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시작하는 마당의 ‘인문의 숲’, 그 첫 문은 판화가 이철수가 열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판화가인 그는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작업으로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전해왔다. 작년 한 해 문화저널의 표지를 장식해 독자들에게는 더 친숙해진 이름이다. 아직은 날이 쌀쌀한 3월 19일 늦은 저녁, 전주한옥마을 공간봄에서 그를 만났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삶의 결을 따라, 자연과 사람, 그리고 마음에 대한 사유를 담담히 풀어낸 그의 이야기는 깊고도 따뜻한 울림을 남겼다.
백장법문
땀 없이 먹고 사는 삶은 빌어먹는 것만도 못하다. 호미 끝에 화두를 싣고 밭에서 살아라. 일은, 존재의 숙명이지. 거기서 생명의 들고나는 문을 발견하지 못하면 헛 사는 일이다. 호미 놓지 말아라!
시골에 내려와 산 지가 한 40년쯤 됩니다. 지금은 충북 제천에 살고 있고, 그전에는 경상도 깊은 산골에서 처음 시골살이를 시작했어요.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죠. 첫 아이가 돌도 되기 전에 그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때는 서울에서 데모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살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시민운동이 출세의 발판처럼 보이기도 했고. 일종의 환멸이 쌓이면서, 도피처럼 시골로 향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가진 것도 없어서, 집을 거저 빌려주겠다는 곳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던 중에 독일에서 전시 초청이 왔어요. 제 인생에서 하나의 변곡점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한 독일인 변호사가 제 그림에서 ‘전체주의적인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마치 선전물에서 보는 상투적인 선동이 담겨있는 이미지라고요. ‘독재와 싸우다 온 사람에게 무슨 말이냐’고 항의하듯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1년 반 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텃밭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호미질을 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기도 하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인정하기로 했어요. 폭압적인 정권에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폭력적인 표현들에 마음이 갔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 안의 폭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늘 바깥에서 오는 폭력과 싸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안에도 그것이 있다는 걸 뼈아프게 인정하게 된 거죠.

그 이후로 그림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농사가 중심이 되고 그림 그리는 일이 여업인 작가가 됐어요. 텃밭에서 엎드려서 보낸 1년 반이 참 좋았어서, 땅도 마련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 저한테 굉장히 소중해졌고, 무엇보다 실감 나게 느껴졌어요.
「백장 법문」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중국 선승이신 백장선사의 말, '일일부작 일일불식'에서 온 그림입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뜻인데, 이 말이 그런 엄격한 선언은 아닌 것 같아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가 나이가 들어 일하기 힘들어 보이자 제자들이 호미를 숨겼더니 그날은 밥을 드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하지 않았으니 먹지 않겠다고요. 이 이야기가 진상에 가까울 것 같아요.
만약 작물이 사람처럼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저에게 "당신 그림으로 좀 알려졌다던데 내 앞에서는 다 소용없어."라고 말할 것 같아요. 제 판화는 비싸요.(웃음) 그렇지만 쌀은 제가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이철수표라고 해서 값을 10배로 붙일 수가 없어요. 땅은 땅 자체로도 참 정직하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값도 특별하게 쳐주는 경우가 잘 없어요. 그래서 참 좋습니다.
돌담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일 수 없는 것
하나 없으면 다 없는 것

돌담, 1997
오늘 말씀드리려고 했던 그림 중 하나가 「돌담」이에요. 긴 돌이 박혀 있는 담장인데, 밑돌이 있고 윗돌이 있고, 크고 작은 돌들이 섞여서 하나를 이루죠. 잘생긴 돌도 있고 못생긴 돌도 있는데, 그게 다 흙과 함께 어우러져야 담장이 유지가 돼요. 어느 돌 하나라도 빠지면 결국 무너지게 돼 있거든요.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어요. 어머니는 늘 그걸 마음 아파하고 미안해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 시간이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 안에서 가족을 지키려고 애쓰신 어머니가 굉장히 훌륭하게 보였거든요. 우리 식구들 모두 어머니를 존경하고 좋아했는데, 정작 어머니는 그걸 부끄러워하셨어요.
한 번은 그 돌담 그림을 설명해 드리면서 진지하게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제 안에 있는 어려웠던 기억이나 상처들이 다 그 돌담 속 못생긴 돌 같은 거라고. 그런데 그게 다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사람들이 사랑해 주는 화가로 살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미안하냐고요. 그 모든 것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라고. 그날은 어머니도 조금은 받아들이신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그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하시더라고요.
IMF 때 엽서를 많이 썼어요. 특히 학생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사업에 실패하거나 가게 문을 닫은 부모를 미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였죠. 저도 어릴 때는 아버지를 미워했어요. 그런데 강만길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역사의 수레바퀴가 크게 움직일 때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말씀이었는데, 그걸 읽는 순간 갑자기 깨달음이 왔어요. 거의 영적인 체험 같았어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내 아버지는 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으로 아버지와 화해가 끝났어요. 따로 말을 꺼낸 적은 없는데, 이미 관계가 달라져 있었어요. 더 이상 갈등하는 사이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서 있는 자리, 존재의 입각점이 바뀌면 상대가 변하지 않아도 관계는 이미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제가 먼저 다른 자리에 서게 되면, 그전에는 앞에서만 보이던 것들이 옆에서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저는 그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저녁 일월곤륜도
들일 마치고 고개 들어보니 해있는데 달이 뜬다. 일월곤륜이 가난한 집 병풍이구나. 좋은 시절이다.
그 저녁 일월곤륜도, 1993
이 그림은 독일 전시를 마치고 돌아와서 한동안 못 그리고 지내던 시기, 그 직후쯤 생각했을 거예요.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농기구를 챙겨서 나오는데 몸이 너무 지쳐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낫이었는지 삽이었는지를 들고 일어서는데, 그날은 해와 달이 같이 떠 있었어요.
늘 보던 풍경이었는데, 그날은 전혀 달리 보였어요. 그 안에서 제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임금의 어좌 뒤에 놓인 병풍 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 같은. 그렇다고 권위를 가진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냥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존재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다는 감각이었어요. 그것도 일종의 영적인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경험이 특별한 수행이나 의식 속에서가 아니라 ‘일하는 과정’에서 왔다는 거예요. 누구나 자기 삶 속에서 어떤 질문을 골똘하게 집중하고 있으면, 그 안에서 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시인이 한 분 있어요. 이면우라는 분인데, 오랫동안 보일러공으로 일하셨어요. 그분의 「화엄경배」라는 시를 보면, 보일러의 불꽃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건네요. 아이들 밥 먹이고, 짜장면 사 먹이고,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결국 이 불꽃에서 나온 거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그 불꽃에 바치겠다는 데까지 나아가요.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보일러공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나의 수행으로 삼고 살아간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돼요. 저는 그런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오늘 신부님, 수녀님들 오셨는데, 그래서 이런 거룩한 삶을 사는 분들을 보면 참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공부만 하고 살잖아요. 저렇게 복 많아서 공부를 일로 삼는 사람하고 달리 일 속에서 공부를 찾아야 하는 우리들 안에서도 뭔가 기회는 있습니다. 불교에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는 말이 있어요. 걷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동하고, 정하고 하는 모든 순간 속에 수행이 있다는 뜻이에요. 쉽게 말하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새는 온몸으로 난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새는 온몸으로 난다, 2010
마지막 이야기는 '몸으로 생각하자'예요. 사람들이 제게 왜 농사를 짓느냐고 물어보는데, 몸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관념적으로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이지요.
「무게」라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불교 우화에서 가져온 이야기예요. 비둘기가 독수리를 피해 부처님 품으로 도망을 오는데, 독수리도 굶주린 생명이잖아요. 그래서 그걸 먹어야겠다고 하니까, 부처님이 내 살을 덜어주겠다고 하죠. 허벅지 살을 비둘기만큼 잘라서 올려놓는데 저울이 맞지 않아요. 결국 부처님이 저울 위에 올라앉아서야 균형이 맞아요. 생명의 가치는 크고 작음이 없다는 이야기겠죠.
그 그림을 그리고 한 30년쯤 지나서 「새는 온몸으로 난다」는 독수리 그림을 다시 그렸어요.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살면서 자꾸 온몸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떤 사람을 볼 때도 마치 부품을 조립하듯 그 사람을 기계처럼 대한다는 거죠.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의미와 통찰에 공감하면서도 늘 어딘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한 게 ‘온몸’입니다. 팔이 하나 없어도, 심지어 상반신만 남아 있어도 '온몸'인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좌우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요. 실제로 새는 아주 사소한 균형의 상실만으로도 날지 못해요. 중요한 건 온몸이라는 거죠.
생명을 돌보는 과정에서도 그 감각을 자주 발견하게 돼요. 작은 씨앗 하나 안에도 하나의 세계가 들어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잖아요. 찌그러진 콩도 심으면 그대로 자라요. 아무 문제없이 자라고, 그 자체로 완전한 생명이에요.
이런 온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사회도 단순한 개별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존재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감각이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지 못하면, 사랑이나 인류애 같은 말도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겠죠.
물론 우리 모두 부족한 사람들이에요. 성인들처럼 모든 존재와 깊이 사랑으로 연결된 상태로 살아가기는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은 생명을 돌보고, 그것을 받아서 먹고, 그것이 우리의 살이 되고, 생각이 되어 살아가요. 그 과정 속에서 세상이 무엇을 하라고 나에게 생명을 준 것인지 한 번쯤은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같은 시대에 무엇을 붙들어야,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는데요. 저는 정직한 몸뚱이로 일하고, 생명을 키우며 이 시대를 건너가 보려고 합니다.
이철수 충청북도 제천에서 농부 겸 판화가로 살고 있다. 1981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판화를 통한 사회변혁운동에 힘써오며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의 일기와 편지를 판화에 새긴 '나뭇잎 편지'를 통해 세상에 따스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판화전 〈큰 그릇이야 늘, 나누기 위한 준비〉를 열었다.
정리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