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마당포럼ㅣ두 번째   2025.8월호

무형유산은 미래가치, 관리 차원에서 벗어나야
무형유산, ‘지정’ 그 이후 ‘현실’은? 




지역의 화두가 되는 문화이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는 <2025 비평의 숲>. 두 번째 포럼에서 주목한 키워드는 ‘무형유산’이다. ‘무형유산, 지정 그 이후 현실은?’을 주제로, 무형유산 보유자 지정부터 전승, 보존에 대한 현실적인 목소리를 모았다. 


전북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많은 도 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보유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열악한 현실이다. 소멸 위기에 놓인 종목들도 여전히 많다. 변화한 시대에 맞는 무형유산의 보존과 전승 방안이 절실한 때. 이날 포럼에는 무형유산 전문가를 비롯,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예능 전승교육사와 이수자가 모여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기후위기부터 복합유산, 공동체, 전통 미감 등 다양한 키워드가 무형유산과 연결되며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주제 | 무형유산, ‘지정’ 그 이후 ‘현실’은?

일시 | 2025년 7월 23일(수) 오후 2시

장소 | 전주 공간봄





발제


다음 세대의 마음 움직이는 매력 절실

최공호




먼저 질문을 하나 하고 싶은데요. ‘무형유산은 과거 전통의 것을 갈무리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로만 바라보는 것이 옳은가?’입니다. 이제는 무형유산을 미래가치로 치환시키는 작업이 아주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이 ‘손’의 가치인데요. 무형유산은 기능과 예능 모두 몸과 손의 작용으로 이루어지죠. 물질로 구성된 유형유산의 수명은 유한하지만 사람이 주체인 무형유산은 전승되는 한 영구히 지속될 수 있습니다.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대량 생산된 공산품처럼 버려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간직하기 위해 만들어지거든요. 쉽게 버려지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고, 귀한 것은 대물림 되고 폐기되지 않으니 기후위기의 문제까지도 연결됩니다. 또, 장인들의 손짓과 몸짓, 우리 몸의 작용은 잃어버린 몸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죠. 


물질문명이 장악한 이 시대에 이러한 가치는 역으로 대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형유산은 소중한 전통이니까 박물관에 넣듯이 관리하자는 차원을 벗어나야 해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무형유산의 가치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렇게 큰 틀에서 무형유산의 가치를 다르게 바라보면 우리가 고민하는 여러 문제들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듭니다. 


다음은 ‘원형’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은 유독 원형과 계보를 중시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족보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이죠. 도구 하나라도 옛 것을 그대로 쓰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규범은 유형유산에는 가능하나 무형에는 적용하기가 어려워요. 시공간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사람도 변하기 때문이죠. 더 옛날과 비교하면 많이 유연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경직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건 당장에 이어갈 사람이 없다는 불안정한 전수 체계가 무형유산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로는 보유자 중심 정책을 전승교육사와 이수자까지 확대하는 변화가 필요하고, 실제 전승자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력이 필요해요. 젊은 세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만큼의 매력을 갖춰야겠죠. 무형유산은 힘들고 고된 분야지만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야합니다. 즉, 미래 세대가 마음을 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관건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동력을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움직이는 무형유산’이라는 제목을 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토론


대중 확산 위한 분업 구조 마련돼야




이성수  

무형유산이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우리 무형유산에 대한 공공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며 저는 ‘갓’을 가장 인상 깊게 봤는데요. 전통 갓을 만드는데도 장인들의 엄청난 기술과 정성이 들어가잖아요. 이런 가치까지 더해진 전통의 미감이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 알려지는 좋은 예시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국가 정책적으로 무형유산의 이러한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봅니다. 


이선주  

옻칠은 단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대중화시키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일본의 경우 옻칠제품이라고 하면 그 가격을 인정해주는 인식이 있거든요. 그 이유가, 지금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정월초하루 옻칠 그릇에 요리를 해먹는 풍습 때문이에요. 그런 식으로 우리도 가정에 옻칠 그릇 하나쯤 두는 문화가 있다면 좋겠죠. 그럼 그 가치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성수  

지금 무형유산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너무 복합적이고 많은 일을 요구당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스스로 정체성을 정의하기가 어려워요. 연희자인지 기획자인지 아니면 교육자인지, 연구를 하는 사람인지. 모든 역할이 다 맡겨진 느낌이 듭니다. 사명감과 헌신으로 버텼다면 버틸 수 있었죠. 전문화된 분업 구조가 마련이 되길 바라지만 쉽지 않다는 걸 느껴요. 





이선주  

옻칠 종목의 경우 저희 아버지 세대 때는 장인 몇 분이 모여서 작은 공방을 차리고 분업해서 물건을 납품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갈수록 수요가 없다보니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운영을 이어가지 못했어요. 내가 만들어서 판매하고 홍보까지 모든 부분을 다 해야 하는 입장은 똑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상품을 만들지 않고 작품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먹고 살기는 더 어려워지죠. 각자의 방법을 찾아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강경혜  

국가유산청에서도 그러한 부분의 일환으로 공공영역에서의 홍보를 고민하고 있는데요. 장인과 디자이너를 매칭해서 협업하는 시도 등을 하고 있지만 사실 파급력이나 효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 아쉬운 상황입니다. 또 한 가지, 전승체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바디장의 경우 전승 단절 위기에 놓이면서 지난해 국민을 대상으로 전승자를 공개 모집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승체계를 조금씩 열어가고 있는데요. 이전에 전수교육조교라 불리던 명칭을 전승교육사로 변경한 점도 달라진 것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는 보유자 밑에서 돕는 개념에 그쳤다면 이제는 한 명의 주체가 되어서 자신의 이수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했어요. 실제 이런 변화를 주면서 이수자 수가 매년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후위기는 곧 무형유산의 위기?



오세미나  

저는 최근 제가 연구했던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발제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기후위기와 무형유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며 몇몇 현장을 방문했었는데요. 대나무로 작업을 하시는 선자장 김동식 선생님과 방화선 선생님, 남해안별신굿에서 통영피리를 부는 선생님을 찾아 뵀어요. 그때 이분들 한 분 한 분이 생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예전에는 생활 전반에 걸쳐 대나무가 쓰였지만 플라스틱이나 나일론이 나오면서 사용이 줄었죠. 점점 관리가 안 되기 시작하고, 대나무와 관련된 생태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당장 질 좋은 대나무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 와있는 거예요. 정책적으로도 이런 부분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 좋은 대나무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까지도 고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선주

맞아요. 저희도 원재료 수급이 현재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거든요. 옻나무를 구하기 위해 강원도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옻나무를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채취장도 이제는 별로 없어서 어려움이 있죠. 나무 재배부터 채취가 계속 돌아가려면 그만한 토지가 있어야하는데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요. 이런 부분도 들여다봐야 할 때이죠. 


최공호

현재 봉화에 국가유산수리재료센터를 설립 중에 있어요. 국가유산 복원을 위해 필요한 국산 목재를 공급한다는 계획인데, 이게 어느 정도 실효성을 가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런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버티는 것을 자생력이라 할 수 있는가



강경혜

저희가 살펴보면 여러 보유자와 단체들이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특히 고창농악보존회는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어서 내부적인 힘, 자생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제도가 그런 자생력을 오히려 가로막는 부분이 되진 않을까하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성수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면, 무형유산으로 지정한다는 의미가 가치는 있지만 지켜지기 어렵고,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요. 이미 문화적으로 도태될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공익적 가치를 지켜내며 경쟁력까지 갖추는 일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가 도무형유산으로 한 달에 100만원을 지원받는데 근무하는 사람은 17명 정도가 되거든요. 사실상 이런 지원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공연 수익은 거의 나지 않고 대부분 교육으로 수익을 얻고 있어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대에 농악이 살아남으려면 기획엔터테인먼트나 종교단체가 되어야 하나 상상해 본 적도 있습니다. 매년 지원사업에 기획안을 넣어도 이게 될지 안 될지 모르니 매해 불안한 상황이에요. 버티고 있는 걸 과연 건강한 자생력이라 할 수 있을까요? 자생력과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봐요. 


최공호

이제는 시대에 맞게 스스로 유연성을 가지고 변모해야 자생도 가능해요. 중요한 건 무형유산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같이 유연해져야죠. 원형을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되 현장에서는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자생력에 대해서도 해결책이 나올 수 있어요.





첫 걸음,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오세미나

저는 복합유산의 개념에 대한 고민도 제시하고 싶은데요. 현재는 기록유산부터 자연유산, 등록문화유산, 무형유산 등이 구분되어 관리되고 있는데, 이것들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여러 경계에 걸쳐있는 것들이 관리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전북 기념물로 지정된 옛 제사터인 ‘남원사직단’을 최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에서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궤나 제문들을 발견했어요. 그 안에는 제를 올리는 무형의 유산도 포함되어 있죠. 그런데 이 가치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이 문화를 이어갈 분들이 너무 고령화되었고, 활동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는데 이런 것들을 복합유산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공호

무형유산의 미래를 위해서 결국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우리 스스로가 삶의 태도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운 물건을 사고 또 사고,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그 순간에는 기쁠지 몰라도 또 새로운 갈망은 생겨나고 반복되거든요. 그런 것들에 대한 자기 성찰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가급적 오래 쓰자는 생각으로, 귀하게, 신중하게 여기는 생태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해요. 장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사람들 일상에 놓이고, 오래 쓰이는 세상이요. 시간과 환경이 달라져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것이 ‘고전’의 힘이잖아요. 무형유산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치유하고 단계별로 극복해가는 지혜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강경혜  국가유산청 학예연구사 

국가유산청에서 무형유산 이수자 심사 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는 조사연구기록과의 학예연구사로 있다. 비지정 무형유산 조사 연구를 중심으로 전통지식, 사회적 인식 등을 주로 연구하며 국가무형유산의 연구 기반 마련과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오세미나  무형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를 전공, 2010년 한국의 전통지식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해 2013년부터는 무형유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현재 무형문화연구원의 연구교수로 있으며, 학술총서 『무형유산을 바라보는 다층적 시각』 등을 함께 펴냈다. 


이선주  옻칠장 전승교육사 

전북무형유산 옻칠장 전승교육사로, 아버지인 이의식 보유자의 뒤를 이어 전통을 잇고 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를 졸업,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2023 전라청년미술상, 2022 전북공예품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이성수  고창농악 이수자  

고창농악보존회 이수자로, 장구와 태평소를 중심으로 30년 가까이 농악의 길을 걷고 있다. 단순한 연주를 넘어 농악과 관련된 기획 및 공연, 연구,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농악의 매력을 현대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최공호  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과를 전공.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미술사와 공예사를 가르쳤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감독, 국립중앙박물관 운영위원, 국가유산청 무형유산분과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여러 현장에서 무형유산의 가치를 주목해왔다. 현재 전북무형유산위원회 위원 등을 맡으며 공예와 비평, 이론, 교육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