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삼례집회, 2012
동학농민혁명이 올해로 130주년을 맞았다. 동학농민혁명은 피지배계층인 농민들이 자유, 평등,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며 기득권에 대항한 진정한 혁명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외치며 신분에 높낮이를 나누지 않고 부정부패한 정치권력을 척결하고자 했던 이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날의 외침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물음을 던질 수 있을지, 5월의 전북이 다시 그 의미를 되짚는다.
1984년 5월 11일은 동학농민군이 관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대승을 거둔 황토현전투가 있던 날이다. 정부가 지정한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기도 한 이날을 중심으로 13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정읍 황토현)에서 열린다. <제130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5.11), <제57회 동학농민혁명기념제>(5.11-12)와 함께 <제3차 세계혁명도시 연대회의>(5.9-11)에서는 세계 혁명의 역사를 가진 도시들과 혁명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전주시는 동학농민군이 전주에 입성한 5월 31일 전라감영에서 13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동학농민군은 전주 입성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자치기구라 할 수 있는 집강소를 전라도 각지에 설치했다. 전라감영은 집강소를 총괄하는 대도소가 있던 자리다. 그 뜻깊은 장소에서 기념식과 함께 전주시립예술단이 세계의 혁명음악을 선보인다.
하반기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신순철)의 주최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특별전시>,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 국회 특별 전시>, <동학농민혁명 국제 학술대회> 등이 열린다. 전주시는 <세계혁명예술 국제포럼>을 전주시 완산동의 녹두관과 6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완산도서관 파랑새관에서 진행하여 세계 혁명의 역사를 미술로 재조명한다.
지난 130년 간 동학농민혁명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고자 했던 연구자와 운동가들의 움직임은 끊이질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그 성과가 직접 드러나고 있다. 2019년에는 법정기념일이 제정되었으며, 2022년에는 정읍 황토현전적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문을 열었다. 작년 5월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며 동학농민혁명은 세계사에까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식은 아직도 부족한 상황이다. 모두가 함께 혁명을 기억하고, 더 나아가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할 때다.
정강, 운김(은하), 2024
현재의 우리는 그날의 역사를 또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예술을 통하면 무거운 역사에 다가가는 일도 조금은 쉬워지는 법이다.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대표 한리안)는 이러한 생각에 앞장서 동학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해마다 선보이고 있다. 2022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3년째를 맞은 ‘동학 예술 프로젝트-동학 정신 예술로 태어나다’이다. 4년 전, 전주의 매력에 빠져 이곳에 정착한 한리안 대표는 이 도시와 맞닿아있는 동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인의 철학이 곧 동학이라는 생각으로, 현 시대 예술가들과 함께 그 의미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올해는 동학 13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3월부터 4월 23일까지, 기획전 ‘조율’을 선보였다. 사전적 의미에서 조율이란 다른 음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뜻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연주 중에도 끊임없이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조율은 꼭 필요하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전시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두 명의 청년작가가 함께했다. 작가 김동희는 동학을 ‘각자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틈을 내어주며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여러 형태와 색이 뒤섞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그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어렴풋이 다가온다. 정강 작가는 인간군상을 담은 벌집구조의 철망과 서로 맞물린 육각형의 조형물 등을 선보였다. 각기 다른 도형이 모여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학은 ‘아픔을 함께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느낀 책임이 모여 이룬 물결’이다. 두 사람의 작품세계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해석을 더해 동학의 정신을 되새긴다.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에 입성한 4월 27일을 기념하는 의미로 이날부터는 새로운 전시를 이어간다. 진안 출신의 설치·조각 예술가 송필의 개인전 ‘땅 위의 불꽃’이다. 모든 가치의 최우선으로 ‘생명’을 이야기했던 동학사상에 주목해, 땅 위에 뿌리를 내리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설치작품들을 통해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에서 6월 30일까지 만날 수 있다.
고다인·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