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의 ‘인문의 숲’ 네 번째 시간에는 신화연구가 김원익을 만났다. ‘신화는 결국 우리 인간의 이야기’라는 일관된 시선으로 신화를 연구해오고 있는 그는 〈인간은 왜 이야기를 만드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6월 17일 저녁, 전주 공간봄에서 열린 자리. 그는 신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신화는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며 다른 수많은 이야기와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모델이자 원형이다.” 신화에는 인간에게 유용한 오래된 지혜가 깃들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그리스 신화 속 세 가지 이야기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시시포스, 삶은 고통이라는 엄중한 진실
영어로는 ‘시지푸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시시포스’를 다들 들어보셨죠?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인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납치하는 걸 목격했어요. 제우스는 시시포스에게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던 시시포스는 아소포스가 귀한 샘물을 만들어준다는 말에 넘어가 사실을 말해버립니다. 분노한 제우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보내 시시포스를 지하세계로 데려오게 하죠. 그런데 시시포스는 끌려오는 도중에 기지를 발휘합니다. 타나토스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버렸어요. 타나토스가 활동을 못하니 세상의 질서는 완전히 흐트러졌죠. 죽은 자들이 오지 않으니 지하세계가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가 된 겁니다.

제우스는 어떻게 했을까요? 전쟁의 신 아레스를 보냅니다. 아레스에게 다시 끌려온 시시포스는 이번에도 영악하게 머리를 쓰기 시작해요. 그는 아내에게 “내가 죽어도 살아올 방법이 있으니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고 시신을 저잣거리에 버려두라”고 전했대요. 지하세계에 도착한 그는 우리나라의 염라대왕과 같은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를 만나 협상을 벌입니다. 자신의 시신이 지상에 널브러져있으니 며칠만 시간을 주면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겠다는 간청을 하죠. 어리석게도 하데스가 그 말에 넘어가 시시포스는 지상으로 올라왔어요. 그리곤 약속을 지키지 않고 꽁꽁 숨어버렸죠.
분노한 하데스는 타나토스와 함께 시시포스를 찾아 나섭니다. 결국 그를 잡아와 형벌을 내려요.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인 타르타로스에는 높은 산이 있었답니다. 거기 있는 엄청나게 큰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으라는 형벌을 내리게 된 거죠. 시시포스가 낑낑대며 정상에 간신히 바위를 올려다놓으니, 그 순간 바위가 다시 굴러 떨어지는 겁니다. 그럼 또 다시 바위를 들고 산을 올라야합니다. 이걸 영원히 반복하는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죠. 아마 지금까지도 그 형벌을 받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바로 우리가 흔히 들어온 ‘시시포스의 형벌’입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우리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한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오늘도 낑낑대며 하루를 살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과업을 완수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일이면 또 다시 내일의 일을 하겠죠. 우리 인간은 결국 시시포스의 과업처럼, 삶이 아무리 부조리할지라도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부조리한 삶’은 종교나 형이상학, 심지어 자살을 통해서도 초월하거나 회피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시시포스의 마지막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가 끝없이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결코 슬퍼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왜? 우리 모습이 원래 그런 것이니, 받아들이고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상상합니다.

갈림길의 헤라클레스, Sebastiano Ricci, 1710~1720
헤라클레스, 진정한 영웅의 자질
흔히 영웅이 되려면 모험심과 호기심이 필요하죠. 이런 특성 때문에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은 흔히 ‘사서 고생’을 하는 유형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헤라클레스의 일화가 있는데요. 헤라클레스는 청년기 꿈속에서 갈림길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한쪽 길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다른 길에는 ‘덕성’이라는 이름의 단정한 여인이 서서 함께 가자고 손짓을 하죠. 욕망을 따라가면 원하는 모든 걸 채울 수 있고, 덕성을 따르면 고난과 고통이 따르지만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었어요. 헤라클레스는 순간 고민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덕성’을 따라나섭니다. 이 일화에서 바로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는 관용구가 유래된 겁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쉽지만 타락한 길이 아니라, 힘들지만 올바른 길을 택하는 중요한 결단’을 의미하죠.
이러한 태도는 헤라클레스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테세우스와 오디세우스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있죠. 테세우스는 해로를 통해 쉬운 길로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충고를 거부하고, 악당들이 가득한 육로를 택합니다.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악당과 괴물을 해치우고 아버지를 만납니다. 오디세우스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 트로이 전쟁을 수행했죠. 목마 전술을 펼쳐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집으로 돌아가려하는데 그 길에 포세이돈의 원한을 사는 일이 생기며 10년이 넘도록 바다를 방랑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그는 세이렌이라 불리는 괴조(인어)들이 사는 섬을 지나게 됐어요. 그들은 치명적인 연주와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알려져 있죠. 그곳을 지나며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밀랍을 귀에 발랐습니다.
그런데 정작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꽁꽁 묶어달라고 합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풀어주지 말라고 명령하죠. 결국 돛대에 묶여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기뻐했어요. 자신만이 유일하게 세이렌들의 노래를 들었다는 기쁨. 그러니 참 사서 고생을 하는 유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강한 호기심과 모험심, ‘사서 고생’을 해야만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제우스와 벨레로폰, 작자 미상, 17세기
벨레로폰, 인간은 왜 정상에서 추락하는가?
벨레로폰도 대표적인 영웅 중 하나인데요. 그는 실수로 형제를 죽이고 조국에서 추방을 당합니다. 이후 티린스의 왕 프로이토스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죠. 그런데 프로이토스의 아내가 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러다 남편이 없을 때 사랑 고백을 했죠. 벨레로폰은 이미 프로이토스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있었겠어요? 그는 단칼에 거절을 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아내 안테이아는 벨레로폰에게 복수할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어느 날 남편이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벨레로폰이 자신을 겁탈하려했다는 말을 전하죠. 프로이토스는 그 말을 믿고 벨레로폰을 죽이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자기에게 온 손님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벨레로폰을 처리해달라는 내용을 편지에 써서 리키아의 왕이자 장인이었던 이오바테스에게 보냅니다. 근데 이오바테스 역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죠. 고민을 하다 벨레로폰에게 어려운 과업을 내려 그를 죽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의 모양을 한 괴물 키마이라를 죽여 달라는 과업을 내린 것이죠.
그런데 영웅 옆에는 항상 조력자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조력자는 누구인가요? 전쟁의 여신이자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죠. 아테나는 벨레로폰의 꿈속에 나타나 충고를 해줍니다. 직접 맞붙지 말고 공중전을 펼치라는 충고였죠. 벨레로폰은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를 타고 공중전을 펼쳐 결국 키마이라를 제압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벨레로폰은 여러 임무들을 계속해서 완수하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죠. 그런데 행복의 정점에서 그만 오만에 빠져버립니다. 어느 날 페가소스에 올라타더니 하늘로 올라가 제우스를 만나고 오겠다고 오만을 부렸죠. 분노한 제우스가 번개를 날리자 벨레로폰은 그대로 추락해 버립니다.
여기서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뭔가를 얻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죠.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이루고 난 후입니다. 현대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들이 추락하는 이유도 바로 ‘오만’ 때문이죠. 정상의 자리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결코 오만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오만에 빠질 수 있거든요. ‘처음처럼’ 똑같이 노력하는 자세가 우리에겐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리스어 표현에 “메덴 아간 Meden Ag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것도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이지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김원익
전북 김제 출신으로, 세계신화연구소 소장이자 문학박사, 신화연구가.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전공해 괴테와 릴케의 작품을 소재로 논문을 쓰며 신화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신화를 소재로 활발하게 인문학 강연을 진행하며 신화의 세계를 대중에게 알려왔다. 『신화, 인간을 말하다』, 『신들의 전쟁』 등 여러 저서를 냈으며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등을 국내에 처음 번역·출간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