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5.5월호

동화는 따뜻한 사람을 키워내는 바탕

동화작가 김근혜




누구나 어릴 적 마음에 품었던 동화책 한 권쯤 있을 것이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권정생의 『몽실 언니』 등을 읽으며 우리는 동화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갔다. 논리나 규칙보다는 감정이 앞서던 어린 시절, 동화는 복잡한 세상의 장면을 부드러운 언어로 풀어 설명해 주곤 했다. 하지만 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동화책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들은 이제 어른의 시선에서 제작된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를 먼저, 더 자주 접한다. 


동화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어린이의 시선에서 따뜻한 글을 써내려 가는 이가 있다.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근혜 동화 작가다. 『나는 나야!』(2021), 『유령이 된 소년』(2021), 『들개들의 숲』(2025) 등 그의 작품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단짝하고만 놀고 싶어 하는 아이가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그린 작품 『베프 떼어내기 프로젝트』가 전주시의 '2025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아이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운명처럼 찾아온 동화

그의 글쓰기 인생은 12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전화 한 통으로 바뀌었다. 동화 쓰기를 배운 지 1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당시 지도 선생님의 권유로 단편 하나를 완성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전북일보는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당선 소식을 전한다. 연말을 기념하여 가족들과 평범하게 저녁을 먹던 중, 마치 선물처럼 당선 전화를 받았다. 수차례 도전해도 쉽사리 통과하지 못하는 탓에 '신춘고시'라는 말도 있을 정도인데, 그는 난생처음 투고한 글로 당선되는 행운을 안았다. 어쩌면 작가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니었을까.





    




당시에 학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독서 논술을 지도하고 있었어요. 국문학과나 문창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없었죠. 그러다 한 지인이 글을 한번 써보라고 권유했고, 선생님을 찾아가 동화 쓰기를 배우게 됐어요. 완전 초보였는데도 신춘문예를 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결과를 바라지는 않았고 그저 한 편의 글을 끝까지 써보는 게 목표였어요. 운이 좋았죠.


한동안은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단번에 풀릴 것만 같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도전하는 공모전마다 좌절을 반복했고, 설상가상으로 일이 몰려왔다. 학원 운영은 점점 바빠졌으며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지나친 욕심처럼 다가왔다. 


사실 그때 좀 지옥 같았어요. 하고 싶은 건 글쓰기인데, 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었거든요. 내 가정, 학원, 학생들... 제 존재 이유인 가정도 당연히 돌봐야 했고 그 외에도 책임질 게 많았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일들 때문에 글쓰기를 포기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었고, 괴로웠어요.


잠시 글쓰기를 멈추기로 결심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동화가 있었다. 일상을 보내며 짧게 스치는 문장 하나도 놓치지 않고 메모해 두었다. 그렇게 쌓인 문장들이 넘칠 때쯤 출판사에 직접 문을 두드렸고, 가장 처음으로 연락이 온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스스로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글쓰기에 몰입했다. 


책이 나온다는 생각에 설렘이 컸다. 밤을 새워가며 문장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쏟았다. 고치고 또 고치며 원고를 다듬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이가 빠질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갔지만, 끝내 첫 책 『제롬랜드의 비밀』이 세상에 나왔다. 당시 게임에 푹 빠져 있던 아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시작한 이야기였다. 그 아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문학을 배우는 대학생이 되었다.







어린이의 세계를 쓴다는 것

김 작가는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책을 읽지 않는다. 틱톡이나 유튜브와 같은 영상 플랫폼에서 세상을 만나고, AI에 던지는 몇 마디 질문만으로 정보를 얻는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 이야기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에 동화 작가로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아동 출판 시장의 흐름 또한 비슷하다. 마라탕, 탕후루, MBTI와 같은 유행 소재를 중심으로 한 동화들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소비된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유행어나 비속어를 그대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김 작가는 이런 흐름이 『마당을 나온 암탉』과 같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동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유라고 전한다. 


동화는 교육적인 목적도 있으니 쓰는 사람이 책임감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해야 해요. 하지만 작가로서의 생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잖아요. 그런 적절히 흥미를 끌 수 있는, '재밌다'하고 딱 덮을 수 있는 책을 써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스스로 양심에 찔리죠. 이런 문제들에서 갈등을 많이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 갈등 속에서도 김 작가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아이들이다. 다음 책은 언제 나오냐며 수줍게 물어오는 아이, 책에 대한 감상을 담은 편지를 보내주는 아이. 하루는 강연이 끝난 뒤 한 아이가 작은 키링을 건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아직도 그 키링을 달고 다닌다. 


그의 차기작은 최근의 탄핵 사건을 우회적으로 다룬다. 부정한 방법으로 학급 회장이 된 후 독선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고학년 대상의 동화다.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어른들의 사회를 다루면서도 '탄핵' 대신 '해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이야기를 부드럽게 조율했다. 어른과 아이는 다르다. 잘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북돋아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에 남아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그들의 세계를 써 내려간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