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지역 환경을 지켜온 전북환경운동연합(공동대표 유남희, 유영진, 이정현, 정현숙)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이 써온 30년 역사의 궤적은 굵고 탄탄하다. 그 활동의 면면을 돌아 보고 미래를 진단하는 자리가 열렸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갈등과 투쟁의 현장에서 앞장 서온 전북환경운동연합이 30년을 진단하며 선택한 주제는 <성찰과 미래, 지금 여기 녹색의 길을 묻다>다.
지난 11월 15일 전주 한옥마을 공간봄에서 열린 좌담회의 발제는 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장이 맡았다. 화두는 환경 거버넌스. 박 소장은 타협과 갈등의 경계에서 실질적인 환경운동을 위한 거버넌스는 어떻게 구축되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는 김진태 전 전북보건환경연구원장이, 토론에는 유영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강소영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김남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최두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모아름드리 프리데코 대표가 참여했다. 이날 좌담회의 주요 주제를 옮겨왔다. 좌담회의 전체 내용은 환경운동연합이 발간하는 30주년 기념 백서에 실릴 예정이다.
ㅣ환경 거버넌스,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박숙현(발제), 김진태(사회)
국가가 환경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며 환경부(관)와 환경운동(민) 사이에는 조금씩 파트너십이 생겼다.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각종 위원회에서 시민사회의 자리가 보장되었고, 이는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환경운동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비판 또한 제기되고 있다.
박숙현ㅣ 환경운동연합 같은 경우 성과를 위해 어느 정도 관과의 타협이 필요하잖아요. 하지만 그래서 점점 타협에 익숙해지고 안주하게 되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공무원들과 협의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성과를 내기에 항상 부족한 부분이 있어요.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강소영ㅣ 저는 중간지원조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관과 민이 잘 협력할 수 있게 세팅하는 입장인데요. 민관 협력이 잘 되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이 시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얘기하시거든요. 그런데 현장에 있는 제 입장에서는 민이 강력할 때 민관협력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시민단체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결국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이고, 그 힘이 약해지면 교섭력이 줄어들어요. 민의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운동연합이 조금 더 선명하고, 강력한 의제를 가지고 갔으면 좋겠고요.
유영진ㅣ 작년에 도시공원일몰제 관련한 민관협력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정말 협의회에 들어와야 할 이해당사자가 빠져있는 거예요. 나중에 회의가 종료되고 결론이 나온 다음, 그걸 가지고 시에서 이해당사자와 협의를 해보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런 민관 협력 기구가 제대로 되려면 처음 준비 때부터 누가 들어오고, 어떤 부분이 논의되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ㅣ환경운동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은가?
강소영, 모아름드리
시대가 변화하며 환경을 둘러싼 의제와 방법론 또한 세분화되고 있다. 기후 위기, 핵발전소, 지역 생태, 비건, 자원순환 등 범위는 넓어졌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의제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하다. 이제는 취사선택해야 하는 때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숙현ㅣ 우리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운동을 해왔잖아요.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을 보존해야 한다고 하면 그곳이 보호구역 지정이 된다거나, 도시 계획이 변경되는 뚜렷한 결과물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분야를 하려면 지치고 힘들 수 있어요. 활동가들이 효능감을 느끼며 운동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해요. 결국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이 뭘까, 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지역 현안에 대응하는 것에 이 단체의 정체성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텀블러 사용과 같은 대중적인 환경운동이 실질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요? 결국 '기후 악동'이라 불리는 기업체에서 과감하게 대응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실제 삶에 반영되지 못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요.
최두현ㅣ 기후 변화나 문명 전환 같은 것은 사실 너무 거창해서 접근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운동을 쪼개거나 접근 방법을 달리해서 효능감을 높이자는 것에 대해 공감합니다. 특히 위험하게 생각하는 게 환경오염에 있어 관리기술주의적인 시각이 확대되면서 실제 환경운동과 잘 맞닿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현재는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시민사회의 감시 능력이 많이 후퇴해 버린 상황인데요. 그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 기능을 환경단체에서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ㅣ젊은 세대와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
유영진, 김남규, 최두현
최근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젊은 상근활동가의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원들도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이때,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함께 '잘'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지역에서 청년들과 함께 환경운동을 하는 모아름드리 프리데코 대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모아름드리ㅣ 매체 인터뷰를 할 때마다 공통으로 받는 질문이 '왜 기존 환경단체처럼 하지 않느냐'는 건데요. 어떤 지점이 다를지 생각해 보면, 저희는 이름부터 영어를 써요. 무슨 연합, 무슨 단체 이런 걸 쓰지 않죠. 법인이 아니고, 회원제가 아니고, 상근활동가가 없어요. 물론 지금은 제가 상근활동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저희 프리데코는 각자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있고 어떤 이슈가 생길 때 모이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이게 요즘 청년들의 특성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박숙현ㅣ 제가 예전에 제안했던 사업 중 하나가 청년환경운동연합이었어요. 선배님들은 계속해서 청년들하고 뭔가 같이 하려고 하는데, 저는 분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거든요. 별도 파일럿으로 지원해 주고 공간을 마련해주는 방식으로 제안했는데 통과가 안 됐죠. 같이 해서는 의사결정이 안 되고,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남규ㅣ 저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현재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내부 진단이 먼저 필요하다고 봐요. 익산참여연대 20주년에도 비슷한 좌담회가 있었는데요. 선배들이 와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제가 그때 드린 말씀이 하나 있어요. 너무 많은 일을 꿈꾸고 있고, 너무 많은 일을 후배들에게 요구하지 않느냐. 현재 활동가들을 봐라. 이들이 수년 동안 지치고 늙어가고 있다. 그래서 저는 현재에 있는 활동가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모아름드리ㅣ 환경단체들을 보면 굉장히 소수의 활동가가 정말 많은 문제에 대응하고 있어요.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요. 물론 지금 청년들도 그런 애정이 없지는 않지만, 더 이상 개인을 희생하고 갈아넣으면서까지는... 세대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청년들이 환경에 관련된 활동을 계속하려면 여기에서도 생계유지가 될 것이라는 작은 안전망,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류나윤 기자