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완벽하게 연필 깎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있다. 2013년 출간된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이다. 연필 깎기 전 필요한 몸풀기부터 진기한 방법으로 연필을 깎는 과정들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어딘가 요상한(?) 책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창조된 좀비에 대해 소개하는 『좀비사전』, 우리나라의 각종 부정선거 기법을 정리한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 등. 출판사 프로파간다가 펴낸 책들은 남들이 쓸데없다고 여길만한 주제에 주목한다. 이 독특한 이야기들은 있는 그대로 유쾌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그 너머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기존의 출판 시장에서는 다루지 않는 ‘마이너’한 이야기를 쫓아, 조금 이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를 책을 만드는 곳, 프로파간다의 김광철 대표를 만났다.
흥하든 망하든 내가 믿고 싶은 걸 만든다
프로파간다는 2007년 1월 시각문화 전문지 〈GRAPHIC〉을 창간하며 출발했다. ‘원 이슈 원 테마’를 전략으로 한 권에 하나의 주제만을 다룬다. 지금에야 이런 성격의 잡지가 흔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이는 신선한 시도였다. 창의적인 기사를 생산하는 독립잡지가 되기 위해 외부지원이나 광고도 받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곧 망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젊은 나이의 김광철 대표는 마음속에 작은 확신을 품었다. 그러나 1호와 2호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세 번까지 내고 망하면 그만하자는 생각으로 3호를 펴냈다. 그러나 3호가 이상하게도 잘 팔렸다. 그 덕에 〈GRAPHIC〉은 20년 가까운 세월 무사히 살아남았다.
잡지는 잡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반대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극단적인 형태를 선택했죠. 내가 어떤 책을 만들 때 ‘이게 잘 팔릴 것이다’ 판단하고 만들지 않기 때문에 책에는 운도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망할 것 같다가도 잘 팔리는 경우가 있고 잘 될 줄 알았는데 실패하는 경우도 많죠. 그냥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믿고 싶은 걸 만드는 거예요. 대중들에게 호응이 있냐 없느냐를 따지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프로파간다 발행 독립잡지 <GRAPHIC>
서울을 떠나, 군산에서 출판하기
김 대표는 90년대 초 영화잡지를 통해 출판계에 입문했다. <씨네21>의 창간팀을 거치기도 하며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영화’보다는 ‘잡지’라는 매체에 더욱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 출판사를 차린다면 저널리즘의 원형이 되는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GRAPHIC〉과 프로파간다의 탄생까지 이어졌다. 2012년부터 단행본 출판에 뛰어들기 시작하며 그는 세상에 없던 엉뚱하고 발칙한 책들을 내놓았다. 서브컬쳐와 대중문화, 디자인, 건축 분야의 단행본을 출간하며 누구도 책에서 하지 않을법한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담아냈다. 그런 그의 작업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21년, 익숙한 서울을 떠나 군산에 온 일이다.
군산에 왜 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딱히 멋있는 이유가 있지는 않아요. 서울에 살면서도 늘 지역으로 가야한다는 목표는 명확했거든요. 서울이 너무 익숙하다보니 환경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계획적으로 어딜 가야겠다 생각하진 않았고, 군산에 왔더니 마침 방이 하나 나와서 계약해버렸어요. 그때 방을 얻지 못했으면 아마 다른 곳에 있었을 수도 있겠죠.(웃음)
그는 스스로를 군산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든 매력적인 도시를 만나면 떠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좀 더 작은 지역에 가고 싶은 바람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군산이 좋다. 적어도 5년은 살아봐야 그 지역에 동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아직은 군산에 머물러야할 이유가 있다. 그가 지역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선택한 일 중 하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2023년 가을, 영화동 거리에 프로파간다의 출판물과 관련 분야의 책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아트북 서점 ‘그래픽숍’을 열었다.

아틀라스 군산, 영화군산
원래는 집에서 작업을 했어요. 지역에 왔으면 그 지역과 섞여서 활동해야 하는데 집에만 박혀있는 상황이었죠.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프로젝트 공간 겸 서점을 만들었습니다. 서점이라는 공간은 시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오픈된 공간이잖아요. 공간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겠다 싶어서 제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 공간이 필요했어요. 공간을 만들고 나니 지역에서 뭔가 하겠다는 생각이 확실히 구체화되었죠.
공간의 힘은 그가 본격적으로 지역과 밀착된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힘으로 이어졌다. 그는 ‘소통협력센터 군산’과 협업해 월명동과 영화동 일대 580여 점포의 위치를 표시하고 소개한 『군산 구도심 자영업 시각 지도』를 제작했다. 이후 군산에서 촬영된 한국영화를 따라 지역의 장소성과 서사, 정서를 담은 『영화 군산』, 지역의 책방들이 모여 개최한 문학 공모전의 수상작을 모은 『군산초단편문학상 수상작품집』, 군산을 새롭게 아카이빙한 『아틀라스 군산 – 시티 가이드』 시리즈 등 스스로 지역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작업들에 앞장서 함께하고 있다.
현재 그가 가장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군산북페어이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군산북페어는 첫 회 만에 좋은 반응을 얻으며 지역 북페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광철 대표는 군산북페어 출발의 가장 앞에 선 사람이었다. 지역의 출판문화를 가까이에서 경험하며 그는 다양한 형태의 북페어가 지역에도 필요함을 느꼈다. 규모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출판을 창의적으로 구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촘촘한 기준을 정해놓고 신청하라는 방식이 아닌, 포트폴리오 없이도 쉽게 신청할 수 있는 양식을 준비했다. 직접 매력 있는 독립출판사를 찾아가 홍보하고 섭외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아무런 기반이 없었기에 기획부터 실제 북페어가 열리기까지는 1년의 시간이 걸렸다.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힘이 모여 가능한 일이었다.
지자체와 중간지원조직, 다른 기획자들이 다 함께 만드는 행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가끔은 엄청난 스트레스도 받죠. 그래도 군산에 북페어가 필요한가? 물으면 많은 시민들이 원하고 ‘필요하기 때문에’, 로컬 북페어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걸 다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과감해지고 싶다
그는 일과 멀어지는 시간이 거의 없다. 매순간 머릿속에는 책으로 엮어낼 만한 새로운 아이템들을 떠올리느라 바쁘다. 책에도 유행이 있고 유행은 갈수록 빠르게 변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유행과 반대되는 길을 택하려 한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유롭게 창작하고 표현하는 것이 그가 향하는 진정한 출판이다.
한국 출판 시장이 다양한 것 같지만 다양하지 않거든요. 거기에 편승해서 비슷한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이제 누구나 출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잖아요. 그럼 방식도 더 창의적으로 변화해야죠. 관습적인 출판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만의 관점으로 훨씬 더 파격적인 시도들이 생겨야 해요.
8월에 앞두고 있는 두 번째 군산북페어를 준비하며, 그는 이런 독특하고 실험적인 독립출판물을 기다린다. 개인적인 꿈 역시 지금보다 더 과감해지는 것이다. 현재 프로파간다는 내부에 디자이너나 에디터 등의 직원을 두지 않는다. 외부 협업자들과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프로젝트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식이다. 출판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조직의 특성은 그에게 더욱 독립적인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교보문고에 가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의 형식을 탈피한 그런 출판을 하고 싶습니다. 단행본 유형의 책들은 기획부터 제작과정까지 힘이 너무 들어요. 내용이 흥미롭다면 새로운 형태의 출판은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인쇄나 제본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제작하는 DIY를 출판과 더해도 재미있지 않겠어요? 이런 아이디어들이 실현될 때 새로운 출판의 길이 열린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프로파간다’라는 용어에는 본래 ‘선전’이나 ‘선동’의 의미가 담겨있다. 김광철 대표가 향하는 출판의 모습이 ‘프로파간다’라는 이름과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동의하는 길보다는 나의 신념을 ‘선전’하는 일이 차라리 낫다고. ‘선동’은 더 좋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또 어떤 별난 책을 세상에 내놓을까.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