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화두가 되는 문화이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는 <2024 비평의 숲>. K-콘텐츠를 주제로 한 첫 포럼에 이어 두 번째로 주목한 주제는 지역, 그리고 청년이다. 지방소멸 시대, 청년들은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지만 여전히 작은 동네와 마을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이 지역 안에서 찾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청년 문화기획자, 지역을 바꾸다’를 주제로 한 이번 자리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문화로서 지역을 변화시키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제 | 청년 문화기획자, 지역을 바꾸다
일시 | 2024년 7월 17일(수) 오후 2시
장소 |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
발제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하는 방법
조혁민 두루미책방 대표
인구가 5만 정도 되는 작은 지역 금산. 이곳의 몇몇 청년들은 지역살이를 원하는 사람들과 모여 네트워크 모임을 만들었다. 2015년 처음 출발한 ‘들락날락 커뮤니티’다. 이들은 지역에서 청년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했다. 직접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세 가지 키워드가 나왔다. ‘배움’, ‘주거’, ‘네트워크’다. 청년들은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의 폭넓은 배움을 필요로 했고, 최소한의 살아갈 집이 필요했다. 함께할 친구와 공동체도 원했다. ‘이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지역에서도 살아볼만하지 않을까?’ 들락날락은 이 물음에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청년자립학교 아랑곳’이 있다. 청년들이 배우고 싶은 주제를 모아 그에 맞는 강사를 섭외하며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 과정을 통해 청년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며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동시에 게스트하우스와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며 주거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마련해나갔다.
모든 활동들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내가 혼자가 아니다’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가 되면 20명 중 절반이 넘는 청년들이 각자의 지역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때부터 ‘밥벌이’에 대한 문제가 고민으로 떠올랐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2018년 들락날락 커뮤니티는 ‘들락날락 협동조합’으로 발전해 활동 반경을 넓혔다.
국제회관 공사 당시 모습(왼쪽)과 공사 후 내부
첫 사업은 지역 주민과 가까이에서 만나고 소통하는 것에 집중해 전통시장 프리마켓을 열었다. 이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금산의 대표축제인 인삼축제에 참여해 청소년과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기도 했다. 창업과 관련해서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방법부터 실제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세심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진행했다.
조혁민 대표도 들락날락 활동과 더불어 나름의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9년 당시 청년몰 안에 8평 남짓의 작은 책방 ‘두루미책방’을 열어 운영 중이다. 금산에서 작은 독립출판물이나 페미니즘 도서 등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이곳 두루미책방뿐이다. 책방이 생기기 전에는 많은 주민들이 오프라인에서 책을 구매하기 위해 근처의 대전까지 가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청년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매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한다. 글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읽는 즐거움을 나눈다.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작가들과 만나는 북토크 프로그램까지. 대도시를 가지 않고도 지역에서 충분히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2021년, 두루미책방은 더욱 넓은 네트워크를 이루기 위해 이사를 계획했다. 두 발로 금산을 직접 걷고 돌아보며 지금의 국제회관 건물을 만났다. 한때 유행했던 ‘DIY(Do It Yourself)’가 아닌 ‘DIT(Do It Together)’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주민들과 함께 오랜 시간 방치된 옛 상가를 고쳐나갔다. 단순히 돈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만든 공간’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이 공간을 아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국제회관은 금산을 대표하는 로컬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두루미책방 역시 국제회관 속에 자리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혁민 대표는 지역에서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전한다. 실험의 끝은 아무도 모르지만 계속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며 더 다양한 가치들을 지역에 정착시키겠다고. 그는 여전히 지역에서 혁명을 꿈꾸고 있다.
토론
일자리는 없지만 일거리는 많다
김애림 로잇스페이스 대표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익산이 고향이에요. 대학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덕에 도시재생이나 마을재생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지역에 일자리는 없다고 하는데 ‘일거리’는 되게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졸업 후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나의 일거리들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고향이 아닐 이유가 없었어요. 저는 ‘동네도 둘러보면 여행이 된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주변 동네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항상 여행자의 마음으로 ‘우리 도시에는 뭐가 없겠지’라는 생각보다는 ‘찾아보면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져요. ‘찾아봐도 없으면 내가 만들자!’는 마음으로 활동하다보니 지역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레 커졌죠.
저 역시 ‘그래서 밥벌이는 가능한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저희는 대부분 용역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어요. 올해는 지원사업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수익을 내보자는 목표를 세웠는데요. 다행히 내부적인 수입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지원사업에는 많은 교육과 제출 서류들이 수반되기 때문에 거기에 에너지를 많이 쏟거든요. 앞으로는 그런 것들을 덜어내고 진짜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사실 지역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청년들은 각자의 핵심 키워드를 하나씩 가지고 있잖아요. 그것들을 부지런히 갈고닦다보면 자연스레 수익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도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행복하기 위해서 어떤 빈틈을 또 메울 수 있을까 계속해서 고민해야할 것 같습니다.
로잇스페이스가 기획한 동네 문화기획 프로그램
‘함께’ 터뜨리는 문화적 시너지
권세나 조용한흥분색 대표
저는 책을 열심히 팔아서 수익을 만들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실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늘 이야기해요. ‘책 팔아서 부자가 되고 싶다’고요. 주변에서는 다들 안 될 거라고 말하지만 문화공간으로서 서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아직까지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중입니다. ‘조용한흥분색’은 2019년부터 운영해 왔는데요. 그때만 해도 독립출판 문화가 생소했고 지역에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최대한 작가들과 가까이에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 위주로 기획을 해왔죠.
여기서 생기는 고민이 있는데요. 대부분 외부 작가들과 일을 함께하기 때문에 지역 안에서 같이 협업해나갈 사람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이에요. 군산에서도 청년 단체들이 모여 프리마켓 같은 행사를 열 때가 있는데요. 이런 기회가 있더라도 그들에게 보여지는 저는 서울의 작가들과 일하는, 지역에서 무언가 함께하기에는 어색한, 이런 인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 부분들을 극복하고 싶어서 작년부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어떻게 만나고 일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인데요. 예를 들어 제가 어떤 기획을 하면, 누군가는 그걸 디자인으로 풀어내고 다른 누군가는 영상작업을 함께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하나의 기획을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모여서 더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보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책방을 혼자 운영하다보니 여전히 이런 부분이 부족한데요. 앞으로는 다른 기획자들과 네트워크를 좀 형성해서 지역 주민들이 더 많은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종이책 읽는 시간 포스터(왼쪽)와 조용한흥분색
공동체를 만드는 공간의 중요성
유상훈 프리단길·청연 대표
공동체를 형성하는 부분에 있어서 저는 공간의 중요성을 많이 느낍니다. 초창기에는 건물 하나를 임대해서 방마다 여러 팀들이 함께 지내기도 했어요. 문화 기획하는 친구, 공연 만드는 친구, 디자인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다 보니까 축제 하나가 있으면 그 안에서 함께 기획이 가능했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연대가 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같은 공간에 있으면 당연히 소통도 잘되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도 새로운 축제를 기획할 때마다 그때 함께 있던 그룹들과 협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첫째로는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스무 살까지 경기도에 오래 살다가 아버지 고향을 따라서 전주로 오게 됐는데요. 전주에 살며 느끼는 매력 중 하나는 콘텐츠가 정말 다양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꿈이 있다면, 다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전주를 대표하는 축제를 만드는 겁니다. 금산하면 인삼축제가 딱 떠오르는 것처럼 전주하면 어느 지역 사람이든 딱 떠올릴 수 있는 대표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2019 청춘문화그리기 문화공연(위), 2024 전주단오 행사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은주 사단법인 아이엠 대표
2012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아이엠’은 “음악으로 하나 되는 세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어요.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행사, 청소년을 위한 앨범 제작 프로젝트, 연습이나 창작이 가능한 공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주티켓박스를 통해 홍보 플랫폼을 진행하면서 지역에서 원스톱으로 공연과 문화예술 행사가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데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동하다보니 생기는 고민도 있습니다. 내가 아이엠을 통해 무얼 하고 싶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요즘은 저희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음악인들이 뭉칠 수 있는 체육대회를 열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기존에 열었던 음악축제에 새로운 색깔을 입혀서 부활시켜보자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요. 그 전에 저 개인을 좀 되돌아보려고 해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명확해야 지역에서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지역 기반 엔터테인먼트를 만드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지역에는 정말 많은 아티스트들이 있거든요. 매니지먼트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내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은 그런 부분을 개선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청춘마이크
조혁민 두루미책방 대표
충남 금산에 터를 잡고 문화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의 이사로, ‘청년', '지역', '문화예술'을 키워드로 삼아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하는 청년 공동체를 표방한다.
김애림 로잇스페이스 대표
전통시장 전문 로컬매거진 ‘비마이크(Be mike)’를 발행하며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간이자 ‘우리 도시 제품 상점’의 역할을 하는 공간을 익산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다
권세나 조용한흥분색 대표
군산에서 도서문화공간을 운영하며 독립출판 북페어, 문학상 공모전, 도서 관련 전시 등을 기획. 시민을 대상으로 한 독립출판학교를 운영하는 등 지역의 도서문화를 풍성하게 이끌고 있다.
유상훈 프리단길·청연 대표
전주 청년 플리마켓단 ‘프리단길’과 문화행사 기획 단체 ‘청연’의 대표로, 청춘을 연구하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 지역의 색다른 길거리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이은주 사단법인 아이엠 대표
창의적인 예술인 발굴과 지원, 지역의 공연문화와 대중예술 발전을 위한 행사 개최, 다양한 장르 및 지역 간의 인프라 확대 등 예술로서 사회를 바라보며 다양한 문화예술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