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5.6월호

읽고 쓰고 옮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된다

작가·번역가 신유진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향해 썼던 모든 글이 내게로 되돌아왔던 것 같다. 기쁜 이야기는 내 마음의 기쁨의 자국으로, 슬프고 아픈 이야기는 작은 성장으로. 그러니 글쓰기란 결국 보내는 말이 아니라 맞이하는 말이 아닐는지.’ 신유진 작가의 산문집 『상처 없는 계절』 속에 적힌 문장이다. 작가는 오늘도 치열하게 자신의 글을 맞이하고 있다. 작가이자 번역가로, 매일 읽고 쓰고 옮기며 언어를 통해 나아간다. 


글쓰기와 번역, 두 갈래의 길 

익산 중앙로의 한 골목, 담쟁이덩굴에 안겨있는 작은 카페 르물랑이 있다. 작가의 반려인이 운영하는 이곳은 그의 특별한(?) 일터이기도 하다. 가장 바쁜 시간 출근해 일을 돕고 나면 위층의 작업실에 올라 글을 쓴다. 하루일과의 사이사이에는 반려견 이안이와의 산책도 빠지지 않는다. 부지런히 걷는 시간은 작가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자 영감의 원천이 된다. 특별할 것 없이 안온한 일상. 그 속의 사소한 장면들을 자신의 언어로 담아두는 그는 『창문 너머 어렴풋이』, 『몽 카페』,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 등 여러 산문집을 비롯해 소설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등을 썼다.


예전에는 제 삶 속에서 찾은 것들을 주로 썼는데요. 이제는 저의 글쓰기 방향도 달라지고 있어요. 몇 가지 주제들을 두고 그에 부합하는 소재들을 계속 찾죠. 글을 쓰고 있지 않는 순간에도 사실은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다듬고 있는 시간도 정말 길거든요. 모든 일들이 다 그렇지만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오래 일을 하고 싶다면 그만큼의 시간을 쏟아야 하잖아요. 글에도 시간만한 힘은 없는 것 같아요.




     


 



그는 ‘쓰는’ 일만큼 ‘옮기는’ 일에도 시간을 쏟는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날것 그대로의 문장으로 프랑스 문단에 이름을 알린 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부분 작품을 번역했다. 지난 2022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변역을 맡은 그 역시 주목을 받았다. 번역가로서의 삶은 스물한 살 떠났던 프랑스행이 시작점이었다. 나고 자란 익산을 떠나고,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서울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다. 무작정 프랑스로 향한 그는 힘겹고 막막한 현실을 버티며 이삼십 대의 삶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그 시간들은 작가의 안에 차곡차곡 쌓여 번역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어졌다. 


책 속에서 작가는 글쓰기와 번역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글쓰기가 문장을 무덤 속에 파묻으며 언젠가 그것이 집이 되기를 희망하는 일이라면, 번역은 누군가 단단하게 세운 집을 부서뜨리고 그것의 잔해를 옮겨 와 재건하는 일이다.’ 두 영역은 비슷한 듯 다르지만 결국 집 한 채를 짓는 일만큼 어렵고 고된 노동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제가 쓰는 글은 제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번역은 다르죠. 번역은 저한테 두 가지 의미인 것 같아요. 노동과 배움이에요. 번역은 정말 엄청난 노동력을 요구해요. 창작에 비하면 자유도 별로 없죠. 근데 그것을 견디는 것도 하나의 배움인 것 같아요. 어떤 작가의 글을 옮긴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커다란 경험이고 배움이에요.


누군가의 글을 제 안에 옮겨오기 위해서는 먼저 원작 작가에 대한 촘촘한 공부가 필요하다. 작가와 가장 가까워졌을 때 좋은 번역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가 작가와 친해지는 방법은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글에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있다는 생각에서다. 작가의 인터뷰나 방송을 찾아보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와 호흡을 기억하며 글을 옮긴다.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도 그 작가의 언어에 가장 가까운 것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며 여전히 어려운 번역의 세계에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삶을 사랑하는 힘으로부터 

글쓰기와 번역 작업 외에도 매달 돌아오는 3개의 연재와 강연 활동까지, 작가의 일상은 숨 가쁘다. 그럼에도 자신이 쓸 수 있는 사람이라서 기쁘다 말하는 그는 최근 또 하나의 기쁜 숙제를 마쳤다. 5월 23일, 신간 소설 『페른베』를 출간했다. 여러 글을 쓰면서도 그는 늘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에게 소설은 가장 안전하게 타인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장치이다. 소설만큼 사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장르는 없다고도 말한다. 


『페른베』는 처음부터 소설로 시작한 작품은 아니었다. 여러 번 뒤엎고 다시 쓰는 과정을 지나며 ‘쓰다 보니’ 소설이 되었다. 출판사에게 처음 받은 제안은 우리나라의 번역가이자 수필가 전혜린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일이었다. 전혜린이라는 인물에 대해 공부하며 자기 자신을 바라보니 소설로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소설 『페른베』가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욕망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나의 극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잖아요. 소설에는 전혜린을 모티브로 삼은 한 여성이 등장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젊은 여성이 한 명 등장하죠. 두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너로부터 쓰는 나의 이야기’를 전하려 해요. 그건 삶을 다시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내 삶을 다시 쓴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출발하면 좋을까를 고민해보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모든 게 다 실패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소설이 전하는 내용처럼 작가에게도 삶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작가는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답했다. 젊을 때의 자신이라면 다시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재 가장 사랑하고 있는 것 또한 ‘나의 삶’이라고 덧붙인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옆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 말하는 신유진 작가. 그가 사랑하는 삶으로부터 쓰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어떤 이야기든 그 끝은 다정한 결말을 맺을 것 같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