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마당 인문의 숲 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김승수     2026.9월호

도서관, 시민의 삶을 짓는다




마당의 ‘인문의 숲’ 하반기 강연의 첫 문은 전주 시장을 지낸 김승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이 열었다. 전주를 책의 도시로 선포하고 다양한 특화 도서관을 조성해 도시의 변화를 이끌어온 그는 ‘도서관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주제로 인간적인 도시의 의미를 전했다. 8월 20일 저녁, 전주 공간봄에서 열린 자리. 그는 도시를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 정의했다. 도로를 만들 때, 도서관을 지을 때, 공원을 조성할 때도 여기에는 ‘사람’이 담긴다.




우리에겐 아름다움을 누릴 공적 권리가 있다

전주라는 도시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일 중 하나는 정원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시민들이 정원을 가꾸는 삶을 살길 바라며, 초록정원사 교육을 하고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 분들에게는 매년 상을 드렸어요. 2021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날도 시민 세 분께 상을 드리고 함께 차를 마셨어요. 그중 70세 정도 되신 아버님 한분이 저에게 그러시는 겁니다. “시장님, 제가 이 상을 받아서 더 오래 살 것 같아요.” 아버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몇 년 전 딸이 세상을 떠나면서 매일 살아가는 자체가 괴로웠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죠. 그 후로 극단적인 생각을 벗어나기 위해 높은 아파트를 벗어나 한적한 땅에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이 어느 날 꽃들을 바라보는데, 꽃들이 “아빠”하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매일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치유되고 회복되며, 정원에는 ‘유포리아’, 한마디로 ‘행복’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이셨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직원들과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도시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거나, 물이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불편함이 드러나죠. 그런데 시민들의 마음에는 어쩌면 이런 불편함보다 훨씬 깊은 상처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는 도시의 정책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죠. 대신 우리가 만든 정원과 정원문화센터, 정원도서관 같은 공간이 단순히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직원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건 뭘까 생각해봅니다. 아름다움은 당장 생존에 필요한 건 아니지만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효율만을 따지는 일에서 벗어나 내 몸을 멈추게 하고, 마음도 멈추게 하죠. 도시 안에서 시민들은 아름다움을 누릴 공적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도서관’이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도시에서 고객으로 살아갑니다. 상업적 공간 안에서는 물건을 많이 사는 사람들이 환대를 받죠. 그러나 공공장소에서는 조건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조건 없는 환대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공공장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민’인 것이죠. 고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나를 확인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공공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 하나는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공간입니다.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풍경이 바뀌면 도시는 스스로 변화한다

우리가 몸이 많이 아프면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침을 맞아서 천천히 몸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도시도 똑같습니다. 도시에 침을 놓으면 당장 개발이라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도시가 차츰차츰 건강해질 수 있죠. 전주 첫마중길은 이러한 도시 침술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전주역에는 한 해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2014년 당시만 해도 전주역 주변에는 각종 유흥업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결국 전주의 첫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때 ‘원래의 전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해봤어요. 큰 나무가 있었고, 직선보다는 곡선의 길이 있었고,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있었고, 콘크리트보다는 생태가 있었던 곳. 그게 원래 전주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모습을 다시 찾아가 보자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전주역 첫마중길입니다. 시민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을 처음 마주하는 길. 그래서 이름도 ‘첫마중길’입니다. 지금 첫마중길에 가보면 예전과 비교해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트클럽이 있던 자리에는 호텔이 들어왔고, 공공기관과 은행, 병원도 들어섰죠.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의 풍경이 바뀌면 그 주변의 것들도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당장 눈에 띄는 대규모 개발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가 서서히 변화하고 건강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 침술의 가장 중요한 효과입니다. 


첫마중길에는 빨간 컨테이너로 지어진 첫마중길 여행자도서관이 있습니다.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곳이기 때문에 오래 머물러 읽는 책보다는 아트북 중심으로 구성된 도서관입니다. 이곳에는 굉장히 큰 책 한 권이 펼쳐져 있는데요.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형 아트북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보고 놀랍니다. 거의 천만 원에 가까운 책을 어떻게 마음껏 넘기고, 뒤적여볼 수 있게 했을까 하고요. 그런데 책이란 뭔가요? 만져보고, 넘겨보는 게 책의 본질이잖아요. 도시의 특별함이란 비싼 것, 특별한 것이 많은 곳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특별한 것이라도 시민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는 도시, 그런 도시가 진짜 특별한 도시가 됩니다.



첫마중길도서관_데이비드 호크니의 아트북




공공은 끝까지 시민을 놓지 않아야 한다

공공청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전주시청은 1980년대 초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그 당시에는 구도심에 이만큼 큰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공간이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낡게 됐고, 오래 된 건물이다 보니 로비에 들어서면 양쪽에 자리한 화장실 냄새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전주에 관한 사진들을 전시해놨지만 아무도 찾아보지 않았죠. 아무런 상징도, 의미도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시청의 로비는 공무원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시민들과 함께 쓰는 공유 공간입니다. 여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많은 시민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렇게 도시를 책의 힘으로 지탱한다는 의미를 담아 책기둥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아침에는 이곳에서 재즈 공연을 열고, 영화를 상영하고,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을 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시민들이 점차 ‘시청은 너무 좋은 곳이야’ 하고 느끼기 시작했죠. 



전주시청 책기둥도서관



공공장소의 수준은 시민들의 삶의 수준과 일치합니다. 공공장소의 품질이 곧 시민들의 삶의 질과도 연결되죠. 금암도서관은 굉장히 큰 도서관입니다. 당시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함께 들어선 도서관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죠. 자연스럽게 찾는 사람이 줄며 이곳을 굳이 유지해야 하느냐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 처해 있든, 공공은 끝까지 시민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공공장소는 효율만 따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죠. 한 사람이라도 놓지 않겠다는 공적 보장과 공적 희망이 없다면 시민들의 삶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공공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금암도서관도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곳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죠.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도서관 중 하나가 되었고, 많은 시민들이 다시 찾는 공간이 됐습니다. 옥상에는 거대한 데크가 마련됐고, 가을이면 이곳에서 공연이 열립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처음으로 이 시간, 이 높이에서 전주의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공공장소가 바뀌면 시민들의 삶도 바뀝니다.


‘사는 곳’이 아닌 ‘살고 싶은 곳’

전주는 이제 비빔밥의 도시가 아니라 도서관의 도시로 불리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통해 전주의 또 다른 도시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우리는 왜 도시 브랜드를 자꾸만 이야기하는 걸까요? 도시는 그저 ‘사는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이어야 하고, 무심코 ‘가는 곳’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후년이면 혁신도시에 새로운 도서관이 들어섭니다. 규모도 굉장히 크고 멋진 도서관이 한 곳 더 생기죠. 전주에는 학산숲속시집도서관처럼 아주 작은 도서관부터 큰 도서관까지 다양한 규모와 특색을 가진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것은 도서관이 아닙니다. 시민들의 삶을 짓고 있습니다.





김승수

전주를 ‘책의 도시’로 선포하고 지역에 다양한 특화 도서관을 구축하며 도서관으로 도시의 변화를 이끌어온 문화행정가다. 인간적인 도시를 만드는 새로운 관점을 묻는 책 『도시의 마음』을 썼다. 현재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으로 있으며 출판산업 육성과 독서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