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주도하는 오늘날, 인간과 삶의 본질을 고민하는 인문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인문 운동을 펼쳐온 마당이 더 새로워진 ‘인문의 숲’ 시리즈로 국내의 대표적인 인문학 연사들을 만나는 자리를 시작했다. 삶에 보탬이 되는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자세로부터 우리의 일상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인식으로 기획된 자리다.
‘인문의 숲’ 첫 번째 문은 건강한 출판문화를 이끌고 있는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가 열었다. 폭우의 여파가 드셌던 7월 17일 저녁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 쏟아지는 빗발을 뚫고 모인 청중들은 김 대표의 흥미진진한 책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김 대표는 ‘그러니까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요!’를 주제로 두 시간 가까운 강연을 이어갔다.
문화저널은 매월 열리는 인문의 숲을 지상 강좌로 독자들께 소개할 예정이다.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인문의 가치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책 좀 사라, 많이 사서 망한 집안 없다
제 고향은 군산입니다. 군산 앞바다가 서해지요. 그리고 옛날 선비들이 자기 글을 다 모아 펴낸 책을 문집이라고 불렀잖아요. 그래서 출판사 이름을 서해문집이라고 지었습니다.
도대체가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 오늘은 이 얘기에 대해서 해보죠. 저는 책을 많이 삽니다. 사실 출판계에서는 제가 꽤 유명한지라, 필요한 책이 있을 때 출판사에 연락하면 다 보내줍니다. 그래도 공짜로 안 받아요. 가능하면 삽니다. 책을 많이 사서 아파트를 못 샀다, 책 사서 우리 집안이 어려워졌다, 그런 이야기 들은 분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없습니다. 책 사서 경제적으로 고통받을 정도 된다면 아마 그 전에 책이 무거워 그 집이 무너졌을 겁니다. 책은 사면 살수록 그 집은 잘 됩니다. 책 사서 잘못되는 집은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책을 많이 사세요.(웃음)
좋은 책, 나쁜 책, 이상한 책
책은 무엇이냐? 책이 되기 위한 조건이 있어요. 가령 휴대폰 사용 설명서 같은 것은 책이 아니죠. 책은 경험과 이야기와 관찰로부터 탄생하는 것이죠. 책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 내가 모르는 이야기, 내가 보지 못한 걸 누군가 전해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다 내 것이 되는데. 이렇게 경제적인 것이 어디 있습니까?
책의 종류에는 좋은 책, 나쁜 책, 이상한 책이 있습니다. 이상한 책은 이런 책이죠.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 같은. 이 저자는 위안부는 없다고 주장해서 욕을 먹은 학자예요. 이 분이 위안부들은 모두 제 발로 돈벌이 나간 것이라고 해서 난리가 났죠. 하지만 저는 이 책을 나쁜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론에 동조하는 게 아니고, 이 사람은 나름대로 위안부를 해석하는데 자기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이런 책은 필요해요. 그래야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논리적 근거에 대항해서 다른 주장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새로운 합도 찾아가는 것이죠. 그러나 <K-드라마 윤석열>. 이런 건 나쁜 책이에요. 그저 윤석열을 칭송하는 책이죠. 나쁜 책은 이렇게 논리가 없는 책입니다.
가장 똑똑한 사람은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
책 한 권을 읽으면 새로운 눈이 하나 생깁니다. 그러면서 진리가 변한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1400년대에 책을 읽은 사람은 태양이 돈다고 생각했죠. 1600년대에는 코페르니쿠스 책을 읽고 지구가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1700년대에 케플러를 읽고 나면 지구가 타원으로 돈다는 걸 인정하게 되요. 그래서 책을 끊임없이 읽는 사람은 자기주장이 100%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을 통해 계속 틀려왔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그래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다 옳다고 생각하죠. 책을 안 읽은 사람은 모르는 게 없이 다 알아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모르는 것이 생기게 되니 자신이 없어집니다. 자신이 없어지면 알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이게 책의 힘이에요.

에베레스트 등반? 모악산 정상부터 찍자
모악산에 한 번 오르고 나면 그다음엔 지리산도 갈 수 있고, 에베레스트까지도 갈 수 있어요. 에베레스트를 처음부터 올라가는 법은 없죠. 그러니까 너무 쉬운 책만 읽으려고 하지 마세요. 자꾸 쉬운 책만 보면 훈련이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산책도 하고, 뒷산도 다녀보고, 그러다 보면 큰 산도 갈 수 있는 거예요. 산을 오를 때 등산로는 여러 개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지요.
소설 중에서 제일 쉬운 건 추리소설처럼 그냥 이야기만 있는 소설이에요. 여기에 인물의 복잡한 감정이 더해지고, 역사적 배경이 붙기 시작하면 점점 어려워집니다. <장 크리스토프>처럼 인물만 깊게 다루는 소설은 오히려 어렵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은 형이상학적 소설이에요. 내가 죽기 전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한 번은 시도해보고 싶다면 그런 책도 읽어봐야죠. 의식의 흐름 기법 들어보셨죠?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이 그런 겁니다.
시는 어려운데, 또 한편으로는 사실 제일 쉬운 게 시예요. 인류의 문학 중에 제일 먼저 탄생한 게 시예요. 기본적으로 노래입니다. 처음엔 서사시처럼 이야기 중심이었지만, 나중엔 서정시로 바뀌면서 보이는 이야기에서 안 보이는 감정으로 넘어가죠. 그러니까 내 감정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지죠. 누가 “내 마음은 호수야”라고 했을 때, 그다음 사람도 “나도 호수야” 이러면 감동이 덜하잖아요.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시는 쉽지만 또 어려워요. 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려고 하니까. 그러니 시에서 쉬운 걸 기대하지 마세요. 내가 아직 모르는 감정, 내가 한 번도 표현해보지 못한 감정을 다루는 게 시의 숙명이에요.
적은 돈쓰고 뽕 뽑으려고 하지 마라
읽은 책을 다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2만원 짜리 책은 딱 2만 원어치만큼만 뽑으면 돼요.(웃음) 여기서 200만 원을 뽑고야 말겠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5천 원 뽕을 뽑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 않을 거예요. 근데 왜 책은 꼭 100배를 얻으려고 하는지.... 저는 책 한 권 사는데 10초밖에 생각 안 해요. 뭘 얼마나 더 생각해야겠어요. 그렇게 사서 서너 페이지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버려요. 여러분 옷 사놓고 다 입습니까? 아니잖아요. 유독 책은 그렇게 막 뽕을 빼려고 그래요. 물론 어떤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꾸기도 해요. 천 권을 샀는데 그중에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꾸면 된 것 아닌가요. 여러분 신발 사서 인생 바뀝니까? 안 바뀌잖아요. 책은 내 인생에서 가장 싸고 좋은 반려예요.
세찬 여름비가 내리던 저녁, 김 대표의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꾸준히,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는 일. 더디더라도 자기만의 길로 산을 오르듯, 책 한 권을 완주한 이에게는 언젠가 에베레스트보다 높고 광활한 자신만의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8월의 마당 '인문의 숲'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저자로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가 정지아씨가 ‘삶이 소설이 되기까지’를 주제로 함께 한다. 이번 강연에서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배웠다면, 다음 달에는 그 읽기의 실천 속에서 이야기와 사람, 역사가 어우러지는 소설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볼 차례다. 8월 21일 저녁, 공간 봄에서 문화저널 독자들과 인문의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1989년 도서출판 서해문집을 연 이후 30년 넘는 세월 출판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일상의 많은 시간을 책읽는데 쏟아온 그는 인문사회·역사·고전 분야의 책을 주로 출판하며 역사와 고전을 사람들과 가깝게 만드는 일에 주목해 왔다. 자신의 깊은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그간의 지식을 모아 만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비롯한 다수의 책을 쓰며, 책에 대한 애정과 출판계 독설 비평, 서평 등을 거침없이(?) 날리고 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