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4.12월호

비가 오면 펼쳐지는 꽃, 지우산을 아시나요 

: 우산장 이수자 윤성호 




일상에서 가장 쉽게 잃어버리고 쉽게 사는 물건 중 하나. 우선 우산이 떠오른다. 갑자기 비가 쏟아질 때면 인근 편의점에 달려가 언제라도 살 수 있는 몇 천 원짜리 우산. 그러니 우산은 이제 더 이상 귀한 일상용품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우산만큼 귀한 것이 없었다. 지금의 비닐우산이 등장하기 전, 종이우산이 쓰이던 시절 이야기다. 당시 종이우산은 지우산(紙雨傘)이라 불렀다. 촘촘한 대나무살에 기름 먹인 한지를 붙여 만든 우리의 전통우산이 지우산이다. 일반 종이와 다르게 기름을 먹인 한지는 쉽게 찢어지지 않고 튼튼했다. 덕분에 견고한 대나무 살대를 통해 거센 바람도 막아줬다. 고풍스러운 멋과 실용성을 모두 갖췄던 고마운 존재. 그러나 각양각색의 비닐우산이 넘쳐나는 지금 지우산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지우산은 아직 살아있다. 국내 유일의 우산장 윤규상 장인의 손을 통해서다. 2011년 도 무형유산 우산장으로 지정된 그는 지우산의 전통 제작 방식을 복원해내며 사라질 뻔한 지우산을 지켰다. 쓰임을 다했기에 그만큼 지켜내기에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 이제 장인의 옆에는 아들인 윤성호 씨가 함께한다. 그는 이수자로서 대를 이으며 시대에 맞는 지우산을 고민한다. 지우산은 앞으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윤성호 이수자가 그리는 지우산의 현재와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지파라솔



현재의 쓰임을 고민하다

윤규상 장인이 사는 주택의 위층에 윤성호 이수자의 작업실이 있다. 그는 이곳으로 매일 출퇴근 하며 우산을 만든다. 전체 공정을 다 거치고 나면 하루에 한 개도 완성하기 어려울 만큼 지우산 제작에는 많은 시간이 든다. 직접 대나무를 구해 껍질을 벗기고 쪼개고, 다듬고, 대나무 살을 준비하는 데에만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어간다. 모아진 살들을 자세히 보면 사선으로 이어지는 얇은 선을 볼 수 있다. 나무가 온전한 상태일 때 미리 그어놓은 선이다. 우산을 조립할 때, 얇게 쪼개진 살대 하나하나를 이 선에 맞춰 순서대로 배치한다. 본래의 대나무 형태 그대로 우산을 이루는 뼈대가 되는 것이다. 모르고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지우산의 숨은 미학이다. 


“굳이 이런 정성을 쏟지 않아도 우산의 형태는 나오죠. 하지만 나무의 원래 결을 살리지 않으면 우산이 그만큼 아름답게 나오지 않아요. 기능은 같겠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문제들이 보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해오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지우산은 대나무 공정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얼핏 보면 한지공예처럼 보이지만, 나무공예에 가깝다. 나무를 정교하게 다루는 일에는 끝없는 숙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타고난 손재주보다도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는 느긋함, 작은 것 하나하나 살피는 꼼꼼함이 필요하다. 윤성호 이수자가 뒤늦게 지우산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아버지를 닮은 넉넉한 성격 덕분이었다. 공대를 졸업한 후 10년 가까이 반도체 회사에 다닌 그는 ‘전통공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잦은 해외 출장과 바쁜 업무로 지쳐가던 시기에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결심하고 지우산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여기에는 지우산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는 작은 열망이 작용했다. 




미니어처 지우산 조명(위)과 현대적인 쓰임의 지우산




“아버지께선 연세가 많다보니 만드는 일에만 집중을 하셨어요. 이제는 지우산도 조금 다른 형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능성과 사업성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전통우산을 다양하게 만들어보면 희소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뛰어들었죠. 현실은 완전 달랐지만요.”


그렇게 지우산을 업으로 삼은 지도 어느새 10년. 지우산의 대중화를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계속했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초창기에는 무작정 한옥마을에 나가 한복집 옆에서 지우산을 무료로 대여해주기도 했다. 오직 지우산을 알리고 싶다는 일념이었다. 전통우산은 형태가 정해져있어 변형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상품화를 시키기도 어려웠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일상에 활용 가능한 형태를 몇 가지 선보이기도 했다. 벽에 걸어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하기 좋은 조각우산, 대형 한지파라솔, 미니어처 지우산에 조명을 더한 제품까지, 그의 노력을 통해 지우산은 변화하고 있다. 덕분에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지우산을 많이 찾고 있다. 가격이 부담이 되더라도 그 진가를 알아보고 찾는 손님들이 종종 나타난다. 


“언젠가 강원도에서 버스를 타고 작업실에 찾아온 학생이 있었어요. 더운 여름이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와 장학금으로 받은 돈으로 지우산 하나를 주문하고 갔어요. 신기하면서도 뿌듯했죠. 이게 왜 이렇게 비싼 가격을 받는지 잘 모를 수도 있고 그냥 공예품인가보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희가 공들여 만드는 과정을 알아봐 주시고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뿌듯합니다.”



윤성호 이수자와 아버지 윤규상 장인



유일한 맥을 잇는 일  

어릴 적 아버지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는 ‘발명가’다. 윤규상 장인은 과거 우산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비닐우산의 등장과 함께 공장이 문을 닫게 된 이후에는 한동안 대나무 뜨개바늘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장인은 지우산에 다시 주목했다. 자신이 아니면 전통 지우산의 맥이 끊길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하며 도구 하나부터 옛것 그대로 복원해냈다. 늘 부족한 것들을 고치고 연구하며 지우산의 역사는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여든이 넘은 장인은 이제 같은 길을 가는 아들에게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 혼자 하던 작업을 둘이 나눠 가지며, 부자는 서로에게 든든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전통을 보존하는 데는 분명 어려움이 따른다. 윤성호 이수자는 무엇보다 판로 개척을 위한 통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국가나 지자체에서 먼저 우리 것을 소비하고, 소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물론 단순히 남이 하지 않는 분야라고 해서 지원금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지우산을 필요로 해 쓸모를 얻게 되고, 수요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고, 선순환을 만드는 것. 그는 이러한 변화를 꿈꾼다. 


“일을 하다 보면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의미를 쫓아서 하다 보니 사명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우산뿐만 아니라 공예 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대부분 비슷하거든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그 작품들의 가치가 보이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우산이 흔한 시대지만 그래서 지우산은 더욱 멋스럽게 느껴진다. ‘착!’하고 펼치면 드러나는 촘촘한 대나무살과 고운 한지는 전통공예의 한국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운영하는 지우산 브랜드의 이름은 ‘비꽃’이다. ‘비가 오면 펼쳐지는 꽃’이라는 참 예쁜 의미다. 이제는 비가 오는 날 지우산을 펼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우산의 가치는 크다. 쓰임을 다했다고 사라져서는 안 될 귀한 유산. 우리 일상의 곳곳에서 지우산의 아름다움이 활용된다면 그 가치는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