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인문의 숲〉 다섯 번째 시간은 ‘요리하는 PD’ 이욱정이 강사로 함께했다. 이욱정은 국수를 통해 인류의 문명사를 추적한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시작으로, ‘요리인류’ 등이 큰 사랑을 받으며 음식 다큐를 대표하는 프로듀서로 자리 잡았다. 그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요리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요리하는 인간이 곧 인류의 삶과 문화, 역사를 창조해낼 수 있었다. 음식에서 시작해 삶의 철학으로 뻗어나가는 큰 이야기. 12월 3일, <식탐은 우리의 힘>을 주제로 열린 강연 현장을 지면에 옮겨왔다.
음식 탐험의 시작점 ‘누들로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았어요. 다른 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디선가 탕수육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 이런 건 되게 생생해요. 부모님 두 분 다 음식에 관심이 많으셨거든요. 어머니는 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집에서 두부나 순대, 아이스크림까지 만들어 먹었어요. 아버지는 굉장한 미식가셨죠. 외식을 가면 일단 뭐든 다 먹어보게 하셨어요.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그러니 자연스레 저도 음식에 관심이 많아졌고, 처음 방송국에 들어갔을 때 꿈이 ‘나는 음식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였습니다.
‘누들로드’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보면 우연이고, 어떻게 보면 제 안에 축적된 호기심에서 탄생했다고 보는데요. 유럽 출장을 갔다가 공항에 있는 한 국숫집을 가게 됐어요. 전 세계 사람들이 국수를 먹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국수라는 음식이 참 묘하구나. 어디서 시작되었고, 누가 만들었을까. 그걸 수첩에 적고 1년 동안 연구했습니다. 국수를 통해서 더 큰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식의 기원을 따지는 건 사실 우주의 기원을 따지는 것만큼 복잡하고 쉽지 않은 과정이에요. 그럼에도 음식의 기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동시발생’입니다. 비슷한 재료가 있으면, 인간은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내요. 하지만 어떤 음식은 지구상의 한 주방에서 생겨나 전 세계로 확산되기도 하죠. 저는 국수가 후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국수를 언제 먹나요? 결혼식 같은 잔칫날 먹어왔죠. 국수 먹는 날은 곧 잔치였거든요. 이점이 국수가 동시발생이 아닌 전파된 음식이라는 강력한 증거인데요.
제가 누들로드에서 명장면으로 꼽는 장면이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고찰 영평사 장면인데요. 영평사는 군대생활을 방불케 하는 엄격한 생활규율을 가진 곳이에요. 선종의 예법에 따라 음식을 만들고 먹는 전통을 중히 여기죠. 이곳에서 특별한 날 먹는 음식도 바로 국수입니다. 보통 때는 음식을 먹으면서 절대 소리를 내지 않는데 국수를 먹을 때만큼은 다 허용돼요. 이들에게 국수 공양은 고된 수행의 보상이자 해방의 시간입니다.
이 한 장면을 통해 국수가 귀한 음식이었다는 것, 불교를 통해 전파되기도 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국수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동남아에서도 ‘중요한 날 먹는 음식’이라는 의미로 통한다는 건 어느 한 지역에서 생겨나 전파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레시피는 우연히 동시 발생할 수 있어도 그 음식의 상징은 동시에 발생하기가 어렵거든요. 한마디로 누들로드는 실크로드와 같습니다. 도자기나 유리, 보석 이런 것만 오고간 게 아니라 많은 식재료와 요리법이 교류하며 누들로드가 형성되었죠.
인생도 결국 요리와 같다
본격적으로 푸드 다큐멘터리 전문 피디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그럼 나 스스로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작정 휴직을 하고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근데 첫날부터 ‘잘못 왔구나!’ 싶었죠. 다른 친구들은 이미 경험이 엄청나게 많은 거예요. 그때 저의 요리 경험은 대학교 MT에서 고기 구워본 게 다였거든요. 첫날, 유니폼과 칼 하나씩을 주고 3~4개의 요리를 동시에 해요. 차례로 하는 게 아니라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요리를 동시에 3개나 해내야하는 거예요. 학교에서 저보다 실력이 심각한 친구는 딱 한 명 있었거든요.(웃음) 아무튼 그 친구 빼고는 다 실력이 대단하니, 옆 사람이 하는 걸 그냥 열심히 따라했어요. 그 과정에서 여러 나라의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는 엄청난 경험을 했죠.
빵 하나도 직접 만들어보니까 세상에 이렇게 위대한 음식이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크루아상 하나를 만들 때 반죽부터 그 과정 자체가 굉장한 기술이거든요. 밀가루 반죽 사이사이에 버터를 층층이 넣고, 오븐에 넣으면 바삭하게 꽃처럼 피어나요. 어떤 천재가 이런 음식을 만들었을까! 제가 피디 생활만 계속했다면 몰랐을 것들을 점점 보게 됐습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이거예요. 첫째는 인류의 식문화가 다 연결돼 있다는 겁니다. 식문화는 큰 나무와 같아요. 한식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구 반대편의 다른 나라 음식에도 관심을 갖고, 거기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무궁무진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손으로 하는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창의성은 사실 다 손에서 나와요. 도예, 공예, 요리까지 손으로 직접 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 수양이 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거기서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게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뭐든 경험해봐야 창의성도 길러지는 법인데 이론적인 것에 매달리니 안타까워요.
마지막으로 느낀 건, 요리사가 되려면 정리를 잘해야 되거든요. 근데 저는 정리를 정말 못하는 사람이고 손재주도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 ‘나’를 요리학교라는 환경에 던져놓으니까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나의 또 다른 능력이 발휘되는구나.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면서 살아 온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이만큼을 할 수 있는데 ‘이건 못할 거야’ 생각하고 미리 포기해 버려요. 근데 그러지 마세요. 저도 이런저런 상황을 따졌다면 절대 유학을 가지 못했을 겁니다. 방송국에서 계속 인정받으며 안정적으로 지냈겠죠.
저는 인생도 결국 요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이 하는 레시피 따라 내 인생을 살지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요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옆 사람이 양파를 썰면 따라서 양파를 썰고 있지 않나요. 인생의 방향도 나의 레시피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이미 좋다고 정해진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레시피대로 그냥 사는 거예요. 그럼 마지막에는 결국 남들과 똑같거나 비슷한 인생이 완성되지 않겠어요? 우리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고,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강의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만의 삶의 레시피를 찾아가자는 메시지입니다. 지금 원하는 삶이 있다면 그냥 도전해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