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5.3월호

꿈꾸는 아내, 그림 그리는 남편의 빛나는 여행기

미디어 아티스트 최영두&이영주 부부




동그란 뿔테안경에 개성 있는 수염, 온화한 미소를 띤 캐릭터 두두아저씨, 그 옆에는 항상 함께하는 단짝 캐릭터가 있다.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해지는 이 그림들의 정체는 미디어 아티스트 최영두, 이영주 부부다. 이들은 자신들과 꼭 닮은 ‘두두아저씨’와 ‘쥬쥬언니’를 통해 다양한 미디어 속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 지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한다. 군산을 중심으로 지역 곳곳에 공간을 두고 미디어 아트 교육도 함께하고 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이들의 목표는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어느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여행하듯 즐겁게 일하는 자유로운 삶을 향하는 이들. 작지만 활기찬 기운이 감도는 전주의 한 작업실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났다. 




두두아저씨와 쥬쥬언니




묻혀있던 지역의 이야기를 꺼내다 

부부의 작업은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일러스트부터 웹툰, 이모티콘 등 그림과 스토리만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몇 년 전 완주의 공식 캐릭터를 제작하며 이들은 지역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완주 특산물인 깻잎과 삼례 딸기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지역 홍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등 현재까지도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이 지역에서 주목하는 또 하나의 소재는 바로 설화다. 여러 지역의 설화를 직접 발굴하고 공부하며 세상에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2020년도에 제작한 ‘한국의 설화 키트’는 실제 한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각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한글과 영문, 일본어 세 가지 버전의 엽서로 정리하고 관련 그림에 직접 색을 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QR코드에 접속하면 애니메이션으로도 시청이 가능하도록 만들며 당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영두ㅣ 오래전 만들어졌지만 최근에야 다시 역주행하는 노래나 영상들이 있잖아요. 어떤 작품이 묻혀있다고 해서 그 가치가 낮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설화도 마찬가지에요. 무조건 고루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설화도 현대적인 감각을 잘 입히면 얼마든지 젊은 세대들도 공감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지역마다 정말 많은 설화가 전해지거든요. 이 이야기들이 끊어지면 안 된다는 아쉬움이 늘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내 이영주 씨는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하루에도 스무 개가 넘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쏟아내곤 한다. 아내가 큰 기획을 짜면 남편은 미디어 속 그림으로 그것을 실현시킨다. 아내는 그 위로 다시 이야기를 입히고 함께 고민하며 작품을 완성해내는 식이다. 샘솟는 아이디어만큼이나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이들은 최근 두두아저씨 캐릭터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단편영화도 선보였다. 매일 창밖을 내다보는 늙은 남자의 독백을 통해 나의 고독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 <나의 독백>이다. 최영두 작가의 자서전과 같은 이 작품은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부부가 제작한 완주군 캐릭터




디지털 노마드의 군산 정착기

흔히 가족이 함께 일하는 상황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서로를 최고의 파트너로 꼽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돌이켜보면 이해가 가능할지 모른다. 과거 사업에 뛰어들었던 최영두 씨는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으며 좌절의 시기를 보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산에 들어가 생활하던 그에게 운명처럼 아내 이영주 씨가 나타났다. 한 손에는 스피커, 다른 한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등장한 아내는 자신을 디지털 아트 작가라고 소개했다. 평소 그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던 그는 운명 같은 이 인연을 계기로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아내를 도와 그림을 그리며 망가졌던 몸과 마음은 서서히 치유되었다.


평생의 동료이자 부부가 된 두 사람은 함께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았다. 어디서든 그릴 수 있는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국내외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일했다. 그랬던 이들이 어쩌다 여행을 마치고 군산에 정착하게 됐을까. 부부는 애니메이션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면서부터 삶의 변화를 맞았다. 


최영두ㅣ 가끔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었어요. 이제 디지털 시대가 완전히 열렸는데 교육은 여전히 입시 미술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는 현실이 안타깝더라고요. 전공자가 아니라도, 나이가 적든 많든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대신 마음껏 돌아다닐 수가 없어지니 쉽게 마음을 먹지 못하고 고민하는 데만 2, 3년이 걸렸죠. 우리는 이제 충분히 놀아봤으니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자는 마음을 먹고 군산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서해로 가보자는 아내의 말에 따라 이들은 군산을 택했다. 특별히 좋은 점은 없지만 그렇다고 떠날 이유도 찾지 못해 살다보니 어느새 8년이 흘렀다. 이들의 집은 곧 작업실이자 교실이 된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전주와 세종을 오가며 또 다른 공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의 수업 방식은 일반적인 미술 수업과는 조금 다르다. 아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도록 만든다. 얼핏 보면 수업보다는 놀이에 가까워 보이지만, 학생들의 작품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의 공모전에서 수상을 휩쓰는 등 부부의 노력을 통해 많은 애니메이션 꿈나무들이 탄생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기  

미디어 영역에서 활동하다보니 부부에게는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이 오히려 반갑다. 최근 예술계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AI(인공지능)가 이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인 이유다. 덕분에 AI를 활용한 영화 제작에도 새롭게 뛰어들고 있다. 올봄 AI 영화제의 출품을 앞두고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하는 중이다. 


이영주ㅣ 서울의 한 전시장에 갔다가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작가’라고 쓰인 명함을 들고 와 인사를 한 적이 있어요. 미술 세계도 이제 젊은 피들이 들어오고 인정받고 있는 시대죠. 그런데 전북 같은 경우도 아직 젊은 세대를 인정하는 분위기는 부족한 것 같아요. 지금 세상은 너무나도 재미있게, 빨리빨리 돌아가고 있어요. 저희는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며 시대에 맞춰 가려고 합니다.


최영두ㅣ 기술이 발달한 만큼 우리가 조금 덜 일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인공지능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사람이 그 혜택을 받는 세상이 오는 거죠. 저희 삶의 목표는 그냥 둘이서 신나게 노는 거거든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는 게 저희 부부의 바람이에요.


마치 행복전도사처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강조하는 부부의 얼굴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결국은 그 밝은 에너지가 이들이 그리는 작품에도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살지 않겠다’는 포부대로, 여행하듯 일하고 도전하는 두 사람만의 모험이 계속되길 응원한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