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비평의 숲 | 전주시립미술관에 던지는 질문    2024.12월호

답은 시민을 향한 ‘열린 미술관’에 있다 




지역의 화두가 되는 문화이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는 <2024 비평의 숲>. 올해 마지막 자리의 주제는 건립을 앞두고 있는 ‘전주시립미술관’이다. 전주종합경기장 옛 야구장 부지에 들어설 전주시립미술관은 지난 2020년 시립미술관 조성사업의 기본구상안이 발표된 데 이어 2021년 문체부로부터 사전평가 승인을 받았다. 본격적인 건립 준비는 올해 초,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다. 지난 5월에는 시립미술관 건축설계 공모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본격적으로 건립이 추진되는 듯 싶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많다. 특히 미술관의 방향성과 공간의 규모 등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설계 공모안이 먼저 결정되면서 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한 우려는 더 커졌다. 


‘전주시립미술관에 던지는 질문’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은 2026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하는 전주시립미술관이 가져야 할 정체성과 방향을 진단하고 시립미술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관립미술관 건립에 함께한 전문가와 작가들이 참여한 이날 포럼은 진지하고 무거웠다. 전주시립미술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비평가 박천남 감독은 시민을 향해 열려있는 미술관을 중심에 두고 지역의 특성과 미술환경을 잘 아우르는 미술관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자리에는 전주시립미술관 건립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전주시 문화정책과 이승주 학예연구사도 함께했다. 


일시 | 

2024년 11월 19일(화) 오후 2시

장소 |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

발제 | 

박천남 기획자·비평가

토론 | 

강용면  조각가·아리울조형연구소 대표

김선주 서보미술문화재단 큐레이터

나유미 팔복예술공장 창작기획팀장 

이일순 작가·서학동사진미술관 대표





발제


ㅣ'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지 마라




박천남

전주시립미술관은 접근성이 상당히 유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요. 누구든 수평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산을 올라가지 않아도 되고, 대중교통으로도 올 수 있는 곳. 미술관 고유의 기능에만 집중하며 닫혀있지 말고 완전히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작가나 일부 전문가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지 말고 철저하게 시민을 중심에 두는 것이죠. 


그 첫째로 어린이박물관을 추천합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관이나 박물관 문화를 몸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됐을 때 자발적으로 미술관을 찾아가고 아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겁니다. 한지나 조각, 서예 같은 전주만의 자원을 활용해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드는 거예요. 과거 미술관의 역할이 수집, 연구, 전시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로 설명이 됩니다. ‘교육’과 ‘엔터테인먼트’를 더한 단어로, 시민들이 배우고 놀다가는 유휴공간이 된다는 의미죠. 


한마디로 요즘 미술관들이 살아남는 전략은 ‘전시’가 아닙니다. 큰 사명감은 버리고, 놀러오기 좋은 공간이 먼저 되어야죠. 미술관을 넘어 ‘아트센터’와 같은 개념으로 전시와 교육, 도서관의 기능을 함께한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꼭 전시가 아니라도 “내가 보고 싶은 미술잡지가 도착했다고 하니 보러 가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다시 찾게 만들어야죠. 시민들이 수다도 떨고 데이트도 할 수 있는 작은 카페를 열고, 생일날 아트숍에서 선물을 살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을 넓히는 겁니다. 미술관에 억지로라도 오게 만드는 노력들이 결국 그들이 전시도 보게 만들고, 재방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부분개관을 통해 완성은 단계적으로

현 시점에서 전주시립미술관은 많은 관심이 모아진 부담을 안고 있는 미술관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오히려 힘을 빼자고 말하고 싶어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부분 개관으로 시작을 하는 겁니다. 모든 걸 완벽히 준비하고 문을 열려고 하면 개관이 상당히 늦어질 거예요. 외형보다는 내용과 기능을 강화해 나가면서 점점 증축하는 방법을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반응이나 미술인, 작가, 학예인력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게 중요합니다. 




전주시립미술관 설계 공모 당선작ㅣ사진 전주시




미술과 일상을 연결하는 아트뱅크 운영 

전주에는 갤러리가 거의 없어요. 지역의 풀뿌리 미술 문화를 일구는 틀이 있어야 그 안에 미술관이 있고, 상업 화랑도 있고, 출판 등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것들이 부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잘 지은 미술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 안에서 이러한 문화가 자리 잡는 것도 중요해요. 


전주시립미술관이 지어진 다음 단계로는 아트뱅크를 설립해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가정과 기업, 공공기관, 의료기관이나 소외된 공간에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더하는 겁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작품을 대여할 수 있도록 아트뱅크를 운영하며 미술을 생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작가들에게는 시민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주민센터에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계절마다 작품을 바꿔 걸어놓으면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 이런 작가도 있네.’, ‘우리도 그림 하나 빌려봅시다.’ 생각하게 만들 수 있어요. 작가들의 작업도 꼭 미술관 소장품이 아니라 아트뱅크의 소장품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겠죠.





토론


ㅣ작은 것을 놓치면 큰 것도 놓친다 



김선주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코리아나미술관 개관 준비에 참여할 때 처음 한 일은 회장님이 가지고 있는 유물을 파악하는 일이였어요. 유물을 정리하며 그 수를 파악해 수장고 규모를 정하고, 건물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를 만들었어요. 여자화장실이 늘 줄이 기니까 남자화장실보다 크기를 키우자. 이런 세세한 것까지 이야기하면서 설계에 반영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1년 이상 매주 회의를 했어요. 그래서 더 애착도 가고 적어도 실패는 덜 하게 된 것 같아요. 전주시립미술관은 이미 외형적인 부분이 결정된 점이 아쉽지만, 지금이 기본적인 운영 방안에 대한 고민이 치열하게 이루어져야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또, 열린미술관으로 가야한다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매우 동의합니다. 우리가 사실 음악은 길거리나 라디오, 휴대폰으로 쉽게 듣기 때문에 내 취향을 잘 알고 있지만, 미술에 대한 취향은 전부 내 노력이 들어가거든요. 내가 얼마큼 많이 보고 경험했는지에 따라 취향이 생기고 그 영향으로 미술관에 놀러 가듯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 대중들이 미술에 더 가까워지면 그게 곧 미술인들이 살아남는 방법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ㅣ지역 작가도 자유로운 문턱 낮은 미술관 



이일순

전주에 사는 작가로서 미술관에 큰 기대감이 들지만, 막상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기는 힘든 현실입니다. 기회가 잘 오지 않거든요. 전주시립미술관을 통해 작가들을 어떻게 보여줄지는 고민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걸 작가 스스로가 고민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진작가인 김지연 관장님과 함께 서학동사진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관장님께서는 2012년부터 이 공간을 마련해 자비로 초대전을 열기도 하면서 전시의 수준을 지키려고 고군분투 하셨습니다. 작가로서의 삶도 주목할 만하지만 전주에서는 이런 존재를 잘 알아봐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동안 전주를 떠나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그때 저에게 영향을 줬던 많은 작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고, 제가 선망했던 기운들이 사라져갈 때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기존의 미술관들이 신선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건 알지만 가장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게 지역 작가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미술관에서 전시한 경력이 부족하다 보니 어디에 서류를 내거나할 때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이에요. 물론 개인 스스로가 챙겨야 할 일이지만 혼자, 소규모로 부딪히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갈수록 더욱 앞에 나서기가 두렵고 불안하다고 느껴요. 


지금도 전북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래성처럼 사라질 수 있어요. 그들이 생존해있고 활발히 활동할 때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불러내는 일을 미술관이 나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주는 가지고 있는 자원이 정말 많아요. 그것들을 어떻게 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하고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길 바랍니다. 




ㅣ국내외 교류 위한 통로 되어야 



나유미

팔복예술공장의 경우 봄에 피는 이팝나무 철길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올해는 이 시기에 맞춰 앤디워홀의 팝아트 전시를 진행했는데요. 두 달 동안 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면서 기록적인 결과를 남겼습니다. 이게 단순히 전시를 통해 얻은 결과가 아니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전시관이 어려운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을 통해 다시 찾는 사람들도 생겨난 거죠.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다면, 지역 작가들의 작업을 아카이브 하는 일이에요. 특히 국내를 넘어 해외로 소개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전북에는 작가들이 정말 많지만 작품이 잘 알려지지 않고 지역 안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미술관이 지역 작가를 알리는 통로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해외에 있는 작품을 가져오려고 시도하니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열악하다는 걸 느꼈거든요. 외국에 있는 좋은 작품들을 가져올 수 있는 구조를 초기에 구축해놓는 일도 필요합니다. 시민들은 국내외 좋은 작품들을 만나고, 지역 작가들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겠죠. 





ㅣ좋은 사공 있어야 좋은 미술관 된다



강용면

앞으로 관장직과 학예사 등 전문 인력을 선정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전북에서 3~40년을 활동하면서 많은 예술가들을 접하고 대부분의 경력을 알고 있는데요. ‘이 사람 정도면 전북의 미술을 잘 이끌어가겠다’ 생각이 들어도, 항상 예상과 다른 결과를 보이더라고요. 단 한 번도 예상이 맞았던 적이 없습니다. 전주시립미술관은 공간을 잘 이끌어갈 인물을 선정하는 과정에도 집중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북은 문화적인 여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전주시립미술관이 전북 권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미술관이 되어야 합니다. 전문가는 물론 미술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세가 필요해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의견을 내고, 서로 모일 수 있는 워크숍도 갖는 거죠. 그냥 전시를 열고 관람객이 오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홍보도 하고 담당자부터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해요. 어떻게 보면 시립미술관을 통해 기존의 전시 공간들에도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시립미술관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낼 전북의 꽃이에요. 앞으로 이 꽃을 잘 키워서 제대로 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박천남 기획자·비평가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현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로댕갤러리 큐레이터,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장, 김택화미술관 학예연구 실장 등을 역임. 현재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며 2023 한강조각프로젝트 예술감독을 맡았다.


강용면 조각가·아리울조형연구소 대표

한국적 전통을 바탕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미술관과 전국의 많은 갤러리에서 이름을 알리며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초대전 대상,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아리울조형연구소의 대표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선주  서보미술문화재단 큐레이터

월간 아트인컬쳐 수석기자와 코리아나화장품 코리아나미술관 수석큐레이터를 역임했다. 김포문화재단에서 소장품 DB구축 및 도록 기획·편집과 작은미술관보구곶 전시기획, 찾아가는미술관사업 기획 및 운영 등을 담당하며 현재는 서보미술문화재단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나유미  팔복예술공장 창작기획팀장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 대학원은 미술이론을 전공하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해설사 관련 사업 운영 일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미술관에서 일해오고 있다. 현재는 팔복예술공장에서 전시와 레지던시를 담당, 예술가 일자리 창출과 문화·예술·교육 진흥,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이일순  작가·서학동사진미술관 대표

일상의 경험을 통해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코드와 따뜻한 스토리를 작가 특유의 따뜻한 색채로 선보인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전북도미술대전 우수상, 천인갈채상 등을 수상하며 현재도 개인 작업을 활발히 선보이며 서학동사진미술관의 공간지기로 전시 기획 및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