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마당 인문의 숲 ②  2025.9월호

분열의 시대를 지나 ‘오늘’에 건네는 목소리

소설가 정지아


‘인문의 숲’ 두 번째 시간, 소설가 정지아 씨를 만났다. 8월 21일 저녁,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은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청중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빨치산의 딸』로 문단에 등장해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세대를 넘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그는 시대의 상흔을 안고 태어난 굴곡진 삶을 담담하게 소설로 풀어냈다. 때로는 유머와 따뜻함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성찰로 이어진 그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깊이 빠져들었다. 그 현장을 지면에 옮겨왔다.






장례식에서 마주친 그들 

나이가 드니까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이런 정도가 누구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정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쓰는 방식이 조금 다른 것인데, 저는 살면서 이해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써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전까지 단편을 주로 써왔습니다. 『빨치산의 딸』은 장편이긴 하지만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님의 구술로 쓴 것이죠. 역사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장편을 쓰지 못하다가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조금 바뀌었는데요. 소설가는 항상 남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장례식에서도 그랬어요. 


장례식은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일단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이 다수 오셨어요. 사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분들이세요. 왜냐하면 아버지는 전향서에 사인을 하신 분이셨거든요. 그분들은 최장 44년을 감옥에 계셨습니다. 사상의 순결을 지켰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거기에 꼭 초를 치셨어요. 밖에 나와서 노동자와 농민에게 하나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살아야 우리 사상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요. 

 

그분들을 처음 뵐 때는 위대한 혁명가를 만난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설레었어요. 막상 만나서는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유치한 걸로 싸우고 요즘의 논리와는 다른,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하셔서요. 장례식에서도 내내 의미 없는 논쟁을 펼치셨죠. 사람은 변화하는 현실 속에 있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성장하지 못한 것은 사상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은 국가 권력의 폭력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착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마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구례의 이데올로기 

구례에 살다 보니 다른 지역과는 비교되는 특성들이 있더군요. 구례는 면적이 작아요. 게다가 뒤에는 지리산과 백운산이 있어서, 사람 사는 땅이 띄엄띄엄하지 않고 모여있습니다. 그래서 보도연맹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서장이 좌익 혐의자 목록을 받아보니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았대요. 고민하다가 결국은 죽이지 못했습니다. 


구례는 이데올로기로 서로를 욕하지 않습니다. 빨치산 투쟁이 시작되고 오랜 시간 이데올로기에 시달렸습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가 된 사람들도 많지만, 무고하게 '빨갱이'로 몰린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어딜가나 빨갱이 집구석, 이런 말 하면 안 됩니다. 모든 집구석이 빨갱이 집구석입니다.(웃음) 그렇다고 보수 꼴통 집구석,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집의 사촌 안에 군인과 경찰이 있거든요. 연좌제 때문에 높이 올라갈 길이 다 막혀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경찰과 직업군인은 받아줬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어느 편이 잘 없습니다. 이데올로기라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해합니다.





수많은 사람 중 하나 

처음에는 구례를 싫어했어요. 저는 익명성이 보장된 도시를 너무 사랑했었어요. 엄마와 둘이 있으면,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라는 것을 시시각각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서울에서 밖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내가 평범한 사람 같습니다. 반대로 구례에서는 행인이 제 얼굴만 보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건넵니다. 전화도 안 하고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시죠. 사람 사이의 경계가 없달까요. 몇 년은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도 시골을 떠날 수가 없는 거죠. 엄마가 계시니까. 


그러다가 서울에서 잘못 살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었어요. 저는 '고생부심'이 있었어요. 또래 중에 아버지는 감옥에 있고, 부모님이 모두 빨갱이인 애들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구례에 내려오니 빨갱이 천지예요. 수많은 빨갱이 자식 중에 하나라는 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 무게를 덜고 나니 사람이 유머도 생기고, 여유도 생겼어요. 


고통에 삼켜지지 않는 것  

구례분들은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하셨어도, 대부분이 해학적이십니다. 한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면 책으로 몇 권짜리 분량의 이야기가 나오는 데도요. 그들은 고통스러운 운명에 삼켜지지 않은 거예요. 구례에 있으면서 어떤 고통이든 회피하지 않고 견뎌만 내면 자기 인생의 승리자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승리했기 때문에 한탄할 필요가 없는 거죠. 저는 늘 고통에서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빨갱이의 딸로 사는 것이 억울했고, 불만이었죠. 


이데올로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20대에 늘 니체의 시선으로, 막스의 시선으로 잘난 척하면서 이야기했죠. 그게 나의 시선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론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까지 끌어들이지 못한 거죠. 구례에는 추상명사를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삶에서 경험한 것들로만 이야기해요. 이론가라면 더 구체적 현실을 들여다보고 현실과 이론의 사이를 따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서울은 사람을 끊임없이 가난하게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본주의의 중심이죠. 구례에 있으니 악착같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집을 사야한다는 생각이 없어졌고, 먹을 것은 모두 밭에 있죠. 사실 선을 불쑥불쑥 넘으시는 시골 어르신들이 아직까지는 조금 괴롭습니다.(웃음) 하지만 이것도 견디다 보면 저에게 어떤 깨달음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정지아 소설가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지금도 지리산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1990년 부모님 이야기를 쓴 소설 『빨치산의 딸』로 문단에 등장해 이후 소설집 『행복』, 『봄빛』 등을 출간.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