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소설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을 그려낸 소설 ‘문신’. 이 이야기는 첫 문장이 쓰인 이후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결말을 맺었다. 기나긴 여정을 지나온 주인공은 한국 문단의 거장인 소설가 윤흥길 선생이다. 원고지 6500매, 다섯 권의 묵직한 책으로 이어지는 ‘문신’은 집필 과정만큼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대하소설이 사랑받던 시대가 저물고 짧고 쉬운 이야기들을 찾는 시대에 긴 호흡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 ‘문신’은 문학사에 큰 의미를 남겼다.
지난 5월 10일, 그 의미를 함께 나누기 위한 자리가 열렸다. 완주 오스갤러리에서 열린 ‘윤흥길 대하소설 <문신> 완간 출판기념회’다. 안도현 시인의 진행으로, 김용택, 김영춘, 소재호 시인 등 반가운 후배 문인들이 자리를 빼곡히 채웠다. 작가 스스로도 필생의 역작이라 부르는 이번 작품에 대해 이들은 각자의 표현으로 찬사를 보냈다.
시인 김용택은 자신의 시 한 구절을 빌렸다. ‘민달팽이에게 도달은 의미가 없다. 삶은 도중에 있다’는 시와 같이 윤흥길 선생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는 도중에 있길, 낭만적인 응원을 보냈다. 황지호 작가는 소설의 일부를 낭독하며 소감을 전했다. “처음 보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며 읽다보니 980개의 단어에 동그라미가 쳐졌습니다. 저에게 이만큼 선물 같은 책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문신’이 지닌 또 하나의 가치를 이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인 전라도 지역의 맛깔스러운 방언과 해학적인 표현을 통해 문신은 ‘우리말의 무한한 보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 거대한 이야기를 마치기까지 여러 고비를 겪었다. 건강이 악화되며 소설을 끝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로지 작품에 매달리며 완간을 이루어냈다. 기념회에 자리한 한 작가는 말했다. “최고의 축복은 문신의 정신을 많은 이들이 나눠 갖는 것”이라고. 그의 삶과 문장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을 어렴풋이 찾아보길 바란다.
윤흥길 작가는 정읍 출신으로,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 면류관의 계절’로 등단하며 ‘완장’, ‘장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 한국 문단에 많은 걸작을 남겼다. 초중등 교사와 대학교수를 지낸 작가는 정년퇴직 후 완주에 자리를 잡으며 이곳에서 10여 년 동안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