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가을과 함께 본격적인 축제의 계절이 다가왔다. ‘2024 비평의 숲’ 세 번째 포럼에서는 ‘지역’, 그리고 ‘축제’를 주목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 대부분은 지자체 주관으로 많은 예산을 투입한 결과물이다. 지역의 정체성이나 예술성 보다는 경제 효과에 따라 축제의 수명이 결정되는 현실. 그 속에서도 민간 주도의 자생적인 축제들이 생겨나고 지속되는 일은 지역 문화 생태계를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자신들만의 ‘축제’를 만들며 지역의 크고 작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분야별 축제 기획자의 목소리로 축제의 뒷면을 들여다봤다.
주제 | 지역에서 ‘우리’의 축제를 만든다는 것
일시 | 2024년 9월 11일(수) 오후 2시
장소 |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
토론
ㅣ‘우리’가 만드는 축제
김현정
저는 올해로 12년째 디자인에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문화예술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지는 9년 정도 됐는데요. 처음에는 지원사업을 통해 ‘에보 미디어 레지던시’를 운영하면서 오랜 시간 많은 작가님들을 알게 됐죠. 작가들이 1년 동안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확장된 활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차원에서 2022년, 작가 미술 장터의 개념으로 ‘고택 아트 페스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참여 작가는 공모를 통해 선정하는데요. 작년에는 모집이 잘 안되어서 일일이 섭외 전화를 해가며 인원을 채웠지만 올해는 40명을 뽑는데 200명이 넘게 지원을 했어요. 저희는 특히 작가 네트워킹에 많이 집중하고 있는데요. 방문객이 얼마나 왔는가도 중요하지만, 참여하는 작가들이 먼저 즐겁고, 교류가 잘 되어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홍예림
고창은 복분자나 수박, 장어와 같은 특산물과 관련된 축제는 많은데 문화 콘텐츠를 다루는 축제는 거의 없어요. 고창농악보존회는 얼마 전 열린 ‘고창농악 꽃대림 축제’를 비롯해 여러 문화 축제들을 만들고 있는데요. 보존회에서 축제의 개념으로 처음 시작한 건 ‘고창굿 한마당’이에요. 고창농악을 알리기 위해 지역뿐 아니라 서울에서 굿판을 열며 진행한 축제인데요. 시대가 변하면서 프로그램 구성에도 변화가 필요했고, 행정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후발 주자로 생겨난 것이 꽃대림 축제입니다. 인문학 토론과 공연, 고창 음악을 소재로 만든 독립영화도 상영하고, 연희마당을 통해 다양한 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상현
저는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이라 ‘축제’라고 표현하기가 어색한데요. 10여 년 전부터 ‘스테이 풀리시(stay foolish)’라는 작은 축제를 만들어서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스테이 풀리쉬의 취지는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재미를 찾아 참여하는 거예요. 예술가들이 평소 지원 사업과 같은 제한적인 현실 때문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1년에 한번은 하고 싶은 걸 모여서 해보자는 마음에 시작을 했습니다.
첫 회에는 200여 명의 미술 작가와 50여 팀의 뮤지션이 모여서 공연을 했어요. 그런데 따로 섭외는 하지 않아요. 축제 소식을 SNS에 올리면 자발적으로 연락이 오면서 축제가 만들어지는 거죠. 스스로가 ‘재밌게 놀다 갈 거야’하는 마음으로 모이는 게 곧 ‘축제’인 것 같습니다.
김춘학
세 분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의 축제’란 주제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게 군산시간여행축제였던 것 같아요. 관 주도로 진행하다 보니 방문객 수부터 하나하나 평가대상이 되거든요. 2021년 군산시간여행축제 추진위원회가 되고나서, 기획자의 시각으로 축제의 정체성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지역민이 즐겁지 않은데 외부 관광객에 집중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추진위원회 위원들도 새롭게 구성하고, 축제를 만들어가는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벌써 시간여행축제가 12회를 맞았는데요. 그전까지는 큰 업체들이 들어와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즐기는 축제로 전환을 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주민협의체 분들과 소통을 시작했습니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설득의 과정을 거치니, 이제는 상인 분들이 축제에 먼저 참여하겠다고 계획서를 보내오시기도 하세요.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에 의미를 두고 주민 참여형 축제로서 진정성 있는 축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군산 시간여행축제
ㅣ축제의 정체성은 어디서 오는가?
고창농악 꽃대림 축제
홍예림
‘고창농악 꽃대림 축제’에서 꽃대림이 가진 의미가 좀 깊은데요. 고창농악에서 전승되는 굿에는 판굿, 풍장굿, 문굿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꽃대림굿은 구전으로만 전승되는 굿이에요. 저희가 실제로 본적은 없고 연행 형태가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죠. 꽃대림굿은 김매기를 마치고 벼꽃이 필 무렵 알곡이 잘 맺히도록 풍년을 기원하며 벌이는 굿인데요.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고창농악의 숨겨진 굿을 저희 나름대로 창의적 계승을 했다는 점에 의미가 큽니다. 저희는 이 축제를 마니아를 위한 축제로 정의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규모를 계속해서 키우기보다는 올해만큼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발전해나가려 합니다.
김현정
전국에 거의 1,000개가 넘는 아트페어가 있어요. 많은 아트페어를 모니터링하고 직접 가보기도 했는데요. 보통은 특정 갤러리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게 되는데, 저희는 갤러리와 연계하거나 너무 상업적으로 다가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럼 우리만의 차별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죠. 남들이 아직 하지 않고, 전북 지역이 강한 게 뭘까 생각했더니 문화유산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렇게 ‘고택’을 소재로 하게 됐어요. 상투적으로 접근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고택 아트 페스타_아트퍼포먼스
작년까지는 민간 고택에서 ‘고택 아트 페스타’를 진행했는데 올해는 무주항교에서 진행했거든요. 축제를 지속하려면 민간 고택에만 머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 올해는 공공성이 있는 무형유산에 도전을 했어요. 허가부터 행적적인 절차까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고 험난했지만 의미 있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정상현
축제도 나이를 먹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잖아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만든 축제든, 결국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기 마련이거든요. 트렌드는 계속해서 바뀌고 그걸 행하는 사람들도 바뀌기 때문에 그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제가 지금의 자리에서 계속 ‘스테이 풀리쉬’를 만들어가는 한 제가 행하는 부분들이 곧 축제의 정체성을 만들겠죠.
자생적 축제, 어떻게 가능한가?
김춘학
축제 자체에 대한 지원보다도 네트워크 활성화에 대한 지원 사업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5년 동안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청소년이나 창업, 교육 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요. 현재 22개 단체가 함께하기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네트워크가 기반이 되면 어떤 축제를 연다고 할 때 분야에 따라 자발적인 참여와 도움이 따라와요. 그래서 자생적인 축제란 어느 한 명의 기획자가 잘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기획 단계에서 공감하는 아군이 많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현정
저는 이번에 행사를 주최하면서 ‘협력’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거든요. 그런데 ‘협력’과 ‘후원’은 의미가 좀 다르잖아요. 후원은 일정한 비용을 지급하지만 협력은 사실상 무보수로 축제 홍보든 협조를 요청하는 의미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 어색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희도 절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민관협력이라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올해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진정한 민관협력의 방향에 대해서는 좀 더 큰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고택 아트 페스타’의 경우는 ‘고택’이라는 특이성을 가지고 5년 정도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어느 정도 수익 모델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는데요. 그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지원군을 확보해서 유지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자생을 할 것인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홍예림
행정적인 지원에 대해서는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기관과 서로 매칭을 시켜주는 방식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역 내 문화예술 기관들을 묶어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은데 여러 단체들이 각개전투로만 가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있어요. 일종의 사업 품앗이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고창농악보존회는 지리적으로 조건이 좋지 않다 보니 특정한 시즌에 셔틀버스만 제공이 되어도 관광객들이 오기 편리해지는데요. 이런 부분을 기관에서 서포트 해주면 다음에는 저희가 기관에 찾아가는 공연을 하는 식으로 서로 윈윈하는 구조가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2024 스테이 풀리쉬
정상현
처음 축제를 만들 때 내걸었던 슬로건이 ‘무예산, 무정산’이에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지 말고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이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가능하더라고요. 물론 돈이야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겠죠. 그런데 축제는 결국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돈’이 만들면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실질적으로는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찾아오는 분들의 발걸음도 ‘예산’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은 이런 축제가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김춘학 다이룸협동조합 센터장
군산에서 문화다양성 프로그램 기획을 중심으로 전시 및 행사대행, 학술연구사업, 청소년진로직업 체험교육 등 문화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2021년부터 군산시간여행축제 추진위원회로도 활동하며, 완전한 시민 참여형 축제로서 기획 및 진행을 담당하고 있다.
김현정 디자인에보 공동대표
디자인에보는 ‘에보 미디어 레지던시’를 7년간 운영하며 지역 작가들의 창작활동 및 교류를 지원. 지역문화유산인 고택을 배경으로 미술장터와 공연 등 감각적인 경험을 전하는 축제 ‘고택 아트 페스타’를 올해로 3회째 열며 지역 미술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정상현 공연기획자
순수 전주 뮤지션들의 무대를 즐기는 뮤직페스티벌 ‘메이드 인 전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드는 ‘스테이 풀리시(stay foolish)’ 등의 문화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홍예림 고창농악보존회 기획·홍보 팀장
고창농악보존회의 컨템포러리 감성농악 ‘샤이닝고창’, ‘고창농악 판굿’을 비롯해, 인문학과 공연, 연희 등을 선보이는 ‘고창농악 꽃대림 축제’ 기획에 참여하며 고창농악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해 전하고 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