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6.7월호

주황빛으로 물든 지구, 모두가 마주해야 할 이야기

환경문제 그리는 화가 최만식


최만식 작가



몇 해 전, 남극의 황제펭귄 새끼 1만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얼음이 일찍 녹으며 아직 방수 깃털이 다 자라지 못한 새끼 펭귄들이 익사한 것이다. 황제펭귄은 공식 멸종위기종이다. 그러나 지금의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2100년쯤 진짜 멸종을 맞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슬란드 북서쪽 도심에선 어린 북극곰이 쓰레기통을 뒤지다 사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얼음이 녹아 먼 곳까지 떠내려온 북극곰이 먹이를 찾아 헤맨 것으로 전해진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는 매일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다. 동물들이 맞이한 위기가 곧 지구 전체를 위협할 날이 매일 가까워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습관으로, 누군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작은 실천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작가 최만식은 예술을 자신의 실천 방법으로 택했다. 뜨거운 주황빛으로 뒤덮인 그의 캔버스 안에는 멸종위기에 놓인 극지방 동물들이 산다. 옆에는 어울리지 않는 열대식물들이 함께한다. 이 어색한(?) 공존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그들의 환경(2025)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 ‘자연’ 

지난 5월부터 6월, 완산도서관 전시실에서 작가의 전시가 열렸다. 제목은 〈봄여름가을겨울〉이다. 2020년 코로나19 전후의 삶과 기후위기를 조명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단연 주목되는 작품은 그가 최근 그리고 있는 ‘그들의 환경’ 연작이다. 화면 속에는 온난화로 인한 폭염을 상징하는 주황색 바탕 위로, 사라져가는 생명체들이 공존한다. 극지방과 대륙의 빙하, 열대 지역에서 자생하는 극락조화와 선인장이 등장하고, 북극의 곰과 토끼, 여우, 족제비, 남극의 황제펭귄 등이 한 공간에 배치되어있다. 작가는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모든 생명체가 직면한 생존의 위협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경고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평범한 하늘색으로 바탕을 채웠어요. 그때만 해도 좀 희망적으로 주제를 풀어냈죠.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지구가 더워지는 걸 실감하며 상징적인 주황색을 강조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배경에만 주황색을 칠하고 동물들은 원래의 색 그대로 그렸죠.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동물들의 털까지 주황색으로 덮어서 같은 색채 안에 형체만 강조되도록 그렸어요. 이제는 진짜 멸종이 앞에 와있다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암시하고 싶었거든요.


최근에는 식물 대신 열대과일을 그려 넣으며 또 한 번 변화를 시도했다. 다양한 요소를 더해가며 그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문제의식을 계속해서 세상에 꺼내놓으려 한다. 그가 이러한 주제에 주목한 건 이번 작업이 처음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과 환경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2003년 〈자연·문명 그리고 인간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연 후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나무와 유실수, 십장생 등을 소재로 작업을 해왔다. 비행기와 새가 겹쳐져 하늘을 날고, 배와 거북이가 겹쳐져 바다 위를 건넌다.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사슴이 나란히 놓이기도 한다. 작가는 자연과 문명을 한 화면에 배치하며 자연을 인간의 이용 대상이 아닌 경외와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건넨다. 





제가 자연을 사랑하는 방식은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거예요. 사람의 손이 닿으면 자연은 어떻게든 망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 지점을 늘 생각해요. 작품에서도 동물들의 사체나 가혹한 장면을 연출하면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할 수 있지만 그냥 그들의 있는 그대로를 그려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 색감이 화려하다 보니 처음에는 ‘예쁘다’고 하세요. 그런데 내용을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구온난화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말하죠. 너무 불편하지 않고 적나라하지 않게, 메시지의 반전을 주는 작업이지요.


작가가 그리는 세계는 자연스레 일상과도 닿고 있다. 그는 특별한 환경운동을 펼치거나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예술을 매개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뿐이다. 지난 전시에서는 천 원씩 입장료를 받아 일부를 그린피스에 후원했다. 타던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고 집 옥상에는 태양광을 설치하는 등 아주 소소한 실천도 함께한다. 큰 변화는 결국 이런 사소한 것들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걸 그는 믿는다. 



그들의 환경(2025)




각자의 자리에서 답을 찾는 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미술의 길에 들어선 그는 이제 청년작가에서 중견작가로 가는 길에 서있다. 전주 토박이로 살아온 덕에 지역은 그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역 작가로서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작품 판매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전시 공간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작품 판매를 위한 통로는 여전히 열악하다. 특히,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그의 작품은 판매까지 연결되기가 더 어렵다.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연과 환경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늘 자연의 것들을 그리다 보니 인물을 다룬 적이 많이 없더라고요. 요즘은 인물에 집중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제 관심은 언제나 기후, 환경, 자연 이런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과 연결되는 인물을 주제로 삼지 않을까요? 기후 위기와 관련된 이야기나 나의 이야기를 인물을 통해 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어렵지만요.


다가오는 10월 작가는 새로운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신작 중심으로 전시를 꾸리기 위해 또 부지런히 작업에 몰두해야한다. 그가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그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와는 또 다른 설렘을 띄우며 취미인 캠핑 이야기를 꺼냈다. 당장 지난주에도 지리산 백무동 야영장에 다녀왔다는 그는 10년차 ‘캠핑러’다. 한 달에 한두 번 주기적으로 산과 바다를 찾는다. 우연히 선물 받은 중고 텐트 하나가 계기가 되었다. 자연에 안겨 보내는 하룻밤은 곧 창작의 영감이자 에너지가 되어 돌아온다.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나면 복잡했던 머리도 한결 맑아짐을 느낀다. 작가는 자연에게 받은 이런 선물 같은 순간들을 작품을 통해 조금씩 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그는 그림 속 멸종위기생물들을 직접 마주할 날도 꿈꾼다. 마음만으로 떠나기에는 어려움이 많기에 아직은 먼 꿈이다. 그보다는 마당에 심은 나무를 잘 돌보는 일, 텃밭에 자란 상추와 토마토, 깻잎을 키우는 일이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지구를 생각하는 일에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다. 작가가 일상과 예술에서 답을 찾았듯,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그 작은 일상들이 모이면 지금의 위기도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