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리뷰ㅣ8.14-8.18   2024.8월호

전주의 여름, ‘판’이 열린다 


천하제일 탈공작소 '니나내나 니나노'



올해도 어김없이 전주는 '판'이 되고, 신명나는 흥과 멋의 소리로 가득 찬다. 제23회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이왕준, 이하 소리축제)가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한옥마을 일대를 무대로 펼쳐진다. 올해 소리축제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여름으로 개최 시기를 옮기고 열흘간 열리던 축제 기간 또한 다시 닷새로 돌아왔다. 새로운 변화와 확장을 시도하며 내세운 올해의 키워드는 '로컬 프리즘: 시선의 확장'. 프리즘이 빛을 분산하는 것처럼 전북 예술을 동시대 예술로 확장한다는 취지다. 이를 보여주기 위한 무대로 '판'소리와 '판'굿이 준비 중이다. 소리로 물들 닷새 간의 여정을 만난다.



무대 위에서 발견하는 로컬

개막작인 <잡색X>(연출 적극)부터 지역을 내세운다. 전북 전통예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농악. '잡색'은 농악에 등장하는 일종의 배우와 같다. 악기잽이와 더불어 농악판을 이끌어나가는 주역인 잡색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연극적인 형식으로 풀어낸다. 임실필봉농악을 중심으로 사전 모집된 전라북도민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민중을 표현한다. 개막 다음 날 관객과의 대화가 포함된 앙코르 무대를 진행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폐막에서도 전북을 만난다. 90년대 방영된 TV 프로그램 ‘KBS빅쇼’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조상현&신영희의 빅쇼>(연출 이왕수)는 두 국창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온 소리꾼으로서의 삶을 조명한다. 특별히 전북 지역에서 활동하는 실력 있는 소리꾼 10명이 함께 무대에 올라 국창들이 치열하게 걸어온 소리길을 다음 세대의 국악인들에게 넘겨주는 상징적인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풍물굿열전 '고창농악'



<풍물굿열전>에서는 전북 농악의 판굿을 즐길 수 있다. 호남우도(이리농악, 고창농악), 전라좌도(진안중평굿), 백중놀이(전주기접놀이)를 비롯해 영동지역의 강릉농악까지. 축제가 열리는 닷새간 매일 모악광장에서 신명나는 굿판을 벌인다. 전주기접놀이는 특별히 일본 이시카와현의 사자춤을 계승하고 있는 보존회 '타케베 시시마이'와 함께 한·일 합작 무대를 꾸린다. 


지역 전통예술에 대한 연구도 함께다. 소리축제는 올해 학술포럼을 신설했다. 한국풍물굿학회, 무용역사기록학회, 판소리학회, 한국민요학회, 무형문화연구원이 전주를 찾는다. 각각 '전북의 농악-농악 전승 담론과 현실', '전북의 춤-전북지역 무용진흥을 위한 정책 담론 모색', '전북의 판소리', '전북의 민요-전북 민요 연구의 현황과 미래'를 주제로 전북 예술의 현황을 살핀다. 


세대를 아우르는 전통의 결

소리축제를 대표하는 브랜드 공연 <판소리 다섯바탕>은 올해 다양한 세대의 소리꾼으로 구성됐다. 국창 김영자의 ‘심청가’를 비롯해 중견 명창 왕기석의 ‘수궁가’, 채수정 ‘흥보가’, 이자람 ‘적벽가’, 라이징스타 박가빈의 ‘춘향가’까지 축제 기간 매일 명인홀에서 이어진다. 개성 넘치는 젊은 소리꾼들의 <청춘예찬 젊은판소리>는 전라감영에서 15일부터 이틀간 김송지(수궁가), 조정규(심청가), 강현영(춘향가), 이정인(흥보가), 박수범(적벽가)으로 이어진다. 


또다른 브랜드공연인 <산조의 밤>에서는 지성자, 정회천 두 가야금 명인이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와 최옥산제 함동정월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한다. 정적이면서 발랄하고, 애절하면서도 웅장한 울림을 지닌 산조의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전주의 아침> 중 '시대가 전하는 춤 이야기'에서는 조선 후기 궁중에서 행해졌던 정재춤과 권번춤을 만난다. 정재춤에서 가장 많은 춤사위를 가지고 있는 춘앵무와 궁중 검무를, 권번의 가장 대표적인 시나위 연주와 수건춤을 함께 선보인다. 전통의 결을 잇는 판소리, 산조, 한국무용으로 깊이있는 예술성을 만나보자.




음악극 '적로' 



오늘의 전통을 우리의 미래로 

전통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미래로 나아가는 것. 소리축제에서는 '소리프론티어'가 그 역할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젊은 국악인들의 실험적인 무대를 엿볼 수 있는 '소리프론티어'는 올해 전주MBC와 공동 기획해 <소리프론티어X소리의탄생2>라는 제목의 경연 형식으로 바뀌었다. 본선에 오른 '추리밴드', '국악 이상', '삼산'이 14일부터 하루씩 야외공연장에서 공연을 펼친다. 17일은 결승 무대로, 전문가와 관객 심사를 통해 1등을 선정한다. 1등에게는 JB소리상과 함께 상금 1천 만원이 수여된다.


탈춤과 음악극에서도 젊은 연주자들의 행보가 이어진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니나내나 니나노>로 전주를 찾는다. 공중 퍼포먼스 단체 ‘프로젝트 날다’와 탈춤과 음악, 대형 크레인을 활용한 공중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음악극 <적로-이슬의 노래>는 일제강점기 대금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 두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전통 음악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대금 연주자 박명규가 박종기 집안의 음악 계보를 잇고 있는 후손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소리프론티어 '추리밴드'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공연들도 눈에 띈다. 김나리의 정가, 전형호의 바로크 리코더가 <전주의 아침>으로 만났다. 서양 바로크 시대의 음악부터 조선시대 풍류방 노래까지 시대와 장소를 잇는 연주를 전라감영에서 선보인다. <강은일 해금플러스>에서는 창의적이고 개성있는 해금 연주가 강은일이 피리, 타악, 피아노의 선율과 조우한다. <폴란드 포커스>에서는 폴란드의 남성현악 5중주 ‘볼로시’와 경기민요 소리꾼 ‘채수현’이 만나 이색적인 콜라보 무대를 펼친다. 호남오페라단이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선보이는 <녹두>는 서양의 오페라에 창극의 도창과 태평소, 피리, 꽹과리 등 국악 오케스트라가 더해진다. 이외에도 밴드 '글렌체크'와 디제이 '타이거디스코'의 만남, 한국적 레게음악을 보여주는 '윈디시티'와 뽕짝 '이박사'의 만남 등 각기 다른 장르를 하는 음악가들의 콜라보 무대로 동시대 음악씬을 살핀다. 


여름 축제로의 변화 

전북을 대표하는 가을축제였던 소리축제는 올해 여름으로 시기를 옮겼다. 축제의 완성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 조직위의 설명이나, 공론화 과정이 없이 갑작스럽게 변경되어 지역 문화예술계의 많은 걱정이 있었다. 폭염과 장마, 해충 등 안전 상 우려되는 부분도 크다. 조직위는 미스트 분사기와 그늘막, 냉풍기 등을 설치하는 대책을 세워 대비하고 있다. 또한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은 실내 공연장에, 대중적인 공연들은 저녁 시간 야외공연장에서 공연된다. 축제의 개최 시기는 곧 축제의 정체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여름의 소리축제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