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전북연극제 대상 수상작 <덕이>
제40회 전북연극제는 동시대적 이슈와 정체성을 건드려내 참신한 반향을 드리워낸다. 성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살아온 실제 지역 인물의 형상화,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의 홍수에 휘말린 현대인의 어그러진 풍속도, 이를 다채롭게 형상화시켜 나가는 발상, 더 나아가 초현실 무대 컨셉 및 전통 토속놀이로 우리시대 삶을 무대화하였음은 이번 연극제의 주요 성과라 할 수 있다.
좋은 연극은 상상과 추리를 다채롭게 건드린다. 왜 저들은 친밀함과 즐거움이 과도할까. 화제의 대상 수상작인 극단 하늘의 <덕이>(백성호 작, 조승철 연출,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명인홀)는 창의적인 몸말 놀이 컨셉으로 다채로운 추리와 메타 상상을 유도한다. 위안부로 끌려간 자의 끔찍한 악몽, 아비의 등에 업힌 자, 감추기와 파헤치기가 상상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공연 초입, 아비와 딸의 대화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자가 아비다. 어른처럼 조언 충고하는 자가 딸이다. 왜 그럴까. 왜 이들은 지나치게 밝고 천진할까. 이들 부녀를 살기등등한 눈으로 바라보는 자의 사연은 무얼까. 성난 똥개들과 한바탕 겨룰 자세를 취하려던 아비(고조영 분)가 먼저 도망친다. 똥개들을 응징하겠다며 자리를 지키려 하는 자는 딸이다. 연약한 자가 왜 강한 모습일까. 연극은 반어와 능청 화법으로 추리와 상상 쾌감을 유도한다.
위안부, 죽을병에 걸린 자, 아편 앵속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홍자연 분), 그런데 자유함과 평온함은 왜 일까. 실성과 착란 사이로 무언가가 살짝 드러난다. 섬뜩한 욕설 언어, 눈빛이 달라진다. 막가는 자의 저주가 쏟아진다. 죽은 순이로 인한 자책감과 죄책감, 끔찍한 악몽의 실체는 감추어져 있다. 생략과 줄임으로 연극은 상상과 의아함을 촉발시킨다. 사촌 혈육의 죽음을 막지 못한 자의 가슴앓이, 억누르기와 터트리기가 교차 충돌하면서 상상을 자극한다.
죽은 자를 부르는 덕이, 술래놀이 하자며 화사하게 웃음 짓는다. 딸을 잃은 숙모(서형화 분)의 아픔과 어그러짐이 예측 불허의 순간 터져 나온다. 덕이는 또 다시 망가지고 짓이겨진다. 6ㆍ25 동족상잔의 소용돌이, 따스했던 자가 차가운 밀고자로 변한다. 마을 어르신이란 자(안대원 분)가 원망 저주하는 자로 변한다. 화이트 내면임에도 블랙 캐릭터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가. 숨겨진 이전 사연 탐색을 통해 덕이 중심의 줄다리기가 다채롭고 심도 있게 펼쳐질 필요가 있다.
연극의 힘은 질문의 힘이다. 고발과 복수, 그 주체와 객체가 뒤집힌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가 뒤집힌다. 어둠에 짓눌렸을 때 인간 현존의 존귀함은 어디까지 인가. 강압과 린치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가. 연극은 질문을 던진다. 혈육의 정은 무엇이며 복수심은 또 무엇인가. 관객은 공연장 문을 열고 나가며 문제 이슈를 철학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한다.
연극은 작은 그림에서 큰 그림으로, 근거리 시선에서 원거리 시선으로 관객을 이끌어 들인다. 보복과 살상, 감춤과 파헤치기의 줄다리기가 중앙 사각 무대와 가장자리 무대를 통해 펼쳐진다. 창의적인 무대 분할 디자인을 통해 다채로운 시공 넘나들기와 상상 우주가 펼쳐진다. 가장자리 양쪽 세로 무대로 설정된 도열 이미지, 안대원의 농밀한 몸말 반응 기호가 문제 이슈를 자연스레 입체화시켜 나간다. 아비를 잃은 자의 무너짐, 보복 정서 터트리기와 차단하기, 한 팔, 한 손을 휘두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집단 단말마 외침, 홍자연의 집요한 육체 언어 탐구가 분열과 착란의 아우라를 밀도 있게 유도해낸다.
목가적이며 평화스러운 가족 나눔 에필로그, 아름다운 영혼들만의 도란거림, 진짜 풍경일까. 소망에 불과한 것일까. 아비 등에 업혀 새색시로 노래하는 자, 무대는 경쾌한 익살 놀이 현장으로 변한다. 색시와의 알콩달콩 꿈에 도취된 자, 허둥대며 뒤따라가는 수홍(이중오 분)의 유아 행동이 경쾌한 해방 쾌감을 자아낸다.
고조영과 홍자연의 노련한 몸말 콤비 플레이는 넉살과 능청 놀이 쾌감을 무한대로 유도해낸다. 창의적인 공간 분할 운용 연출 컨셉과 반어 기호로 사유와 상상 우주를 다채롭게 확장시켜 나갔음은 이 연극의 최대 품격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