판업계에서 활동, 고향인 고창으로 귀향해 2012년 ‘책마을해리’를 설립했다. 책마을과 책학교, 박물관, 도서관을 일구는 공동체를 통해 출판, 독서, 교육을 아우르는 지역문화운동을 활발하게 펼쳐오고 있으며, 얼마전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의 회장을 맡게 되었다.


이왕수 문화예술공작소 총감독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 한국음악과에서 판소리를 전공. 2016년 ‘화용도’라는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연출가의 길에 들어섰다. 전주문화재야행, 전주예술난장, 2024 전주소리축제 폐막공연 등을 연출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