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인문의 숲’ 네 번째 시간은 건축가이자 소설가라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백희성 씨가 강사로 함께했다. 한국에서 전통건축을 전공한 그는 프랑스로 넘어가 장 누벨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가에게 주어지는 프랑스의 권위 있는 상 ‘폴 메이몽’ 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한 그는 현재 킵(KEAB) 건축의 대표로, 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 등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기억’을 재료로 공간을 그리고 짓는다. 기억은 어떻게 건축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 10월 16일 저녁 전주 공간봄에서 <건축이 기억하는 방식>을 주제로 열린 강연 현장을 지면에 옮겨왔다.

생명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우리가 건축의 역사에서 고딕 양식을 보면 건물이 모두 대칭입니다. 인간은 왜 대칭을 선택하게 됐을까요?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인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살아있는 생물은 모두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살아있는 것들을 동경하고, 그걸 통해서 대칭이라는 형태를 이해하다보니 생명의 외형에 집중한 건축 형태가 자리 잡았다고 봐요.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 해부학이 발달하면서 생명의 속은 비대칭이라는 깨달음이 건축 형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이때 실제로 비대칭 건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요. 이런 흐름을 보면서 건축도 결국 생명을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다면 건축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생명을 이해하는 또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다음 시대는 과연 뭘까?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할 때 쌍둥이를 떠올려보면, 쌍둥이도 각자가 가진 성격과 가치관이 다르잖아요. 왜 다를까요? 각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험은 스쳐지나가지만 어떤 경험은 각인이 되기도 하죠. 이 선택된 경험이 바로 기억입니다. 저는 기억이라는 게 어쩌면 인간의 가장 고유한 특성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럼 기억을 가지고 어떻게 건축을 할 수 있을까 깊게 고민하게 됐죠.

기억은 어떻게 공간이 되는가
‘기억’을 가지고 작업했던 몇 가지 사례들을 보여드리려 하는데요. 지금까지 작업 중 가장 작은 프로젝트였던 7평짜리 안경점을 먼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면적이 너무 작다보니 컨설팅만 해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안경사 선생님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자신에게는 안경을 만들고 고치는 작업이 성스러운 일이라고요. 처음에는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는데 직접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직업이든 자기 혼을 불살라서 하면 아름답구나. 이 사람은 거짓이 아니구나. 그래서 이분의 기억을 꺼내보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이 여기 오면 본인을 하대하는 경우가 많대요. 안경을 심지어 던지는 사람도 있고요. 이런 상처가 있음에도 본인은 안경을 예술품이라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이 두 가지 기억을 갖고 디자인을 다시 해봤습니다. 내부를 미술관처럼 만들었어요. 공간을 싹 비우고, 한쪽에 오로지 안경만을 전시한 다음 거울을 통해 좁은 공간을 넓어 보이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분이 갖고 있는 안경에 대한 철학과 열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안경 세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작은 창을 만들어 작업하는 손을 보여줬어요. 이런 변화를 통해 안경점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작은 공간도 사람을 담으면 진해진다는 걸 느꼈죠.
다음으로 소개할 ‘서예정식’은 아버지의 인생 여정이 담겨있는 식당입니다. 처음 의뢰가 들어왔을 때 “아버님께 아들은 어떤 존재인가요?”를 제가 여쭤봤어요. 그때 “아들은 나한테 찬란한 빛이지요.” 이렇게 대답을 하시는데 그 말이 참 마음에 남더라고요. 조그마한 젓가락과 숟가락의 형태로 아버지 형상의 조형물들을 만들고, 그 위에 조명을 달았습니다. 반대편에는 의자가 있는데 조명이 아버지를 비추는 대신 빈 의자를 비춰요. 아들을 비추는 거예요.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라는 표현이었고, 아버님께 이 의미를 설명해 드렸더니 많이 우시더라고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작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게 저한테도 의미가 깊어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재료, 기억의 가치
사람의 기억, 도시의 기억, 사물의 기억까지. 기억은 모두가 다릅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기억은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니 누군가의 기억을 담아서 만든 공간은 복제하는 순간 바보가 됩니다. 군산의 갤러리카페 ‘공감선유’를 예로 들고 싶은데요. 이 공간은 소방관의 인생 여정을 담은 공간이에요. 그분이 정말 운이 없으셨어요. 80년대 후반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업에 실패하고, 그 후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잘 안됐다고 합니다. 그러다 소방 공무원 모집이 있어 공모했더니 당시 정원 미달로 덜컥 합격을 한 거예요.
그분이 저한테 이러시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길이 있는데, 운명의 길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고. 근데 운명의 길을 가다보면 당장은 모르지만 그 길이 나한테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된다고요. 원하는 길과 운명의 길이 엇갈렸지만 지금은 만족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저한테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직원들한테 말했죠. “우리는 원하는 길과 운명의 길이 엇갈린 한 소방관의 공간을 만들 겁니다.” 그때 저희 팀원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대표가 이제 미쳐가는구나!’ 그런 반응이었습니다. 공감선유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내 시선이 향하는 방향과 걸어가야 하는 길들이 다 어긋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소방관의 운명의 길을 표현했어요.
이런 공간을 다른 카페에서, 혹은 다른 미술관에서 따라한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겠죠. 사람의 이야기가 있을 때 그 공간도 완성이 됩니다. 아주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공간을 통해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면 기억에는 기능을 이겨내는 힘이 있다고 봐요. 저는 기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기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따뜻한 행복이에요. ‘기억’이라는 걸 계속해서 추구해가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생명에 대한 존귀함, 다음 시대의 어떤 건축 패러다임을 열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기억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한번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