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5.8월호

사진에서 시작된 소설, 소설보다 가혹한 현실에 대해

사진작가 정주하




한 장의 사진은 어떤 힘을 가질까. ‘사진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통하는 책 『파라-다이스』를 펼치며 그 힘을 실감했다. 『파라-다이스』는 사진작가 정주하가 찍은 희망 목장의 사진 연작에서 시작된 두 편의 소설이 담긴 책이다. 사진은 어떻게 소설이 될 수 있었을까. 책은 희망 목장에 대한 설명으로 첫 장을 시작한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지방을 덮쳤다. 다음 날 후쿠시마의 도쿄전력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십수 만 명이 집을 버리고 떠났다. 사고 지점 반경 20㎞ 이내는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동물들 역시 방사능에 노출됐다.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여 소를 죽이지 않고 먹이를 주는 목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이제 '희망 목장'이라고 부른다.’ 

(『파라-다이스』 중)


사진작가 정주하는 2011년 이후 꾸준히 후쿠시마를 방문하며 희망 목장의 검은 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작업에 붙인 제목 ‘파라-다이스’는 거부 혹은 ‘~을 넘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접두사 '파라(para-)‘에 '죽음(dies)’을 합친 말이다. 죽음을 거부하거나 넘어선 소들에게 희망 목장은 과연 낙원일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작가는 그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 선생이 생전 그의 사진을 책으로 묶어내길 권했다. 독자들이 사진 너머 더 많은 걸 볼 수 있도록 일반적인 사진집의 형식보다는 다른 영역의 예술이 서로 마주보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사진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정주하, 백민석, 황모과 『파라-다이스』



희망목장 Ⓒ정주하



이 책이 저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요. 예술로써 사진은 사실 소비가 거의 안 되고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늘 숙제처럼 남아있었는데 문학과 사진의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의 틀 안에 묶이면서 ‘사진’을 소비하는 방식의 새로운 통로가 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처럼 사진에도 정해진 문법이 있어요. 그래서 사진과 문학은 생각보다 가깝죠. 사진을 설명하는 소설, 소설을 설명하는 사진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뿌리는 같다는 점이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작가의 사진과 나란히 놓인 소설은 백민석, 황모과 작가의 작품이다. 출판사의 제안으로 두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첫 회의에서 그는 커다란 원본사진을 바닥에 펼쳐 보이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 순간 두 사람 모두 사진 안에 깊숙이 빠져들며 공감했다. 백민석의 소설 ‘검은 소’는 2023년 제2원자력발전소까지 녹아내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방사능 벨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는 ‘나’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죽음의 땅으로 도망쳐온 재일조선인 여성 게이코와 화상통신 단말기를 통해 소통한다. 소들처럼 버려진 주인공 게이코를 통해 가혹한 환경 속에 던져진 소수자의 삶을 비춘다. 


황모과는 SF소설가답게 희망 목장의 소들을 의인화한 판타지적인 이야기로 현실을 대변했다. 소설 ‘마지막 숨’은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인간이 목장을 떠나며 남겨진 소들이 도살당하지 않은 채로 800년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죽지 못하고, 죽지 않고, 죽을 수도 없는 소들의 영생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있다. 오염수 방류로 죽은 인어 고기가 든 배합사료를 먹어온 것이다. 이는 일본의 유명한 전설 중 하나인 인어 고기를 먹고 불로장수했다는 비구니의 이야기를 빌려왔다. 두 소설은 결코 허구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가 방류됐던 인근 바닷가에서 일본 청년이 서핑을 즐기며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정주하




지금 다루고 있는 이 문제가 몇 년 안에 결과로 드러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저 또한 막막함을 느껴요. 그런데 그 안에는 여러 문제들이 섞여 있잖아요. 소 문제부터 물, 환경, 우리의 의식 문제까지 이어지죠. 이러한 부분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거예요. 피해 지역의 주변 마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오면 인간에게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런 것 하나하나가 매우 주목할 만한 문제죠.


‘파라-다이스’ 작업이 있기까지 작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의 풍경과 인물을 담아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작업을 비롯해 2008년 ‘불안, 불-안’ 시리즈를 통해 울진과 월성, 고리 등 핵발전소가 위치한 국내 마을과 해수욕장의 일상을 담아왔다. 첫 작업은 1980년대 초 대학시절, 정신지체 장애인 보호시설을 촬영한 ‘혜생원’이었다. 이후 '사진적 폭력', '땅의 소리', '서쪽 바다' 등 그의 작업은 아름답고 멋진 장면보다는 주로 사회의 소외되고 가려진 장면, 어쩌면 불편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향한다. 


어렵고 고된 길임에도 그가 이러한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스스로가 그런 DNA를 타고난 사람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승산이 있든 없든, 결말이 나든 안 나든 사진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하는 일이 그에게는 이제 숙명이 되었다.







가난하든 부자든 여자든 남자든 어떤 문제 앞에서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나한테 어떤 이익이 생기느냐, 보상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결국 진다는 걸 알거든요. 악은 이길 수 없고 새로운 악은 어디선가 또 등장할 거예요. 그래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에 계속 서있는 거죠.


오는 9월에는 일본에서 ‘파라-다이스’ 사진 연작을 전시로도 선보인다. 후쿠시마를 방문하며 10년간 쌓인 사진의 양은 방대하다. 아직 발표하지 못한 사진들을 정리하는 일도 틈틈이 해가며 그만의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시대, 사진예술이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도 사진작가로서 의미 있는 길을 다져가는 그는 사진의 매력을 이렇게 꼽았다. “사진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고. 인터뷰를 마치며 미리 사둔 『파라-다이스』를 꺼내 사인을 요청했다. 작가는 이때도 ‘함께 가요!’라는 문구를 적어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또 후쿠시마로 향할 것이다. 사진을 통해서라도 작가의 여정을 함께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작가의 말을 한 번 더 전한다. 

“함께 가요!” 




글·사진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