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ㅣ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유형 서점 ‘경원동#’   2024.4월호

책장 한 칸씩 취향과 이야기를 채우다





골목마다 개성 있는 동네책방들이 많아졌다. 언젠가는 내 취향으로 채운 서점을 열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한번쯤 해보지만, 어쩐지 나와는 먼 이야기 같다. 그런데 최근 경원동 원도심 거리에 특별한 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서점의 주인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 공유형 서점 ‘경원동#(샵)’의 이야기다.


63개의 서점, 63개의 이야기 

가로, 세로, 높이 각 40cm의 책장 한 칸 한 칸은 전부 다른 주제와 취향의 책들로 채워져 있다. 모두 주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원동#은 105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책장 중 63개를 개인에게 임대해 63명의 주인이 함께 운영하는 서점이다. 책장주는 소정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개인 소장 도서를 판매하거나, 서점 측을 통해 원하는 책을 매입해 나만의 작은 서점을 꾸민다. 책이 아니어도 괜찮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소품을 판매하는 등 책장을 어떻게 꾸밀지는 주인의 몫이다. 


말랑말랑한 소설부터, 인문학, 디자인, 와인, 매거진까지. 손님은 칸마다 붙어있는 작은 간판을 따라 60여 개의 작은 서점들을 한 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다. 아래에 달려있는 서랍을 열면 책장주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등 소통도 가능하다. 경원동#의 정수경 대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전한다. 기성 작가부터 교수, 활동가, 책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까지 다양한 책장주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은 또 독자들과 만나고, 누구든 이곳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모두 경원동#의 역할이다. 





황새를 쫓아가지 않는 뱁새들을 위해

경원동#의 탄생 비화는 정 대표가 일본여행을 떠났던 때로 돌아간다. 당시 책장을 개개인에게 임대하는 일본의 공유형 서점을 본 그는 책장 임대 시스템을 착안해 그보다 범위를 넓히고, 만남과 소통의 역할을 더해 전주만의 새로운 서점을 만들었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닌 저자를 초대해 북토크를 열고, 독서모임을 갖기도 한다. 


‘경원동#’이라는 이름에는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Shop)의 의미에 다양한 해시태그(#)가 달린다는 의미를 함께 담았다. 여기에 한자 ‘우물 정(井)’의 의미도 숨어있다. 흔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그는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고 싶었다. 황새를 쫓아가지 않는 뱁새가 되자는 생각에, 지역에서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는 뱁새들을 위한 우물이 되자는 나름의 힙한(?) 뜻을 더했다. 





그가 이러한 공간을 고민한 이유는 경원동#의 대표라는 부캐 이전의 본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즐거운 도시연구소’의 대표로도 활동 중인 정수경 씨는 지역에 밀착된 도시정책을 연구하고 도시 관련 콘텐츠를 발굴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서점이 자리한 같은 건물 2층에 사무실을 두고 도시계획가와 연구자, 활동가들과 함께 ‘어반베이스캠프’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과 함께 도시문제들을 고민하고 개선하기 위해 따로 또 같이 활동하고 있다.


경원동# 역시 도시를 즐겁게 만들기 위한 콘텐츠 중 하나다.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공간으로 열심히 키워나갈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처음 책장주 모집공고를 냈을 당시 3~4일 만에 절반이 넘게 자리가 채워질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앞으로 남은 책장들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꾸려나갈 예정이다. 책장 안에 헤드폰을 설치해 음악을 전시하는 등 작은 한 칸이라도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남은 칸에 나만의 서점을 연다면 어떤 주제를 담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경원동샵(#)  @hashtag_gw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현무1길 33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