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비추고, 시대의 감각을 담으며, 때로는 안전까지 지켜낸다. ‘인문의 숲’ 세 번째 시간, 글자를 만들고 연구해 온 유지원 씨를 만났다. 9월 18일 저녁,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공간 봄에서 청중들과 글자와의 만남이 일어났다. 서예에서 시작해 한글의 역사, 그리고 현대 타이포그래피와 유니버설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글자가 어떻게 사람과 사회를 연결해 왔는지에 대해 나누었던 그 현장을 지면에 옮겨왔다.

글자가 하는 일
저는 전주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유지원이에요. 제 이름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던 서예가, 강암 송성용 선생님이 지어주셨습니다. 전북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잘 알려진 분이죠. 강암 선생님의 천자문을 보면 글자가 균일하지 않아요. 물 흐르듯 붓이 움직이는 대로 너울거리고, 특히 ‘천(天)’ 자는 엄청 기운차게 시작합니다. 마치 천지가 열리는 순간 같은 느낌이 확 전해지고, 리듬을 타듯 울렁거리면서 읽히죠. 원래 천자문이 네 글자씩 시처럼 구성돼 있지만, 선생님 글씨에선 그게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어릴 때는 ‘천지현황’ 같은 구절이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천지까지는 알겠는데, 왜 그 많은 색 중 하필 ‘현(玄)’과 ‘황(黃)’인지 의문이었죠. 그런데 강암 선생님의 글씨를 보니까 ‘현’은 끝없이 깊고 심오한 느낌, ‘황’은 금빛처럼 드러나는 물질적인 세계 같았어요. 그러면서 하늘과 땅, '무'에서 '유'가 나타난다는 뜻이구나, 하고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어서 나오는 ‘우주홍황’을 보면서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의 글자 공부는 천지와 우주를 논하며 출발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제가 처음 본 게 한석봉의 천자문이었다면, 이런 생각은 못 했을지도 몰라요. 그의 천자문은 반듯하고 교과서처럼 뚜렷하게 쓰여 있어서 학습에는 좋지만, 그 너울거리는 맛은 없거든요. 똑같은 구절이라도 어떤 글자를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이게 바로 글자가 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생명을 안고 변화하는 글자
모든 글자에는 반듯하게 쓴 정자와 흘려 쓴 흘림자가 균형을 이루는 역사가 있었고, 한글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특이한 건 보통 글씨가 먼저 수천 년 쓰이다가 인쇄가 나오는데, 우리는 인쇄를 아는 상태에서 글자가 만들어졌다는 거죠. 그래서 처음부터 금세 퍼질 수 있었어요. 세종대왕이 만든 당시의 한글은 아직 글씨체라기보단 시스템이었어요. 동그라미, 점, 수직·수평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구조였죠. 손으로 많이 써봐야 글씨체의 기준이 생기는데, 실제로 영·정조 시대에 가서 무르익었어요.
한글이 배척당했다고들 하지만 사실 백성들 사이에서 금방 퍼져 나갔습니다. 한국어에 딱 맞게 발명됐으니 쓰기 쉽고 입에 붙었거든요. 다만 '민수야 가서 콩나물 좀 사 오렴' 하는 쪽지는 남아있지 않으니 기록이 적어 마치 안 쓴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하지만 왕과 왕비들은 꾸준히 썼어요. 특히 왕비는 종친들에게 문안을 전할 때 한글로 편지를 썼죠. 그러면서 글씨체가 발전했고, 그렇게 쌓인 게 바로 궁체예요.
필사에 능한 상궁들도 한글 보급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 후기에 소설이 들어오자 남녀노소 신분 가릴 것 없이 열광했어요. 그런데 소설이 보통 10권이 넘다 보니 책을 빌려주는 새책방이 생겼죠. 영조 때는 궁녀들의 유급 휴가 제도가 있었는데, 집안이 가난하면 책방에서 필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렇게 궁체가 소설 필사에 쓰이며 퍼져 나갔고, 책을 빨리 베껴야 하니까 점점 흘림체도 발달했죠.

근대 인쇄가 시작되면서 신문, 성서 등이 찍혔습니다. 초반엔 궁체를 바탕으로 했는데, 신문은 좁은 지면에 많은 글자가 들어가야 하잖아요. 궁서체로 신문을 찍었다면 답답했을 거예요. 그래서 획을 가늘게 하고 시원하게 보이도록 발전한 게 오늘날 명조체입니다. 명조체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는데, 예전엔 인쇄 시 번지는 걸 고려해 획을 가늘게 했습니다. 요즘의 스크린에서는 번질 일이 없으니 또다른 글씨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글자는 기술과 환경을 따라 생물처럼 진화하고, 우리 모습을 반영하는 셈이죠. 최근 만들어지는 폰트들을 보면 20~30대 디자이너들의 발랄한 말투가 그대로 들어가 있어요. 예전 굵직한 글자들은 무겁고 육중해 보이는데, 지금은 '난 활자로도 발랄하게 말하고 싶어' 같은 감각이 반영된 거죠. 폰트가 다양해진다는 건 곧 사회의 말투가 다양해진다는 뜻이에요.
고등학교 강연을 가면 아이들이 ‘배달의민족체’를 좋아해요. 왜 쓰냐고 물으면, 고딕체는 너무 단조롭고 명조체는 점잖은 말만 해야 할 것 같대요. 폰트가 주는 자유로움이 있고, 말의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인 거죠. 최근엔 전자기기가 발달하면서 책이 아닌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화면에 최적화된 폰트로 흐름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글자
고속도로에서 표지판 보다가 “글자 예쁘다” 하면 큰일 나죠. 표지판은 시를 읽듯 명상하는 데 쓰는 게 아니에요. ‘아’와 ‘어’를 순식간에 구분해야 하죠. 그래서 교통 표지판 글자는 판독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MIT 노화 방지 연구소랑 세계 최대 폰트 회사가 판독성 실험을 했는데, 글자 구조를 바꾸니까 문장 읽는 속도가 평균 0.5초 빨라졌대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차이죠. 그래서 폰트 디자이너들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웃음) 작은 차이가 모여 사회를 지탱하는 거죠.
이제는 더 나아가서 ‘유니버설 글자’ 연구가 필요합니다. 예전엔 불특정 다수, 그러니까 건강한 신체를 가진 경제활동 인구가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소수자와 약자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왼손잡이, 어린이, 노인, 신체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디자인, 이게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입니다. 예를 들어 시력이 나쁜 분들은 받침이 조금 길어진 글자가 더 읽기 쉬워요. 저도 나이가 드니 짧은 획이 털처럼 보여서 힘들더라고요. 저는 안과 의사와 함께 연구를 하고 있어요. 녹내장, 백내장 환자들은 눈의 특징이 다 다르거든요. 그에 맞는 글자를 제공해야 합니다.
난독증, 노안, ADHD, 왼손잡이 누구도 글자 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글자가 안 보이면 소통이 막히고, 소외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구를 하면서 보니 실제로 녹내장은 대부분 우울증을 수반하더라고요. 세상과의 연결이 끊기는 고통 때문이죠. 그게 자존감과 정체성의 큰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해 타이포그라피가 필요합니다.
유지원 글문화연구소장
글자와 책을 사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작가다.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 민음사에서 디자이너로,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연구자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글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유지원의 글자 풍경'을 매체에 연재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언어, 문학, 교육, 디자인, 미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 폭넓은 관심을 기울이며 타이포그래피를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