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관 감독
40여 년 만에 동창들이 직접 만든 졸업앨범을 품에 안은 이가 있다. 1980년 전주 신흥고등학교의 한 졸업생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그때, 신흥고 학생들은 전주의 거리에서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징계를 택해야했다. 영화 〈졸업앨범 : 선생님을 기다렸다〉는 그 선택으로 깊은 오해와 상처를 지닌 스승과 제자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오래 미뤄왔던 화해와 졸업. 그 과정을 그리며 영화는 5.18이 광주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 국민적 역사였다는 사실을 전한다.
이 작품은 긴 시간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활동해 온 김종관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이 한편을 완성하기까지, 그는 카메라 안과 밖에서 치열한 여정을 지나왔다. 그리고 올봄,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졸업앨범 : 선생님을 기다렸다〉가 공식적으로 처음 국내 관객과 만난다. 그 기록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 스틸컷
오래 미뤄온 졸업 그리고 화해
영화는 1980년 5월, 계엄 철폐 시위에 나섰던 신흥고 학생들과 당시 교감으로 있던 정옥동 선생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신군부의 압박으로부터 학생들을 구해야했던 정 교감은 학교 차원에서 직접 징계를 내렸다. 학업을 포기하고, 학교를 떠나야 했던 이들에게 그날의 상처는 깊게 남았다. 김종관 감독은 작품을 기획한 2018년부터 무려 7년 동안 50여 명의 인물을 만났다. 그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수집하고 검증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전주에서 벌어진 시위의 목적을 명확하게 증언해내는 일이었다. 5.18민주화운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는지를 밝혀내야만 영화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연합 시위의 최고 주동자로서, 결정적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인물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을 수소문하고 기다린 끝에 지난 2024년, 마침내 마지막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5.18과의 연관성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주동자를 꼭 찾아야 했는데 인터뷰한 모두가 같은 이름을 언급했죠. ‘박영화’라는 인물이에요. 아무리 찾아도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우연히 이분들이 과거에 함께 만들었던 인터넷 카페를 통해 그분이 쓴 글을 찾았어요. 2002년에 작성된 글이었는데 연락처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연락이 닿았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뒤늦게야 명예 졸업식도 열게 되었어요.
용기를 내어 카메라 앞에 선 제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끝내 트라우마로 참여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 김 감독은 카메라가 비추지 못한 그들과도 여전히 안부를 주고받으며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다보면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도 필연적이다. 그는 작품 속 인물들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천천히 쌓아가며 답을 찾을 뿐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냥 사라지지 않도록 소중히 여기겠다” 이러한 태도를 갖췄을 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다큐멘터리는 그에게 곧 ‘기다림’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지나온 세월만큼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간극이 있었지만 어느 시점이 됐을 때는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선생님은 학생들을 정말 사랑했고, 학생들은 선생님을 굉장히 존경했다는 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과거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도 더 컸던 거겠죠.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선생님은 학생들을 정말 긴 세월 기다리고 보고 싶어 하셨거든요.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만날수록 그런 감정들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다시 만난 신흥고 학생들과 정옥동 교감
긴 시간을 돌아 완성한 영화
그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발견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당시, 그는 거리에 나온 중고등학생들의 시위가 가슴 깊이 남았다. ‘내가 살아온 고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는 과정에서 지금의 이야기를 만났다. 2020년, 30분 분량의 단편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먼저 선보인 이 작품은 이후 한 시간짜리 중편영화로 제작된 이후 최근 장편영화로 비로소 ‘완성’ 버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동안 신흥고 학생들과 몇 번의 시사회를 가져온 김 감독은 관객의 입장으로 작품을 바라보며,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라는 자신만의 확신을 가졌다. 그 덕에 포기하지 않고 〈졸업앨범 : 선생님을 기다렸다〉를 완성해낼 수 있었다.
제작 과정에 우여곡절도 많았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작년 10개월 정도는 거의 편집에만 매달렸죠. 제작을 하면서 가장 두렵고 힘든 부분은 완성은 했으나 보여줄 때가 없을 때거든요. 마침내 이번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게 되어 오랜 마음의 짐을 덜었습니다. 전주의 이야기인 만큼 전주 관객들과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거든요. 참 다행입니다.
과거는 끊임없이 기억되며 현재화된다
지금은 다큐멘터리 연출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의 첫 영화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극영화였다. 대학원에서 졸업 작품을 만들던 시절, 준비하던 시나리오가 계속해서 엎어지며 영화에 대한 그의 고민도 깊어졌다. 이때 다큐멘터리가 그의 삶에 들어왔다.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끌림에 다큐의 세계에 들어선 그는 이후 방송과 영화를 넘나들며 작업을 이어왔다. 사회적 이슈를 모았던 〈가습기 살균제 3부작〉을 비롯해 〈한국기행〉, 〈인간극장〉 등 익숙한 프로그램들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꿈을 이야기할 때는 늘 영화감독이라 답한다. 그것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파스타집을 하더라도 영화감독이라 불릴 수 있어요. 누구나 영화는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저한테 영화는 일이라기보다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것이에요. 극영화는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모든 걸 컨트롤하는 ‘순간의 예술’이라면, 다큐멘터리는 ‘시간의 예술’이거든요. 영화가 따라가는 시간의 흐름들, 그것들이 주는 울림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매력이자 힘이죠.
2024년 ‘제4회 5.18영화제’에서 그는 다큐멘터리 〈에피소드〉로 대상을 받았다. 〈에피소드〉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맞서 싸웠던 시민군과 계엄군이 한 형제였다는 비극적 실화를 다룬다. 이번 작품 〈졸업앨범 : 선생님을 기다렸다〉와도 묘하게 맞닿아있다. 민주화운동을 꾸준히 조명해온 그는 지금도 광주와 전주를 오가며 5.18과 관련한 취재를 진행하고 있다.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움직임, 인물들을 찾아내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다.
5.18 민주화운동은 떠올리면 무겁고, 복잡하고, 괴롭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 앞에 나왔던 사람들은 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제자고, 형제자매라는 걸 생각해요. 우리는 이런 시각으로 5.18을 비롯한 국가 폭력들을 기억해야 하죠. ‘사람’을 통해 역사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 작업들이 일종의 ‘기억 투쟁’ 같다고 봐요.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고 더 많은 극장에 걸릴 수 있게,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게 투쟁을 계속하는 거죠.
그가 영화 〈졸업앨범 : 선생님을 기다렸다〉의 편집에 막 몰두하려 했던 2024년 겨울, 12월 3일 대한민국에는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서울 작업실에 앉아있던 김 감독의 머리 위로 헬기가 날아다녔다. 그는 편집을 멈추고 광장으로 나가 또다시 취재를 했다. 현실의 상황이 눈앞의 영화보다도 더 중요한 것일 수 있겠다는 두려움. 그는 취재를 계속해나갔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 같던 역사도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음을 우리는 봤다. 이것이 그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스크린 너머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과거의 것이 아닌 현재의 것. 그러니 우리는 함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글·사진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