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회인 신부
전북대 신정문 옆 빌딩, 이곳에는 특별한 밥집이 있다. 단돈 3천 원에 밥과 김치찌개, 여러 밑반찬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청년식탁 사잇길’이다. 비건 식사도 선택할 수 있다. 신념이 다르거나 몸의 조건이 달라 식사 방식이 다른 사람도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주인장의 의지다. 이곳이 더 특별한 이유는 주인장이 사제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김회인 신부는 사제복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차리며 청년들의 몸과 마음을 배부르게 하고 있다. 그는 오는 9월 청년들과 함께하는 영화제를 연다. 밥을 나누던 식탁에서 영화까지 나누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그래서 사잇길에는 청년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판이 마련돼 있다. 3천 원에 참여할 수 있는 ‘당사백기’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백 가지 기술’이라는 뜻으로, 생활호신술·목조각·다도·프리다이빙 등 다양한 배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성년의 날을 맞아 장미를 선물하거나 임용고시 지원자를 위한 면접 특강을 여는 등 게릴라성 행사도 이어졌다. 그저 쉬어갈 수 있도록 편백숲을 걷는 '청년나길', 전문상담사와 연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있다. 청년들이 밥뿐 아니라 마음까지 배부르게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9월 열리는 영화제도 그 연장선상이다. 청년과 사회를 다룬 다양한 영화를 함께 나누는 ‘영화만찬회’를 꾸준히 이어온 사잇길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9월 3일부터 사흘간 '전북사잇길청년인권영화제'를 연다. 평화와 환경을 포함한 인권을 주제로,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은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다. 영화 상영에 그치지 않고 청년인권포럼과 워크숍도 마련한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의 의제로 발전시키고 향후 정책 제안에 실질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7월 열렸던 전북사잇길청년인권영화제 사전 상영회.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를 상영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김 신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청년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선의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경계가 분명해지면 관계는 수직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사잇길이 ‘급식소’와 같은 이름 대신 ‘식탁’이라는 이름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먹고 이야기하며 관계를 맺는 자리라는 의미를 담았다. 성경에서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않은 존재다. 청년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은 김 신부에게 어쩌면 당연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믿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앞치마를 멘 신부, 영화제를 여는 신부가 그리 놀랍지는 않다. 2010년 사제 서품 이후 줄곧 어려운 이들과 ‘실천’으로 함께해왔기 때문이다. 문규현 신부 등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현장에 관심을 갖게 됐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하며 여러 굵직한 투쟁의 현장에 있었다. 지금도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고 백봉기 농민 추모미사,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미사,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미사,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 등의 기록이 나온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참사를 위로하는 자리에도 함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회운동이나 종교인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는 영화감독을 꿈꿨어요. 그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어찌 보면 이번 영화제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실현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로메로>, <미션> 같은 영화도 재미있게 봤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영화감독을 꿈꿀 형편이 아니었어요. 워낙 가난했거든요. 인문대 쪽으로 갔으면 시인이 됐을 것 같아요. 정말 시 쓰는 걸 좋아했거든요. 지금도 시 쓰고 글 쓰는 걸 좋아합니다.

집안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해서도 바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했다. 앞으로 컴퓨터 관련 분야가 유망하다는 이야기에 관련 학과를 전공했고, 졸업 후 그렇게 돈을 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삶 안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고민이 생겨났다. 돈을 벌며 살아가는 일이 자신이 오래 품어온 삶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신념만으로 선택한 길은 아니에요. 문득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느꼈어요. 내가 생각하고 꿈꿔왔던 것, 살아가는 게 정말 의미가 없는 거예요. 진짜로 없었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제 안에 하나의 믿음이 있었어요. ‘이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온 게 있었거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믿음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게 신부였어요.
돌이켜보면 이런 물음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사람들은 왜 말로는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삶에서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소년원 아이들과 어울렸던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였다. 잘못을 나무라고 손가락질하기보다, 함께 살아갈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했다. 군대에서도 폭력적인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후임들에게 같은 폭력을 되돌려주는 대신 함께 시를 쓰자고 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오래 고민해 왔다.
그 답을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보여준 사람이 문규현 신부였다. 약자와 함께 길 위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은 단순한 존경을 넘어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성당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자신이 바라는 삶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그려갔다. 그런 그의 태도는 지금의 사잇길과 청년인권영화제로 이어지고 있다.
청년식탁 사잇길을 여러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결국 ‘곁으로서 함께하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해요. 사잇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길이라는 뜻이에요. 골목길처럼 서로의 자리가 이어지고, 그 만남을 통해 힘을 얻어 각자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혼자 서 있기에는 버거운 삶 속에서 서로의 곁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