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의 ‘인문의 숲’ 다섯 번째 시간은 식물분류학자 허태임과 함께했다. ‘식물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라는 강연의 주제처럼, 식물분류학자란 사라져가는 식물들을 지키기 위한 연구와 함께 훼손된 숲을 복원하는 등 식물이 지닌 언어를 해석해내는 사람이다. 7월 16일 저녁, 전주 공간봄에서 열린 자리. 그는 얼마 전 이탈리아에 갔다가 마주한 포플러 나무와의 만남을 회상하며, 바람에 산들거리는 포플러 사진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스스로 또 함께 지켜내는 일
오늘은 제가 같이 나누고 싶은 식물 사진들을 많이 가지고 왔어요. 이 오동나무 정말 예쁘죠. 오동나무는 어릴 때부터 늘 봐왔던 나무여서 그런지 저한테는 애착이 많이 가는 나무에요. 옛날에는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죠. 한 20년쯤 지나 시집갈 때가 되면 오동나무는 워낙 빨리 크기 때문에 옷장 하나 짤 수 있을 정도의 재목이 됩니다. 그럼 그걸로 가구를 만들어 시집을 보내고 그랬대요. 이렇게 오동나무는 씨앗이 어디든 흘러 들어가 잘 자라는 만큼, 또 많이 잘려나가요. 제가 오동나무의 힘을 가장 크게 느낀 건, 산불 피해 현장이었어요. 저는 산불 피해지 조사도 정말 많이 다니는데요. 특히 작년 영남권에서 발생한 산불은 말도 안 되게 큰 규모였죠. 그곳에서도 역시 눈에 띄는 건 오동나무가 어디서든 잎을 이만큼 펼치고 금방 자라난다는 거예요. 강인한 생명력으로 오동나무가 버티고 있으니 또 숲이 자연스럽게 회복되어 가는 거죠. 이럴 때 저는 경외감을 느낍니다.

오동나무ㅣ사진 허태임
아마 식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미선나무도 아실 텐데요. 미선나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자 멸종위기종이에요. 제천, 괴산, 단양 정도에서만 자라고 이 식물이 살 수 있는 땅은 많지 않죠. 이렇게 어느 한 곳에만 사는 식물들은 사라지는 순간 지구에서 한 종이 사라지는 일이다보니 더 엄격하게 보존합니다. 미선나무 보존 연구는 지금까지 많이 이루어져 왔고, 증식 연구도 정말 많이 했어요. 그 덕분에 지금은 웬만한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 미선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미선나무는 향기가 정말 좋아요. 식목일쯤 꽃이 피는데, 제가 근무하는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도 4월 5일 무렵이면 미선나무가 만발해 수목원 안과 밖이 향기로 가득 찹니다. 우리가 식물을 보존해야하는 이유는 이런 작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죠. 잘 지켜냈기 때문에 볼 수 있고, 향기도 마음껏 맡을 수 있어요.
인간의 몸과 닮아있는 꽃
꽃의 구조를 한번 볼까요. 꽃은 일반적으로 암술과 수술, 꽃잎, 꽃받침이 있어요. 그런데 이 모양을 잘 보면, 결국 우리 인간의 몸과 비슷합니다. 난자를 지키기 위해 자궁이 있고, 그 자궁을 장기들이 감싸고 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단단한 골반 뼈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밤나무는 우리에게 참 익숙하죠. 밤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핍니다. 두 형태가 다르지만, 한 나무 안에서 아주 전략적으로 배치가 되어있어요. 수꽃은 꽃가루를 퍼뜨리면서 열심히 수분을 옮겨야하죠. 할 일을 다 하고나면 얘들은 마치 지렁이처럼 나무 밑에 떨어져 버립니다. 진짜는 암꽃이죠. 밤나무 암꽃에게 꽃잎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실하게 열매를 맺는 일이에요. 그렇게 우리가 아는 밤송이가 생겨납니다. 씨앗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야들야들하던 꽃받침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가시가 된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밤나무를 보면 괜히 엄마 생각이 나곤 해요.
늘 옆에 있는 익숙한 나무도 이만큼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어떤 식물의 한 장면만을 보는 일이 아니라 한 식물의 생애를 추적하는 일이라고 소개해요. 오랫동안 다양한 시기를 관찰해야 하고, 여러 부위를 봐야하죠. 꽃도 보고 잎도 보고 나무 전체의 모습, 또 열매를 잘라서 해부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는 꽃이라 함은, 결국 열매로 나아가는 과정이어서 열매를 보면 꽃을 돌이킬 수 있고 꽃을 보면 열매를 그려볼 수 있어요.

제주도 팽나무ㅣ사진 허태임
팽나무, 아픈 기억을 끌어안은 나무
저의 오랜 연구 대상 중 하나는 팽나무예요. 팽나무는 주로 마을 한복판을 지키고 서있죠. 동네 마을회관 앞에도 많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마을에도 팽나무가 있어서 저한테는 익숙한 친구 같은 존재인데요.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가 네그루 있고, 팽나무 숲으로 지정된 경우는 5개 정도가 있습니다. 단독 나무로는 가장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가 바로 경북 예천에 있는 이 나무입니다. ‘황목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죠. 이 나무가 오늘까지 살아남은 데는 분명 과거에 누군가가 잘 지켰기 때문일 텐데요.
이 나무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켰습니다. 일제강점기 땅과 자원들이 약탈당했을 때, 마을에서 신성시하는 이 나무를 혹시 읽게 될까 봐 마을 주민들은 주변의 땅을 전부 사서 이 나무 앞으로 등기를 이전했어요. 등기를 올리려면 일반 명사인 ‘팽나무’가 아니라 사람 이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게 지은 이름이 ‘황목근’입니다. 팽나무는 이른 봄에 노란 꽃이 피거든요. 황색 꽃을 피운다는 뜻을 따서 황 씨 성을 붙이고, 이름을 목근으로 지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나무는 토지세를 꼬박꼬박 내는 모범 납세자가 되었어요.
팽나무가 또 많은 곳이 제주도예요. 팽나무 중에는 이렇게 바람을 온전히 몸에 새기고 있는 나무들이 많아요. 그래서 큰 팽나무가 하나 있으면 그곳에 마을이 있었구나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제주 4.3으로 사라진 마을을 찾을 때 팽나무가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해요. 큰 팽나무는 바닷가에서 많이 자랐기 때문에 해안가에서는 배를 정박하는 용도로도 쓰이죠. 팽나무가 서있는 항구도 꽤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진도의 팽목항입니다. 팽나무는 유독 아픈 기억들을 많이 안고 있는 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땅은 언제까지나 식물을 받쳐주지 않는다
많은 식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마지막에 닿는 이야기는 환경 문제입니다. 산업화 이후 특히 침엽수의 서식지는 천천히 메말라가고, 인간에 의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어요. 대표적인 게 스키장이죠. 스키장은 눈이 잘 녹지 않는 가장 추운 곳, 산 높은 곳들을 골라서 밀어버리죠. 저는 스키장에 가면 침엽수들의 무덤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 피해를 가장 크게 본 나무 중 하나는 덕유산의 구상나무입니다. 구상나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고 남한에만 사는 식물, 그중에서도 소백산을 기준으로 그 이남 지역에만 살아요.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구상나무가 마치 백골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과거에는 면으로 덮여있던 구상나무가 지금은 물길 따라 선처럼 남아 있어요. 이 말은 곧 선이 점점 좁아지면 점이 되고, 점이 몇 개 남지 않게 될 때 멸종으로 가는 거겠죠.
물론 그 시간이 금방 찾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근데 이건 알아야겠죠. ‘아 그 땅이 더 이상은 이 식물들을 받쳐주지 못하는구나.’ 구상나무도 인간과 비슷하게 죽습니다. 120년에서 150년을 살고 죽어요. 과거에는 비슷한 환경에서 다음 세대가 계속해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어요. 하지만 기후가 변화하며, 이제는 겨울에 눈이 덜 오고 너무 일찍 따뜻해지다 보니 씨앗이 떨어져도 발화한 어린 나무가 얼마 자라지 못하고 말라 죽게 돼요. 다음 세대가 자라지 못하고 노인들만 남아 있는 모습이 우리 사회와 비슷하죠. 이게 우리 백두대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로서는 손 놓고 있을 수 없어요. 나무들이 죽을 때는 특히 열매를 많이 맺고 죽습니다. 그 열매들은 건강하게 아직 살아 있어요. 그럼 그 종자를 가지고 와서, 하나하나 모아 발화하는 능력을 체크하고 키워냅니다. 수목원 안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서 3~4년 후에는 바깥 노지로 나가 자생지에서 살 수 없게 된 식물들의 또 다른 터전을 만들어주는 거죠. 이렇게 식물들의 피난처 기능을 하는 곳이 바로 오늘날의 수목원이나 식물원, 또는 여러분들이 가꾸는 정원의 역할일 겁니다.
전국을 열심히 다니다보면 운이 좋게도 전에 없던 새로운 종을 발견하기도 해요. 신종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정리를 하기 까지 5년 정도가 걸렸어요. 그런데 이런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과연 자연이라는 걸 내가 감히 규정할 수 있을까? 새로운 종을 내가 명명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 조금 회의감이 들어요. 그럼 잠시 벗어나서 다시 식물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그 존재에 대해. 처음에 팽나무를 지키고 싶어 했던 마음 같은 것들을 생각해요. 과학이라는 건 결국 우리 인간의 삶에 필요한 기준점을 제시해줘야 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식물분류학의 필요성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경남 창녕 우포늪 둑에 사는 이태리포플러ㅣ사진 허태임
“종과 종 사이의 거리를 재단하는 일이
식물분류학자의 업이라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와 현상들을 구명 하는
일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때로는 회의와
절망의 감정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일에서 잠시 벗어나 식물 본연의
모습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동력을 얻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식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 허태임 '나의 초록목록' 중
허태임
자신을 ‘초록 노동자’라 규정하는 식물분류학자로, 아침에 일어나면 식물의 표정부터 살피고 식물이 가장 좋은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이 땅의 사라져가는 식물과 숲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전국의 산과 들, 강을 누비며 식물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언어로 옮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