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회 마당기행 | 지역의 오래된 이야기, 도시브랜드가 되다 ② 청양·홍성  2024.7월호

도시 청년, 시골에서 살아남기


청춘거리



청년이 서울로 떠나서, 청년이 결혼을 안 해서, 청년이 아이를 낳지 않아서. 많은 학계와 언론이 지역소멸의 책임과 해결책을 '청년'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역은 일자리와 기본적인 교통, 교육,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 현실이 이러하니 의지나 가치관만으로 지역을 선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수도권으로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만을 탓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이 직접적이거나 단순한 경비(현금성) 지원에 한정되어 있어 지역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6월 마당 도시기행은 청년들의 이러한 현실을 주목했다. 기행에서 만난 청양과 홍성의 청년들은 이러한 현실의 벽과 맞서 싸우며 '서울로 가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 있었다.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이용하여 콘텐츠를 개발하고, 창업을 통해 돈을 벌며 지역살이를 계속하는 사람들. 청양은 군의 사업을 통해 조성된 청춘거리에 모인 청년창업가들이 한적했던 그 거리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홍성 또한 군의 지원으로 창업에 성공한 청년들이 그들만의 공동체를 결성하여 지역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청년과 지역의 관계는 한쪽의 일방적인 지원이나 시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도시에서 ‘번아웃’을 경험하고 지역으로 내려 오는 청년들에게 지역은 새로운 보람과 성장을 느낄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청년들이 모이는 지역은 건강한 공동체 문화가 새로운 숨결로 다시 싹트고 있다. 




청양


청년들에게서 발견하는 희망 <청춘거리>

청양군은 충청남도의 15개 시·군 중 인구가 가장 적다. 간신히 3만 명을 유지하고 있던 인구수는 2024년 4월을 기점으로 2만 명대로 무너졌다. 군은 인구 증가를 위해 기초단체 최초로 연 60만 원의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청년 연령 기준을 45세로 완화하는 등 청년 인구 유입을 위한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청춘거리는 청양군 청년 정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공간이다. 청년들과 지역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체가 모여들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플리마켓과 공연 등 지역민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도 열린다. 과거에는 청양의 시내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옛 버스터미널과 대합실, 국일여관, 청양문화관, 청양우체국 등 청양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거리다. 이 공간의 시작을 함께했던 청양사람협동조합 홍성혁 대표로부터 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 창업 실험 공간 <누구나가게>

'누구나가게'라는 간판이 크게 붙어있는 이곳은 창업을 꿈꾸는 청양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다. 6개월간 창업 아이템을 실험해 본 뒤 실제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공간과 공공요금 등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업자 등록과 같은 행정 절차까지 창업에 필요한 전 과정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


사진 스튜디오, 케이크 가게, 라멘 가게 등 14곳의 누구나가게가 운영되었으며, 이곳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6곳이 지역 내 창업에 성공했다. 현재는 리조또와 파스타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 '앙꼬냥'이 운영 중이었다. 건물 2층에는 주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 ‘사랑방’이 있다. 최근에는 기간을 늘려 최대 1년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라고 하며, 블루쉽하우스 1층의 '블루쉽점', 정산면의 '정산점'까지 지점이 확대되었다.




음악다방



옛 음악의 청취를 느낄 수 있는 <음악다방>

청춘거리 한가운데, 시간이 멈춘 듯 레트로한 다방이 있다. 과거 청양의 버스터미널과 대합실을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리모델링한 '음악다방'이다. 벽면에 빼곡히 덮은 LP판, 추억의 DJ 부스와 함께 청양읍의 옛 사진, 1970년대 청양문화원에서 영화를 상영하던 영사기 등 청양의 근현대 물건들이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름은 다방이지만 음료를 판매하고 있지는 않고, 대신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먹거리를 들고 와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청춘극장>

오래된 교회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공연장이다. 공유 공간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게 인근 공동체가 돌아가며 조화롭게 사용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공연장 내부에 싱크대가 있다는 것.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자주 이루어지는 공연장 특성상 아이들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씽크대를 설치했으며, 가끔은 마을 공동체를 위한 파티(?)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카페 <빈관>

1914년부터 1970년대 말까지 운영되었던 역사 깊은 여관인 옛 국일여관 자리에 있는 카페이다. 특이하게 IT기술을 활용하여 지역 사회에서 가치 있는 일을 실현하고자 하는 청년협동조합 '수상한 괴짜들'이 운영하고 있다. 청양의 특산물인 맥문동을 활용한 식빵 등 직접 구운 특별한 빵을 만날 수 있다. 한쪽에는 감성적인 카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김' 박스들이 놓여 있는데, 정체는 청양사람협동조합이 개발한 '고추김'이다. 이와 같이 지역의 소상공인들과 활발하게 협업하며 청양의 특산품을 종종 팝업의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지역에서 공유경제를 실현하자는 목표로 카페 현관 옆 이웃 간 음식 나눔을 할 수 있는 '공유냉장고'도 설치해 두었다.











청양사람협동조합 고추김(왼쪽)과 홍성혁 대표



청양만의 특별한 빵이 있는 <찰리와 고추빵 공장>

청춘거리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베이커리 카페이다. 2021년 청년마을 '청맛동' 사업을 통해 청양과 관계를 맺게 된 청년들이 정착하여 만들었으며, 누구나가게를 거쳐 창업했다. 청양의 특산물인 청양고추를 이용해 만든 '고추빵'을 판매하며 직접 디자인한 청양 관련 굿즈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이외에도 1980년대까지 청양 문화의 중심이었던 청양문화원을 복원한 '문화춘추관', 일자리정보센터와 청년 셰어하우스가 있는 '블루쉽하우스', 캠핑용품, 의류관리기, 게임기 등 다양한 물품을 저렴하게 대여해 사용할 수 있는 '물품공유센터' 등이 있다.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이 많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노후화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거리의 고유한 역사성은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보여 아쉬움이 남았다.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군의 촘촘하고 장기적인 사업 계획이 필요해 보인다.


제품이 아닌 '문화'를 팔자 <청양사람협동조합>

'청춘거리'라는 이름이 붙기도 전, 먼저 이곳에 들어와 활동했던 지역의 청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청양사람협동조합'의 홍성혁 대표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연극을 전공한 그는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으나 마음 한편에는 항상 '가치있는 삶'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마침 청양의 작은 마을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연극을 지도해달라는 부탁을 해왔고, 이를 계기로 청양으로 내려와 정착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역에서 문화 기획자로 일했다.


청양사람협동조합은 홍 대표가 지역 청년들과 지역의 IT기업을 꿈꾸며 만든 단체다. 문화와 경제, 경영을 전공한 세 사람이 모여 청양의 '소프트웨어' 인프라에 주목했다. 기본적인 배달 어플 서비스 같은 것조차 사용하기 힘든 시골의 인프라는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 요즘 청년들에게 큰 장벽이었다. 이를 위해 청춘거리의 다양한 공간들을 편리하게 예약할 수 있는 '똑똑똑 플랫폼', 직접 조사한 청양의 맛집을 소개하고 배달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청양맛집' 어플을 개발해 배포했다.


이후에는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사업에 선정되며 '청맛동(청양의 맛있는 동네)' 프로젝트를 통해 하드웨어 구축에도 힘썼다. 전국의 청년들과 모여 '한 달 창업'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낡은 건물들을 개보수하여 '비봉방앗간', '청양다방', '화성양조장', '운곡한약방' 등 특색있는 가게들을 열었다. 하지만 창업에 필요한 기반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대부분의 가게가 정리되었지만, 거리에 소중한 자산을 남겼다. 바로 이를 계기로 관계를 맺게된 청년들이 지역에 남아 정착한 것. 앞서 소개한 카페 '빈관'과 베이커리 '찰리와 고추빵 공장'을 운영하는 청년들이 대표적이다.


"청춘거리를 거점으로 많은 사업들이 진행됐지만, 이게 실질적으로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자칫하면 지자체의 홍보 수단으로 끝날 수도 있는 부분들이거든요. 여기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도시 계획이라는 건 장기적으로 기획해야 하고, 감수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홍 대표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며, 결국 '문화' 또한 수익성이 없으면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에는 식품 제조업에 눈을 돌려 청양 '고추김'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서해바다에서 생산된 원초에 청양의 고춧가루를 더하고, 청양장애인재활근로센터에서 제조하는 특별한 김이다. 마침 카페 빈관에서 팝업스토어가 진행되고 있어 구매해 보았는데, 매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두드러졌다. 최근 공중파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끄는 등 성과를 보이고 있다.





홍성




창업을 꿈꾸는 공간 <잇슈창고>

농촌에는 쓰임을 다한 농협창고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홍성군의 잇슈창고도 그중 하나다. 잇슈창고가 더 특별한 것은 '청년 창업'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공간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홍성에 살고 있는, 또는 살 예정인 만 39세 이하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창업을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22년부터 매년 7개의 청년 창업 기업들이 입주하고 있는데 모두 홍성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만든 제품을 판매한다. 사무실 제공과 더불어 시제품 제작비 지원, 맞춤형 창업 지원과 멘토링, 벤치마킹 견학 등을 지원받는다. 작년 7월 말 기준 7개의 입주기업이 누적 매출 5억 원을 달성하며 충남 지역 청년 창업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건물 안의 대형 카페와 작은 어린이도서관 등이 있어 일반 홍성 군민들도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마당이 방문한 날의 다음 날도 지역 밴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공연 외에도 영화 상영회, 플리마켓, 농부시장 등 지역민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행사가 있을 때면 건물 내의 공유 주방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잇슈창고의 기업들은 때로는 느슨하고, 때로는 단단한 연대로 서로의 동료가 되어준다. 일례로 작년 입주기업인 '초록코끼리', '레이럴', '채소생활', '와우네'는 함께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에 공모하여 로컬 스타트업 빌리지 '집단지성'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이들은 모두 잇슈창고에서 독립하여 본인들만의 특별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집단지성'의 구성원으로서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잇슈창고




로컬 스타트업 빌리지 <집단지성>

집단지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당의 마지막 걸음이 홍동면 인월리의 작은 마을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시골 동네 한 가운데,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사무실에 멈춰서자 밝은 미소를 띤 청년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곳에서 집단지성을 이끄는 '초록코끼리'의 김정아 팀장에게 홍성 정착과 창업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초록코끼리는 김만이, 김정아 부부가 만든 로컬 밀키트 회사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농경제를 전공한 김만이 대표는 졸업 이후 관련 연구원과 농업, 농촌 컨설팅 기관에서 일했다. 이후 2020년 홍성에 귀촌하며 본격적인 창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밀키트를 개발하여 판매했으며, 비수도권 로컬 푸드 새벽 배송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해 이어 나갔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지? 자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서인가? 이런 고민이 계속 되풀이됐어요. 결론은 항상 '창업을 하자'였고요. 마침 남편인 김만이 대표가 농촌 컨설팅 회사에 다닐 때 청양 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맡게 되었어요. 그때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야시장도 만들고, 공간도 꾸미며 농촌에서도 이렇게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함께해 줄 파트너들이 필요했고, 그때 만난 것이 잇슈창고의 동료 기업들과 청년마을 사업이다. '로컬 스타트업 빌리지'를 표방하며 선정된 청년마을 사업을 통해 전국의 청년들을 홍성으로 모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집단지성에서 함께 로컬 창업을 실험했으며, 소수는 홍성에 남아 이들의 든든한 파트너로 합류했다.


작년이 로컬 스타트업 빌리지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한 해 였다면, 올해는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기기 위해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기존의 홍동면 사무실은 전국 최초로 유기농업특구로 지정된 홍성의 특성을 살려 셰프들을 위한 레지던시를 운영할 예정이다. 일명 '테스트키친'이다. 기존 집단지성 구성원들은 홍성읍으로 발을 옮겨 홍성만의 특별한 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독립서점부터 소세지펍, '레이럴'의 쇼룸 등 다양한 공간들이 들어서는 중이다.



홍성로컬매거진 전시_사진 집단지성



"작년에 '글로벌바베큐페스티벌'이 홍성에서 굉장히 '핫'했거든요. 그 행사장이 저희가 조성 중인 거리와 가까워요. '축제는 일단 즐겼는데, 이제 어디를 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래서 거리도 축제 시작 전 조성을 끝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집단지성 구성원 사이에는 약속이 있다. 의무적으로 한 달에 한 번 행사를 진행하는 것. 예를 들어 영화감독이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는 독립서점의 주인장은 마을의 아이들과 영화를 찍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에 따른 비용은 집단지성이 지원한다. 현재 8개의 기업(초록코끼리, 사대삼 십육대구, 코워키, 레이럴, 튜베어, 라킹진도, 산노을, 채소생활)이 함께 하고 있고, 앞으로 합류할 기업들도 있으니 한 달에 10개가 넘는 행사가 열리는 셈이다. 이들이 만들어갈 홍성의 특별한 브랜드 거리가 기대된다.   


청년들의 도전은 아직 '과정'의 단계에 있기에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전략적인 브랜딩과 수익 구조 확보를 통해 가능성을 보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이번 기행에서 만난 청양과 홍성 청년들의 의미 있는 도전을 응원한다.




 류나윤 기자 ㅣ 사진 김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