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언제부터 춤을 췄을까? 인류 역사에서 아마 춤보다 오래된 예술은 없을 것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나 두려움, 환희, 슬픔, 사랑의 순간 팔을 힘껏 들어 올리고 두 발을 구르며. 우리 삶에서 비롯된 몸짓이 곧 춤의 시작이었다. 한국 민속춤의 하나인 승무 역시 생의 고단함과 내면의 갈등, 그것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담은 삶의 몸짓이다. 한평생 춤에 매달려온 문정근 명인. 그에게 승무를 추는 일은 그저 삶을 살아내는 일과 같다. 아름다운 움직임 너머, 그는 어떤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까.
여러 스승을 통해 다져간 세계
덕진동의 한 오래된 상가를 오르면 ‘문정근 전통춤연구원’이라는 간판이 반긴다. 명인은 이 공간에서 매일 연습을 한다. 아침 일찍 한차례 연습을 마쳤다는 그와 넓은 연습실 한편에 마주앉았다. “내가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다고, 뭐 내세울 만한 것이 있어야 하지.” 그의 첫마디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이어온 무용 인생 앞에서도 겸손한 자세가 느껴졌다. 그러나 일흔이 넘도록 춤을 춰온 인생에 어찌 우여곡절이 없었을까. 그는 무용가이자 창작자, 연구자로서, 여러 방면으로 우리 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가장 큰 정체성은 ‘무용가’ 문정근이다. 어릴 적부터 유독 춤을 좋아한 그는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춤을 추고, 초등학교 학예회 무대에 올라 민요에 맞춰 무용을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춤이 자신의 길이라 믿으며 무용에 입문했다.
우리 때만 해도 무용은 특별한 사람들이 한다고 생각했지. 대중적인 인지도도 별로 없었고 배울만한 곳도 많지 않았어요. 저는 더군다나 시골 출신이라 접할 기회가 없었죠. 근데 중학교를 전주로 오면서 고등학교 때 처음 무용학원을 찾아갔어요. 그때 최선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한국무용을 배우게 됐죠. 이후에 ‘춤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고민할 때, 저는 여러 스승님한테 무용을 배웠던 게 정말 천만다행이었다고 지금에야 생각해요. 다른 사람보다 스승 복이 참 많았죠.
최선, 김광숙, 박금슬, 이매방, 한영숙 등 우리나라 무용계를 이끌었던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직접 무용을 배우며, 그의 춤 세계는 갈수록 깊이와 넓이를 키웠다. 대부분의 전통무용을 섭렵했지만 그중 승무와 가장 깊은 연을 맺었다. 그는 승무에 담긴 생의 희로애락을 보면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장단에 맞춰 빨라졌다가 가끔은 느려졌다가, 또 빠르게 휘몰아치다 다시 느리게 움직이는. 동작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가면 승무는 결코 지루하기만 한 춤이 아니다.

전북 춤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그는 자신이 추는 승무가 ‘촌스러운’ 특징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조금 덜 세련되어 보이더라도, 그의 승무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명인이 추는 승무는 전북에서 행해지던 전라삼현승무다. 전라삼현승무는 전북 지방에서 연주되어지는 전라삼현음악에 맞춰 추는 승무를 말한다. 전라삼현의 음악적 특징을 바탕으로 내면에 감춰진 번뇌와 갈등을 투박하지만 당차고, 멋스럽게 승화시킨다. 그는 전북 춤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연구에 긴 시간 힘을 쏟아왔다. 2001년 무렵부터 전라삼현승무 복원 작업을 시도해 사라질 뻔한 우리 춤을 살려냈다. 그는 이 과정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덧붙인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서양문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1960년대에서 70년대에는 신무용이 인기를 얻었죠. 그 시기 전주 지방에서 내려오던 무용이 거의 다 역사가 끊어졌어요. 신무용은 재미있고 화려한데 전통은 재미없다, 옛날 것이다. 이런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한창 전통을 이어가야 할 시기에 맥이 끊어져 버린 것이죠. 그걸 지금에 와서 다시 찾으려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책을 뒤지면서 관련 문장이 한 줄이라도 남아있으면 거기에 내용을 덧붙여가며 한 동작씩 찾아나갔죠.
오직 우리 춤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관련 인물들을 모셔 고증을 받고 기록을 찾아 나섰다. 교방에서 행해진 음악과 무용에 관한 유일한 기록을 담고 있는 책 『교방가요』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 책을 바탕으로, 과거 전라감영 내 교방청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용을 복원하기도 했다. 교방승무를 비롯해 전라검무, 교방수건춤, 고무, 포구락무를 재현해내며 지금의 전라감영을 무대로 <선화당에 춤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작품을 올리고 있다. 전북만의 지역색을 지닌 전라삼현승무의 복원과 무대화는 전통춤의 다양성을 넓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명인은 자신이 살려낸 전라삼현승무로 2014년 도 무형유산 보유자가 됐다.

전통은 삶과 나란히 함께 가는 것
전통을 파고들면서도, 동시에 그는 전통무용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그가 해석하는 전통이란 ‘옛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과 나란히 함께 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정신적으로 우리 것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다양한 창작무용 작품으로 뻗어나갔다. 그는 10여 년 동안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의 무용단장으로 활동하며 수십 편의 작품을 제작했다.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파랑새>, 모악산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한 <모악>,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모노드라마 <맘, 그리운 날에> 등이 대표적이다.
저는 전통이 삶을 따라서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야한다고 봐요. 한마디로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옛날 것만 그대로 고집할 수 있겠어요. 우리 춤을 출 때도 느린 동작 속에서 새로운 동과 정을 찾고, 요즘 안무처럼 반복적인 동작을 활용한다든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조금씩 시도해보면서 사람들에게 뭔가 볼거리를 주고, 재미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평생 춤을 공부하며 살아왔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연구할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러나 여느 전통분야가 그렇듯 이제는 승무 역시 지켜내는 것부터가 숙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다음 세대에게 무작정 예술을 강요할 수 없다. 열정과 사명감, 에너지로 넘쳤던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리면 지금의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예술은 내가 노력한 만큼 늘 같은 대가가 따르지 않잖아요. 현실적인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우리가 좋은 젊은이들을 놓치고 있죠. 돌이켜보면 내가 젊었을 때는 뭣 모르고 그냥 열심히 하면 길이 있고, 빛이 있겠지 믿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즐기면서 했거든. 언젠가는 공연을 하루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데, 갑자기 무릎 인대가 찢어진 거예요. 이 무릎으로 공연을 어떡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병원에서 지지대를 착용하고 그냥 무대에 올랐죠. 무릎이 잘 굽혀지지도 않았는데, 더 진솔한 마음으로 임했고 관객에게도 그게 통했어요. 나는 경제적인 건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무용을 죽을 만큼 열심히 해봤으니 그래도 보람 있게 살았다 싶어요. 후회는 없어요.
명인은 지금도 무대에 오를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긴장한다고 한다. 똑같은 동작도 어느 날은 기분 좋게 추다가도 어떤 날은 망했다 싶은 게 춤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처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그는 몸이 허락하는 한 남은 생도 부지런히 춤을 출 것이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익숙한 시구를 통해 눈앞에 승무를 그려본다. 명인이 지나온 길, 순수한 열정이 더해진 그 몸짓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글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