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6.2월호

자수를 통해 내디딘 세상의 바깥

자수장 이정희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우리는 종종 이 표현을 떠올린다. ‘수놓다’라는 말. ‘수놓다’의 사전적 정의는 ‘색실로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다’이다. 자수(刺繡)의 실제 의미에서 비롯된 말이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수(繡)’에 비유할까.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 같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울긋불긋 입체적 미학이 살아있는 자수는 그 자체로 멋스럽다. 그러나 더 큰 아름다움은 그 과정에 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섬세한 손길과 정갈한 마음, 인고의 시간들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그 아름다움 속에 사는 사람이 있다. 이정희 자수장이다. 지난 2022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자수장 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예술인이다. 자수장으로서 인정받기까지, 남들보다 조금은 더 지난한 과정을 지나왔을 그. 이정희 자수장이 수놓은 이야기를 만났다. 


    

자수 주머니



 사계분경 팔각보석함  



바늘과 실을 가지고 놀던 소녀 

정읍 수성동의 한 골목에 문을 연 ‘전통자수 예다움’은 그의 작업실이자 아지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곳에 나와 바늘에 실을 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번 몰입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날도 많다. 작은 장신구 하나를 만들더라도 자수가 나의 얼굴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무형유산 보유자에 오르고 나니 그 책임감은 더 커졌다. 그러나 명인은 힘들다는 말 대신 즐겁다 말한다. 


제 하루일과는 매일 바늘과 실하고 노는 일이에요. 요 며칠은 씻지도 않고 작업을 하는 중이죠. 어제도 새벽 4시 넘어서까지 일을 했는데, 저는 하루도 자수를 안 하고 싶은 날이 없어요. 나가서 노는 시간도 아까워서 자꾸만 자수 생각이 나요. 그래서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항상 실을 챙겨 다니죠. 수를 놓을 때만큼은 여기에 몰입하니까 모든 잡념과 근심을 잊어버려요.


자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열정과 애정으로 가득하다. 이 마음은 열일곱 무렵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세살 때 소아마비를 앓으며 장애인이 된 그는 학교에 가지 못한 채 고립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에서 책을 읽고, 동네 언니들이 뜨개질을 하면 옆에서 보고 배웠다. 바느질 솜씨가 좋았던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닮아 손재주만큼은 누구보다 좋았다. 그러던 중 양장점에 다니던 친척 언니를 따라 그는 전남 장성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고운 한복을 입고 하얀 학을 수놓는 모습을 본 소녀 이정희는 매료됐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수를 접하며 그는 세상 밖으로 나갔다.


궁수, 자신만의 색으로 수놓다

아무리 손끝이 야물어도 처음부터 자수의 길이 쉽진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안 될까?’ 고민하며 매일이 좌절의 연속이었다. 간절한 만큼 더 치열하게 매달렸다. 1년이 지나니 제법 소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스물여섯이 되던 해 그는 국가무형유산 한상수 선생의 전수관을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생활용품이나 장신구 등 민간에서 행하는 ‘민수’를 주로 만들어왔던 그는 과거 궁중에서 제작되던 황실 자수인 ‘궁수’를 만나게 된다. 고풍스러운 궁수의 매력에 빠진 그는 스승의 공방에서 궁중 자수를 배우며 자신의 세계를 넓혔다.


2년 동안 기술을 익히는 데만 몰두하던 당시, 전수관이 재건축되면서 그는 고향인 정읍으로 내려왔다. 이제 온전히 혼자 나아가야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작품으로 풀어내며 여러 공모전에 도전했다. 상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잘 하고 있는지 평가받고 싶었다. 번번이 실패했지만, 1996년 전북전통공예작품 공모전에서 특선을 하며 그는 인정과 용기를 얻기 시작했다. 명인의 작품은 수채화처럼 차분하고 은은한 색감이 특징이다. 전통 자수는 오방색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의 수를 놓지만 그는 화려함보다 은은하게 빛나는 색에 마음이 더욱 끌린다.




자수 화관


청룡백호도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명인의 대표작은 「청룡백호도」로 꼽힌다. 제작에만 3년이 걸린 자수 병풍 대작이다. 하늘을 지키는 청룡과 땅을 수호하는 백호, 그 뒤로 펼쳐지는 산천 풍경의 색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조화롭고 아름답다. 이후 제작한 작품 「화관」은 2003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청와대에 기증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명인은 이날의 수상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저는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장애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비장애인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고,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놀기가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장애인미술대전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수상을 하면서 장애인 문화예술 속에 저도 들어가게 된 거죠. 그때부터 장애 예술인들과 같이 공감하고 전시를 열면서 스스로 변화하는 계기가 됐어요.


장애 예술인으로 사는 삶 

명인은 최근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작년부터 전북과학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며 공부에 나섰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사회복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자수’에 집중하던 삶에서 ‘장애’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며 그는 장애인 복지에 관한 활동에도 앞장서왔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등 단체 활동을 통해 장애 예술인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장애인에 대한 복지와 인식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장애 예술인에 대한 편견은 그가 이겨내야 할 벽이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나눔’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됐죠. 장애인들은 사실 받는 게 많잖아요. 우리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크고 거창한 걸 나누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을 나누자는 거예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지 말고, 장애인끼리만 어울리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같이 어울려 가야죠. 둘러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하는 활동도 많거든요. 우리 모두 같이 가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전통은 나의 숙명

환갑을 넘긴 나이, 매일 앉아서 작업에만 시간을 쓰다 보니 요즘은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죽을 때까지 수를 놓고 싶다는 꿈을 꾸지만 조바심이 생긴다. 최근에는 배우려는 제자도 줄고 있어 고민이 더해졌다. 지금은 홀로 키워온 아들이 자수를 배우기 시작하며 이 명인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명인이 막 자수의 길에 들어섰던 나이와 같은 열일곱 살의 아들은 제자이자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 있다. 


그 힘을 동력으로 올해도 그는 자신만의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 정조대왕 능행차도를 제작하는 일이다. 규모가 큰 만큼 더 부지런한 손길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현재 초안은 마련한 상태로 이제 필요한 색실을 찾고 제작에 들어갈 계획이다. 


계속 새로운 작품을 보여줘야 해요. 같은 작업만 반복하면 안 되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는 이런 생각 때문에 늘 바빠요. 지금 구상하고 있는 능행차도 말고도 궁중 자수 왕비장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 작품도 정말 멋스럽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이제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껴져요. 올해는 이 두 가지 작품을 겸해서 꼭 완성해 보고 싶어요.


시대가 변할수록 전통공예 분야는 위기를 겪고 있다. 전통자수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서는 재료를 구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아졌다. 좋은 작품은 좋은 재료에서 비롯된다. 특히 섬세한 손길을 요구하는 실은 품질에 따라 그 차이가 더욱 크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도 매번 서울을 오가며 실을 직접 보고 만져본다. 그러나 한두 곳씩 문을 닫고, 가격이 크게 올라 이제는 버거운 실정이다. 여러 현실을 마주하며 그의 책임은 갈수록 단단해진다. 현대적 감각을 더한 상품을 만든다면 돈은 잘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뚝심 있게 가려한다. 무형유산 보유자라는 수식어에 맞게 현대적인 시도보다는 전통자수의 복원과 보존에 집중하고 싶은 바람이다. 


창작에 대한 욕심보다는 전통 그대로를 재현하고 지키는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요. 저와는 다른 젊은 작가들의 역할이 또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전통을 잘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지요. 그럼에도 전통 지킴이로서 자부심이 커요. 영원히 내가 죽을 때까지 손과 발이 허락하는 한 자수를 하고 싶어요.


그에게 수는 삶의 전부다. 자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다고 명인은 말한다. 자수를 통해 안전한 집 바깥으로 나가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이제 장애라는 단어를 뺀 ‘자수장 이정희’로 그를 바라본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열정은 어떤 한계든 이길 수 있음을 그의 삶을 통해 배운다.


글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