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대 도립국악원장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이 새 수장을 맞았다. 20년 만에 개방직 채용으로 바뀐 공모를 통해 선임된 유영대 전 국악방송 사장이다. 남원 출신인 유원장은 우석대 국어국문학과와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낸 국문학자지만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 국립중앙극장 창극단 예술감독, 판소리학회 회장 등을 지낸 판소리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난 3월 취임한 이후 분주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유원장을 만났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왔잖아요. 마지막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이니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전북도립국악원은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우리나라의 대표 국악 기관이다. 1986년 전국에서 처음 문을 연 도립국악원은 30여 년 지난 지금, 해마다 1천여 명의 국악 연수생을 배출해내는 전문 국악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전북 음악을 발굴하고 보존하는데 앞장서온 연구기관으로, 창극단, 무용단, 관현악단의 활동으로 쌓아온 국악 대중화의 폭도 넓다. 유 원장은 그간 도립국악원이 만들어온 역량을 더 새롭게 발휘할 수 있는 통로를 다양하게 열어갈 생각이다.
유 원장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면서 '청', '적벽' 등 새로운 창극을 제작해 잇달아 성공시키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창극을 새롭게 이끌었다. 특히 '청'은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초연된 이후 국가브랜드공연으로 발돋움하며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은 작품이다. 소설 '산불'을 극화시키고 '로미오와 줄리엣' 등 세계 명작으로 번안극을 시도한 것도 유 원장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가장 먼저 관객과 만나는 무대는 창극 '춘향'이다. 현대의 감각을 입히기 전, 고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정통 창극으로 만들어 선보이는 무대다.
“좋은 공연은 세대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기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오기 전 창극단이 계획하고 있던 것은 MZ세대를 겨냥한 현대적인 창극이었는데 저는 오히려 정통 창극으로 충실한 무대를 먼저 해보자고 했습니다. 판소리 고유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정통 창극으로 깊은 감동과 여운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비틀거나(?) 패러디하는 새로운 형식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는 국악을 낯설어하는 청년 세대를 위해서도 특별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는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서다. 청년 세대는 생산자로든 관객으로든 국악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랜 시간 대학에 몸담았던 유 원장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체감해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권력을 남용(?)해 학생들에게 국악 공연을 보러 가게 하기도 했단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학생들도 부모님을 모시고 공연장을 찾을 정도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그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MZ세대는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파급력이 커요. 홍보 효과가 대단하죠. 그래서 이들은 특별 관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공연 초청도 하고, 자주 오면 선물도 주는 이벤트도 개발하고요. 우리 소리에 대한 유전자는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마음속에 있는 한국음악의 유전자는 어느날 마주친 대금 소리 하나에도 툭 튀어나오기 마련이거든요. 제대로 접할 수 있는 통로만 마련된다면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죠. 이를 위해 국악원 내 홍보·마케팅팀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유 원장은 '판소리'의 확대를 가장 큰 계획으로 꼽았다. 도립국악원 신청사에 만들어질 소극장에는 국악원 단원과 외부 명창이 함께 판소리 완창을 올릴 예정이다. 무용단과 관현악단도 판소리에 관련된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이미 관현악단은 지난해 판소리에 서양의 교향시를 접목한 '판소리 교향시'라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적벽가와 춘향가에 이어 올해는 수궁가를 주제로 한 무대를 올린다.
전북의 이야기를 무대화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그의 고향은 흥부전과 춘향전을 품고 있는 남원이다. 분단의 비극의 상징인 지리산도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역사와 문화유산이 많은 지역의 특징을 살려 스토리의 무대화를 실현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다. 도립국악원은 지난해 부안 띠뱃놀이를 주제로 한 <고섬섬>, 호남평야를 주제로 한 <진경> 등을 선보인 데 이어 오는 9월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한 무대를 올린다.
“전북이야말로 우리 국악이 살아 숨 쉬는 곳이잖아요. 전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전라북도'적인 것을 해보고 싶어요. 나아가 전북의 로컬리티를 살린 도립국악원의 브랜드공연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창극단, 무용단, 관현악단이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브랜드공연’은 이들 세 단체가 협력하고, 교류하며 이끌어보려고 합니다.”
유원장은 사실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줄어든 공연 예산 때문이다. 후원회 조직과 티켓 유료화 등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유 원장 취임 전 도립국악원은 큰 내홍을 겪었다. 단원들 사이에 있던 갈등이 언론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내부의 갈등부터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오랜 시간 국악 분야와 소통해 온 덕분에 국악원 식구들과는 대부분 친밀도가 높다. 우석대 재직 시절에 가르쳤던 제자들도 적지 않으니 소통에는 스스로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립국악원이 역량을 높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악기관으로 발돋움하는데 힘을 모아 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해있는 현실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텐데도 유원장은 의지가 단단해 보였다.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한국음악의 터전으로 우뚝 설 도립국악원의 내일이 기대된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